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응원? '불문법 청와대' 되풀이하겠다는 건가

2018. 7. 2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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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어느 정권에서나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힘 센’ 자리였지만, 그만큼 월권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한 조국 민정수석이 생각에 잠겨 있다. ♣?H6s청와대사진기자단

“행정응원이 뭔가요?”

이 낯선 개념을 알게 된 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덕분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인사 개입 의혹으로 불거진 곽태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후보의 ‘낙마’ 과정에 민정수석실의 ‘입김’이 드러나고, <한겨레> 등이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하자 조 수석은 ‘행정응원’을 들고 나왔다. 애초 관여한 사실을 부인하던 입장에서 정당한 권한 행사라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행정응원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전화를 여러 통 돌리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가령 중앙 부처 공무원이 전남 진도 쪽에 업무상 확인할 게 있다고 칩시다. 간단한 거면 진도군청에 대신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 수 있잖아요. 진도군청이 응하면 그게 행정응원인 겁니다. 대등한 관청끼리 가능한 일인데, 청와대의 인사검증이 행정응원이라는 얘기는 처음 듣네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후보에 대한 인사검증 권한은 원래 국민연금 이사장이 위원장인 후보추천위원회에 있다. “적임자로 판단되는 후보를 조사하거나 전문 단체에 조사를 의뢰”하거나, “(해당 후보를) 보건복지부령의 후보 심사기준에 따라 심사”하는 것은 추천위의 권한이다. 국민연금법과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 그러니 복지부 장관이 청와대에 행정응원을 요청했다면 그 자체로 월권이다.

행정응원만으로는 취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조 수석은 본부장에 대한 ‘계약 승인권’을 갖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니까, 그를 보좌하는 자신이 곽 후보를 검증한 것은 적법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복지부 장관의 행정응원 요청이 없었더라도 민정수석실이 독자적으로 곽 후보를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척 곤란하게도, 이런 식이면 민정수석의 직무 범위는 무한정 넓힐 수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 미치는 모든 곳, 대통령이 임명장을 주거나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대상이면 민정수석이 나서지 못할 일이 없다.

조 수석의 주장에 반색할 사람은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아닐까 싶다. 앞서 그는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불법사찰한 혐의로 기소되자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보좌하기 위한 정보 수집”이라고 주장해왔다. 어쩌면 그의 변호인들이 이 역시 행정응원이었을 뿐이라며 조 수석의 말을 변론 근거로 삼을지도 모른다.

같은 논리라면, 국정원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관련 정보 수집도 총장 임면권자인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이 가능하다. 국군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도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방부 차원의 행정응원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우 전 수석은 얼마 전 법정에서 “대한민국은 성문법 국가인데, 청와대 영역 안은 불문법 지대”라고 말했다. 민정수석의 권한과 한계를 규정한 법령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직권남용으로 처벌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도 보탰는데, 이걸 구구한 변명으로만 치부한다면 중요한 시사점을 놓치게 된다. 대통령이든, 그의 비서든 권한 행사는 적법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산 교훈이 바로 우 전 수석이기 때문이다. 포괄적 권한에 깃들어 있는 직권남용의 위험성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 수석은 “곽 후보 인사검증은 정부조직법 이외에 별도의 법률상 근거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 법에는 대통령의 행정감독권도 “법령에 따라” 행사하라고 돼 있다. 그러니 조 수석이 국민연금에 제출된 곽 후보의 인사검증 자료를 보려면 후보 본인의 ‘별도 동의’를 얻거나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 그런 절차를 밟지 않은 채 그냥 가져다 봤다면,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제공 제한’을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 된다. 특별법인 개인정보보호법은 정부조직법에 우선한다.

“국민재산 600조를 다루는 중요한 자리여서 청와대가 직접 인사검증을 해야겠다면, 법을 개정하면 됩니다. 법령에 없는 데 권한을 행사하면, 그게 바로 직권남용이죠.” 행정응원을 명쾌하게 설명해준 법관 출신 변호사가 한 말이다.

멀지 않은 곳에 ‘박근혜 청와대’라는 반면교사가 있다.

강희철 사회에디터석 법조팀 선임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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