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큰 등대 스러져"..비통한 심상정 할 말 잃어

2018. 7. 2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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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휩싸인 정의당

당 "참담함 금할 길 없다"
상실감 당원 게시판엔 추모 열기
"한 사람의 상실로 진보정치
왔다 갔지 하지는 않을 것" 전망도

지지율 오르며 '진보' 판 커졌는데
불법정치자금 '도덕성 타격' 부담

속보로 비보 접한 의원·당직자
황망함 못 감추고 비통한 분위기

[한겨레]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운데)와 심상정 의원 등이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조문 객을 맞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큰 등대를 잃은 느낌이다. 기둥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스러지는데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23일 노회찬 원내대표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당직자 출신인 정의당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태로 정의당이 입을 타격에 대한 우려보단, 진보정당 운동을 떠받쳐온 큰 선배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큰 듯했다. ‘노·심’(노회찬·심상정)으로 대표되는 진보정당의 ‘명사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도 없지 않았지만, 2004년 민주노동당이 처음 원내에 입성한 때부터 ‘노회찬’은 대중에게도, 당원들에게도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또다른 정의당 관계자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뒤 노회찬은 의원일 때나 국회 밖에 있을 때나 변함없이 약자를 대변하며 진보정당의 가장 큰 ‘스피커’ 구실을 했던 것 같다”며 “과연 그렇게 대중적인 진보정치인을 다시 키워낼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노회찬이라는 한 정치인을 잃은 것을 넘어, 노 원내대표의 부재로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대중친화력도 반감되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정치권에선 6·13 지방선거를 전후해 지지율 상승세를 보이며 최근 자유한국당마저 누른 정의당이 돌발 변수를 만난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당장은 크나큰 상실이라는 ‘비보’의 성격이 강하지만, 노 원내대표가 유서에서 ‘드루킹’ 쪽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한 만큼 진보정치의 도덕성에 흠집이 났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정의당의 지지율은 딱히 정의당이 잘해서라기보단 민주당처럼 자유한국당의 실패에 기댄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며 “이제 당의 노선 등을 정비해야 할 시점인데 도덕성에 타격을 입으면서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의 상징성이 크긴 하지만, 그의 부재가 곧바로 진보정치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다른 정의당 관계자는 “한 사람의 상실로 진보정치의 전망이 왔다 갔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당이 이를 꽉 깨물고 함께 나아갈 때가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지지층도 결집하는 분위기다.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진 뒤 노 원내대표의 출당까지 거론되던 정의당 당원게시판은 이날 추모 열기로 가득 찼다. “강자에게 한없이 강하셨기에 든든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을까? 또 한분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내가 가장 사랑한 정치인이었다” 등의 추모 글이 잇따랐다.

정의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은 종일 충격과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노 의원이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했는데도 정의당 당직자들은 그가 숨졌다는 속보가 나오기 전까지 평소와 다른 점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노 의원은 이날 오전 상무위원회에 참석하지 않고,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복직 환영’ 등의 메시지를 서면으로만 전달했다. 노 의원 사망 속보가 전해진 오전 10시30분께 국회 브리핑장인 정론관 앞에서 노동 문제 관련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정의당 당직자는 창백해진 얼굴로 당 대변인실로 달려갔다. 정의당 당직자들은 대변인실 문을 걸어 잠그고 사태 파악에 들어갔다.

그 시각 노 원내대표의 의원회관 사무실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같은 층에 있는 심상정 의원실에는 이정미 대표 등 정의당 의원들과 주요 당직자들이 모여들었다. 의원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뉴스 속보를 보면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오전 11시35분께 심상정 의원실에서 나온 추혜선 의원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낮 12시25분께 회의가 끝났지만 의원실에서 나온 심 의원은 입을 굳게 다문 채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의당은 곧이어 첫 공식 브리핑을 통해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밝혔고 “고인과 관련된 억측과 무분별한 취재를 삼가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고인의 빈소가 서울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뒤 오후 3시 정의당 대표단의 긴급회의도 이곳에서 열렸다. 최석 대변인은 회의 뒤 “본질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특검의 노회찬 표적수사”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노회찬 의원이 3선에 성공하면서 진보정치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한 경남 창원 지역의 시민사회도 충격과 비통함에 빠졌다. 경남 장례위원장은 여영국 정의당 경남도당 위원장이 맡았다. 장례위원엔 김경수 경남도지사,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허성무 창원시장, 류조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등 경남 지역 각계각층 지도자들이 참여했다. 정의당 경남도당은 “고 노회찬 의원은 대한민국 진보정치의 상징으로 온갖 가시밭길을 헤치며 평생을 몸 바쳤고 한국 정치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가난하고 소외된 모든 이들을 위한 노회찬 의원의 고귀한 정신을 함께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엄지원 김태규 기자, 창원/최상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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