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 시민아파트 철거 예정..'들불야학' 근거지 결국 사라지나?

2018. 7. 2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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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 페인트를 묻힌 스펀지를 툭툭 치듯 흰 천 위에 누르기 시작했다.

주홍 작가는 21일 오후 1시 광주시 서구 광천동 시민아파트 나동 출입구에서 '윤상원'을 그려가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시민아파트 바로 옆 광천동 성당 교리실에서 출발한 들불야학은 1979년 1월 다동 2층 방으로 학당을 옮겼다.

윤상원·박용준(1956~1980) 등이 5·18 학살을 고발한 최초의 민중언론 <투사회보> 를 제작한 곳도 시민아파트 들불야학 학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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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광주 문화·예술인들 게릴라 콘서트 선보여
"'광주정신'의 근원지였던 공간 사라질 처지 안타까워"
시민아파트 윤상원 열사 거주 공간 보존 방안 절실

[한겨레]

주홍 작가가 21일 오후 1시 광주시 서구 광천동 시민아파트 나동 출입구에서 ‘윤상원’을 탁본하는 것처럼 그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흑색 페인트를 묻힌 스펀지를 툭툭 치듯 흰 천 위에 누르기 시작했다. 5·18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1980)의 얼굴 형상을 ‘탁본’처럼 뜨기 위해서였다. 주홍 작가는 21일 오후 1시 광주시 서구 광천동 시민아파트 나동 출입구에서 ‘윤상원’을 그려가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울퉁불퉁한 바닥 위의 흰 천에 옛날의 기억과 흔적을 하나 하나 담기 위한 의례처럼 보였다. 주홍 작가는 “80년 5월 10일간의 항쟁을 버티게 했던 정신의 근원지였던 시민아파트가 재개발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생전 윤상원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시민아파트는 광주·전남 최초의 노동야학인 들불야학(1978년 7월~1981년 7월)의 근거지였다. 윤상원은 박기순(1957~78)이 주도한 들불야학에 참여하면서 1978년 이 곳에 입주했다. 시민아파트 바로 옆 광천동 성당 교리실에서 출발한 들불야학은 1979년 1월 다동 2층 방으로 학당을 옮겼다. 강학·학강들은 5·18항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맞서 싸우다가 세상을 떴다. 윤상원·박용준(1956~1980) 등이 5·18 학살을 고발한 최초의 민중언론 <투사회보>를 제작한 곳도 시민아파트 들불야학 학당이었다.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다가 옥중단식 뒤 사망한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1953~1982)과 5·18 시민군 기획실장 김영철(1948~98)도 들불야학 강학들이었다.

주홍 작가가 완성한 윤상원 드로잉 작품.

하지만 내년 시민아파트가 철거되면 들불야학과 관련된 역사적 공간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1970년 7월 사용승인이 난 광주의 첫 연립 아파트로, 지상 3층 규모의 3개 동에 184세대가 살고 있다. 오래된 이 아파트는 ‘광천동 주택 재개발 정비(42만6380㎡)사업’의 진척 상황에 따라 내년 하반기께 이주 및 철거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시민아파트 옆 광천동 성당도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이주 대상이다. 이 일대엔 앞으로 지상 33층, 48개동, 5831가구 규모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주홍 작가가 기획한 이날 게릴라 공연엔 동료 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했다. 주홍 작가는 “시민아파트가 사라지게 돼 안타깝다는 심경을 말했더니 주변 동료들이 힘을 보태줬다”고 말했다. 주홍 작가가 작업을 하는 동안 승지나 작곡가가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연주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박기순의 영혼결혼식 두달 뒤인 1982년 4월 두 사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주홍 작가는 흰천 여백에 심경을 적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다시, 생각해보자. 바로 이 곳에 윤상원이 살아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가? 같이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해보자. 무엇을 버리고 남길 것인가!””

21일 오후 광주 광천동 시민아파트에서 들불야학을 주도해 설립한 박기순과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영혼결혼식을 춤으로 표현하는 현대 무용가 나은영과 국악인 국근섭씨.

퍼포먼스엔 5·18 역사공간이 사라질 것을 안타까워하는 예술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주라영 작가는 아시아 민중이 그려진 천을 가위로 오려 ‘해체’하는 장면을 선보였다. 3층 공동세탁장에선 미국인 아티스트 수잔 매끌로이가 그 때 그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문 앞에서 ‘흔적’을 남기는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정찬영(의사)과 은혜인(독일 유학생)은 색소폰과 플룻으로 <5월의 노래> 등을 배경 음악으로 연주했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현대무용가 나은영과 국악인 국근섭은 박기순·윤상원의 영혼결혼식 사연을 절절한 춤사위로 표현했다. “시민아파트를 앞으로 생길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안 공원부지의 일부로 살리면 설계하면 안될까요?” 이날 게릴라 공연에 참가한 예술인들은 한 목소리로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윤상원 열사를 그린 드로잉 작품에 쓴 주홍 작가의 심경.
주라영 작가가 아시아 민중의 얼굴이 그려진 천을 가위로 해체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1일 오후 광주시 광천동 시민아파트 앞에서 광주 예술인들이 게릴라 공연을 하고 있다.
미국인 아티스트 수잔 매끌로이가 그 때 그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문 앞에서 ‘흔적’을 남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광주시 광천동 시민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광천동 성당 내 들불야학 5·18 사적지 표지석.
21일 오후 광주 광천동 시민아파트 게릴라 공연에 참석한 광주 문화예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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