'안경 선배' 이성열, 독수리 둥지서 날아오르다

김효경 2018. 7.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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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19개 .. 호잉에 이어 한화 2위
이성열 홈런 친 경기서 팀 15승3패
서울 연고 세 팀서 모두 뛴 떠돌이
야구 시작 후 우승없어 "이번엔 꼭"
한화 이성열이 사격 선수처럼 배트로 목표물을 겨냥하고 있다. 이성열은 ’대전에 오길 잘했다.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월 열린 평창올림픽에서 떠오른 최고 스타는 여자 컬링 대표팀 스킵 김은정(28)이었다. 안경을 낀 채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카리스마가 인상적이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는 또 한 명의 ‘안경 선배’가 탄생했다. 난시 교정을 위해 안경을 쓴 뒤 홈런을 펑펑 때리는 한화 외야수 이성열(33)이다.

프로 16년 차 이성열은 무서운 기세로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23일 현재 홈런 19개(11위)를 기록 중이다. 팀내에선 호잉(21개)에 이은 2위. 현재 추세라면 28개까지 가능하다. 2010년 개인 최고기록(24개)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홈런의 ‘영양가’ 도 대단하다. 이성열이 홈런을 친 18경기에서 한화는 15승3패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이성열은 대표적인 ‘공갈포’ 타자였다. 장타는 곧잘 쳐도 삼진을 많이 당했다. 15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타석당 삼진 1위(29.7%)가 이성열이었다. 그런데 올 시즌 이성열은 달라졌다. 데뷔 후 가장 좋은 타율(0.309)을 기록 중이다. 이성열은 “장타는 욕심을 낸다고 해서 무조건 나오는 게 아니지 않나. 올 시즌 홈런 20개 정도를 기대했다”며 “나는 우리 팀 이용규처럼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공을 커트해내면서 버티는 타격은 못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왼쪽으로 밀어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화 이성열
달라진 비결은 안경이다. 이성열은 올 시즌 초부터 난시 교정을 위해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난시가 심하면 사물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는 “14년 전쯤 라식 수술을 받았다. 올해 시력을 재보니 0.6 정도였다. 난시도 있어서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인 듯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자비로 안경을 구입했지만 이제는 후원사도 생겼다. 이성열은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 안경을 썼는데 불편함은 크게 못 느낀다. 팬들이 ‘안경 선배’라고 불러주시는데, 기분이 좋다”고 했다.

홈런을 친 뒤 한용덕 한화 감독의 가슴을 치는 특유의 세리머니도 화제다. 한 감독은 “부상 선수들이 많았는데 성열이가 정말 잘해줬다. 성열이가 홈런을 치면 가슴에 힘을 힘껏 주고 있다”며 “아파도 되니까 자주 가슴을 쳐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성열이 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기뻐하는 한용덕 한화 감독(왼쪽).
이성열은 사연이 많은 떠돌이 선수다. 2003년 순천효천고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할 당시엔 포수였지만 타격에 전념하기 위해 외야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2008년 두산으로 트레이드됐다. 2010시즌엔 주전을 차지하는 듯했지만 삼진을 많이 당하는 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12시즌 도중엔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프로야구 최초로 서울을 연고로 하는 세 팀에서 다 뛴 선수가 이성열이다. 이성열은 “처음이라고 하더라. 시골에서 올라와서 용 됐다”며 껄껄 웃었다.

그의 트레이드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5시즌 도중 다시 한화로 팀을 옮겼다. 시즌 중 트레이드만 벌써 세 번째였다. 이성열은 “그때그때 기분이 달랐다. 사실 한화에 올 땐 조금 힘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잘 해보자고 하더라. 아내 말대로 정말 한화에 와서 잘 풀렸다”고 했다.

야구가 생각처럼 되지 않을 때는 그만둘 생각도 했다. 순천에서 소를 키우시는 아버지 일을 거들 생각도 했다. 이성열은 “야구를 잘하고 싶어서 서울에 올라왔는데 잘 안 되니까 의욕이 사라졌다. 그럴 때는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 일을 도울 생각도 했다”며 “그래도 버티고 버틴 끝에 아직까지 야구를 계속할 수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성열에겐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25년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우승’을 해보는 것이다. 이성열은 프로에서도 4팀을 옮겨 다녔지만 포스트시즌 경험은 많지 않다.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건 넥센 시절인 2014시즌뿐이다. 이성열은 “프로 16년, 아마추어까지 합치면 25년 동안 우승을 한 번도 못 해봤다”며 “가을 야구를 해 보면 야구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우리 팀 선수들과 함께 그런 경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전=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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