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시시각각] '이해찬 대표' 신의 한 수냐 악수냐

전영기 2018. 7. 23.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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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게도 부담 .. 편협하나 유능
소득 주도·탈원전 손봐야 경제 산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집권하면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철저히 궤멸시키고 쭉 장기 집권해야 한다(2017년 4월 30일)”던 7선의 이해찬 의원이 집권당 대표 경선전에 뛰어들었다. “2020년 총선 승리가 절실하다. 재집권에 무한책임을 지고 있다”는 출마 선언에서 자기 손으로 보수를 궤멸시키겠다는 소명감이 느껴졌다. 이해찬은 자기 진영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말을 섞지 않는다. 정치를 국민 통합이 아니라 진영 간 전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편협하다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가 정치 무대에 전면 등장하면 정국은 여야 대치로 더 가팔라지고 분열은 깊어질 듯하다.

여야(與野)뿐 아니라 여권 내부 관계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해찬은 수굿수굿한 사람이 아니다. 여당 대표가 된다면 청와대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리라는 관측이 많다. 문 대통령도 ‘이해찬 대표’를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이해찬은 문재인 정권의 공동 창업자다. 2011년 정치 초년생인 문재인의 손을 이끌고 손학규가 대표로 있던 민주당에 파고들어 1년 만에 ‘문재인 대선 후보’를 만들어냈다. 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고난을 겪을 때 고육지계(苦肉之計), 자기 살을 내어 주는 희생양이었다. 2016년 총선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휘두른 공천 탈락의 칼날을 군말 없이 받았다.

이해찬은 유능하다. 입만 진보, 이념 과잉이 지배하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 가운데 드물게 실무력, 기획력, 실행력, 예산 파악과 정책 입안 능력을 갖췄다. 숫자에도 밝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점을 높이 사 국회 예결특위, 당 정책위를 맡겼다. 집권해선 일약 교육부 장관에 세웠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해찬을 실세 총리로 발탁했다. 노 대통령은 “경제 운영에서 이해찬 총리는 역시 유능하더라. 단언컨대 참여정부가 성장 동력이 저하되는 일은 없을 것(2005년 8월 18일)”이라고 평가했다.

어두움도 짙고 빛도 강렬하다. ‘이해찬 대표’는 신의 한 수, 아니면 신의 악수(惡手)가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체로 무능한 참모에 둘러싸여 경제 실정을 거듭했다. 50%대로 지지율 폭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식으로 쭉 나가면 장기 집권은커녕 2020년 총선 전망도 불투명하다. 이해찬이 보수 궤멸을 외치기 전에 경제를 망치고 산업과 수출, 학문까지 파괴한 정책 두 가지만 손보겠다고 나서면 국민 다수가 환영할 것이다.

첫째, 경제학에서 검증도 안 됐고 효과 없이 부작용만 양산하는 ‘소득 주도 성장 실험’을 폐기하는 것이다. 둘째, 전기 값은 오르고 전기의 질은 떨어지며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만 늘리는 ‘탈원전 노선’을 포기하는 것이다. 탈원전과 소득 주도 성장은 ‘천성산 터널 건설로 도롱뇽이 사라진다’는 주장처럼 겉만 그럴듯하지 속은 거짓투성이의 미신(迷信)이다. 미신을 정책인 양 질질 끌고가다 산업 경쟁력이 추락하고 성장 동력이 멈춰서면 누가 책임질 건가. 어차피 과학적 판단 없이 선동과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인 정책들이다. 이해찬같이 유능한 실력파가 조목조목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민생과 경제 살리기를 위해 폐지의 필요성을 문 대통령한테 역설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만일 이해찬이 이 정도의 정책적 결단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정신이 시든 것이다. 그는 출마 회견 때 코를 훌쩍거리고 손을 몇 차례 떨었다. 전성기 때의 모습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큰 도전을 했다면 거기에 합당한 명분과 국민적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이해찬의 도전은 탐욕이나 노추(老醜)로 여겨질 수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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