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문건 특집 ②] 정쟁에 휘말린 기무사..'누님회' 밀친 '알자회'
기무사가 정쟁의 중심에 선 것은 공교롭게도 군사정권의 효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 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기무사 수장을 맡은 이는 장경욱 전 사령관(육사 36기)이다. 당시 청와대는 정보통인 장 전 사령관이 기무사 본연의 업무인 정보 수집에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낙점했다.
하지만 취임 6개월 만에 군 수뇌부와 충돌하자, 군내에서는 위기감이 커진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박근혜 정부 초기 ‘황금세대’로 불린 육사 37기다. 박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과 동기생인 육사 37기는 중장 8명과 대장 3명을 배출하면서 군내 ‘성골 중의 성골’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박지만 회장의 누나인 박 전 대통령을 사석에서 누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누님회’라는 모임이 실체 여부와 무관하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영식 1군, 박찬주 2군, 엄기학 3군사령관 모두 육사 37기였다. 그중에서도 선두주자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었다. 서울 중앙고를 졸업한 뒤 육사에 들어간 이 전 사령관은 박지만 회장과 고등학교까지 함께 나와 육사 시절에도 절친으로 통했다.
박지만 육사 동기인 37기 이재수 기무사령관 전면 등장
장 전 사령관의 불명예 퇴진으로 기무사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자 결국 육사 37기가 전면에 등장했는데 이재수 중장의 기무사령관 발탁이 이를 잘 말해준다. 군 관계자는 “정권 초기만 해도 군내에는 ‘박지만 라인’과 ‘정윤회‧최순실 라인’이 있었는데, 이재수 사령관을 비롯해 육사 37기는 대표적 박지만 라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37기에서도 선두주자인 이재수 중장이 기무사령관에 앉았다는 것은 정권 초기만 해도 박지만 회장의 군내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 전 사령관은 기무사령관에 취임하기 전 53사단장, 육군 인사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하지만 양측 간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2014년 10월 이 전 사령관 퇴진은 군내 박지만 라인 몰락의 신호탄이 됐다. 양측 간 파워 게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의 손을 들어줘 이재수 사령관 교체 카드를 꺼낸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2016년 12월28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최순실 비선을 활용한 군 인사 개입 관련 의혹 보고’ 문건이 공개되면서 기무사령관 교체 이유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당시 문건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군 내부 비선라인 흐름도 △최순실 세력을 기반으로 한 조현천 기무사령관 등장 △군내 사조직 ‘알자회’ 세력화 동향 △조현천 기무사령관 보직 이후 군 인사 개입 의혹 △기무사령관의 막강한 권력 행보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지만 라인의 몰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로 지목된 인물이 바로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다. 추 전 국장은 이 전 사령관 후임인 조현천 기무사령관 선임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 문건에는 ‘2014년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 전후를 기점으로 박지만 육사 동기 그룹이 대다수 경질 또는 좌천되자 추○○(41기) 국장이 최순실 라인을 통해 조현천 기무사령관을 천거한 것으로 알려짐’이라고 돼 있다. 추 전 국장은 육사 41기 출신으로 군 재직시절 ‘알자회’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철 전 사령관과 기무사와의 인연도 흥미롭다. 조 전 사령관은 알자회 소속이어서 재임 기간 중 수차례나 기무사의 강도 높은 감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가 다른 동기들보다 진급이 늦었던 것도 ‘알자회’ 소속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 때문에 이력에 흠집이 난 조 전 사령관이 기무사 수장에 오른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당시 추 전 국장이 주목한 것이 바로 이점이다. 기무사로부터 피해를 본 이로 하여금 기무 개혁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문건에는 ‘2014년 군 인사 때 청와대 민정에서 대상자 검증 보고 시 조현천 소장을 ‘알자회 골수인물’로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로 이를 삭제하고 더 이상 조 소장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고 함’이라고 돼 있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이 '알자회' 조현천 밀었다?
조 전 사령관 내정은 군 기무 라인마저 정윤회‧최순실 라인이 접수하게 됐음을 보여준다. 정윤회 문건에서 ‘기무사령관에 내정된 조현천 장군은 軍(군) 내 인사정보를 추 국장에게 제공했고 추 국장은 국정원 보고 형태로 BH(청와대) 우병우·안봉근에게 제공해 군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특히 ‘추 국장의 경우 최순실씨와 안봉근 비서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면에서 조 전 사령관이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힘들다. 취임 초기 언론사를 초청해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강도 높은 기무 개혁을 추진하리라 기대됐지만, 선임되는 과정을 보면 그 모든 것이 쇼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교롭게도 조 전 사령관과 같은 기수인 육사 38기생은 모두 옷을 벗었다. 대장은 임오형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유일하다. 그마저도 지난해 8월 옷을 벗었다.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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