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백원만 밀려도 물건 끊는데, 본사와 싸워라? 불가능한 얘기"

심규상 2018. 7. 21. 13:27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대전] "진짜 문제 안 건드리고" 변죽만 울리는 정부

[오마이뉴스 심규상 기자]

'2019년 최저임금 8530원'을 둘러싸고 편의점주 등 자영업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최저임금과 관련한 지역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 첫번째는 자영업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대전의 목소리입니다. <편집자말>

 대전은 자영업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도시 중 한 곳이다.
ⓒ 심규상
의외였다. 평일 오후 6시. 평소같으면 저녁 장사 준비로 바쁠 때였다. 한 프랜차이즈 가맹 음식점을 찾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청했다.

"네, 앉으세요" 식당 주인은 망설임 없이 취재에 응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듯했다.

프랜차이즈 음식점 사장 "월 매출 4천, 그래도 빚이 안 준다"

대전 중구에 있는 지하철 역 부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 그는 8년 전 다니던 직장을 접고 사업을 택했다. 동업이었다. 하지만 20평 크기의 가게는 동업을 하기에는 벌이 자체가 크지 않았다. 결국 빚을 내 단독사장이 됐다.

"빚으로 시작했죠.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빚이 줄어들지 않네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가게에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월 매출을 물었다. 평균 4000만 원이란다.

"작년에 비해 매출이 약간 늘었어요. 손님이 늘었냐구요? 아니죠. 본사에서 인건비가 올랐다며 일부 품목별 단가를 올렸어요. 거래처도 마찬가지구요. 매출이 늘었지만 단가 인상으로 지출도 그만큼 늘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월 지출을 좀더 자세히 물어봤다.

"본사에 물건 값으로만 1700에서 1800만원(매출의 42-48%)이 나가요. 가게세(250만원), 야채값(250만원), 술과 음료수 (300만원), 여기에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통신비 등을 죄 합하면 약 1000만원 정도죠."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어서 본사에 내는 물건값 비중이 높았다.

"인건비요? 알바 5명을 쓰는데 월 450만원 남짓이죠. 본사에서 30% 영업이익률이 나온다고 하는데 어림 없어요. 배달료 등 빼면 22%죠. 본사수수료, 카드수수료, 세금에 은행 이자 갚고...빚이 줄지 않는 이유죠."

실제 대전충남의 가계와 자영업자 부채는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지난 달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가 내놓은 '대전 충남지역의 가계 및 자영업자 부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대전 충남지역 가계 및 자영업자 부채 증가율은 전국평균(8.7%)보다 높은 11.7%(2012∼2017년 중)로 나타났다.

이중 가계부채를 뺀 자영업자 부채는 42조 6000억 원으로, 증가율은 무려 16.7%에 달했다. 자영업자 부채가 전체 부채 증가를 주도한 셈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싸워라? 현실적으로 불가능"

A씨는 내년을 더 걱정했다.

"본사의 경우 다행히 음식값은 올리지 않았어요.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르죠. 인건비가 또 오르니 올리겠죠."

-그래도 알바를 하는 직원 입장에서 보면 인건비는 올려야 하잖아요? 
"최저임금 인상은 어쩔 수 없다고 봐요. 그치만 정책 보완이 꼭 필요해요. (고용주에겐) 부담이 너무 커요."

-어떤 정책 보완이 필요하죠?
"본사와 가맹점 간 수수료, 임대료, 카드수수료 등에 대한 보완 대책이 먼저 나와야 하는 매번 최저임금만 올리니 부담이 커요."

-직접 본사와 물건 값 조정은 안 되나요?
"가맹주들이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요. 밀린 물건 값이 일정 기준 금액에서 단돈 100원만 초과해도 물건을 아예 안 줘요. 이런 상황은 모든 가맹점들이 비슷해요."

A씨는 "결국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 밖에 없다"며 "작년에 일하던 한 이모(상시직 직원)가 그만두겠다고 하는데 '내가 좀더 고생하더라도 인건비를 줄여야지'하는 생각에 붙잡지 못했다"고 밝혔다.

임대료도 8년 전 16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배 이상이 올랐다. A씨는 "내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근처에 보면 정말 터무니 없는 월세가 많아 문닫는 가게가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인건비(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면서도 "정부가 프랜차이즈 본사나 카드업체는 손대지 않고 최저임금만 손대는 건 현실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대전충남지역 자영업자(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는 2017년말 기준 총 43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수 대비 21.2%(전국 21.3%)다. 다만 자영업자 중에서도 고용원이 없는 소규모 자영업자 비중은 72.9%(충남 77.5%)다.

이 음식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B씨(52)는 "피자집 가맹점도 해봤는데 본사에서 가져가는 게 너무 많아 속 편하게 일반 식당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맹 본사에서 가져가는 재료값이 터무니 없다"고 덧붙였다.

카페 사장 "인건비 줄이려고 하루 14시간 일하지만..."

커피를 파는 카페로 들어섰다. C씨(30). 그는 청년 창업가다. 지난 해 취업을 준비하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점주의 권유로 아예 커피전문점을 인수했다.

"전 점주가 그만 하고 싶다며 제게 인수해 보라고 권유했죠."

그나마 초기투자비용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C씨는 1500원짜리 커피를 기준으로 하루 300잔 정도 판매한다. 월 매출은 2000만 원 정도다. 본사에 재료비로 800만원, 가게세 100만원, 전기, 가스, 수도요금 등으로 100만원을 지출한다. 인건비는 350만원(알바 4명)으로 평일 1명, 주말에 3명을 고용한다. 여기에다 이것저것 떼고 나면 B씨의 인건비 정도가 남는다.

"결국 제 인건비 남아요. 인건비를 줄이려고 제가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해요. 이따금 부모님이 오셔서 돕고요."

이 날도 C씨의 부모님이 나와 가게일을 돕고 있다.

- 언제부터 창업을 생각했나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죠. 창업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 창업을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힘들어요. 제 시간이 전혀 없어요. 인건비 지출을 줄이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요."

그는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전적으로 직접 하는 게 아니라면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2014년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대전지역 자영업체(신생기업 기준)는 창업 후 2년 이내에 절반 이상(55%)이 폐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생존률도 27%에 불과했다.

-그래도 최저임금은 올려야하지 않을까요?
"제가 아르바이트 할 때를 생각하면 최저임금은 올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직원들 주휴수당은 물론 초과근무수당까지 다 챙겨줘요. 하지만 인건비 올라가면 본사 재료비도 덩달아 올라가요. 가맹 본사도 인건비가 올라 물건값 인상 요인이 생겼다고 하는 거죠."

-가맹 본사에 재료비 조정 등은 건의하지 않았나요?
"얘기할 창구조차 없어요. 한달에 한 번 관리하러 오시는 분에게 건의해 봤지만 별 변화가 없어요."

증가속도 빠른 대전의 자영업자 밀집도, 음식업·음료업 많아
 몇몇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가맹 본사와의 계약 문제, 카드수수료 등 제반 시스템을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최저임금만을 올리는 것은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 심규상
대전 지역 자영업 밀집도는 1㎢당 157개(2011년 조사)로 광역시 중 부산, 대구, 광주에 이어 네 번째다. 반면 증가 속도는 가장 빠르다.

대전에서 30년째 자영업을 해왔다는 김영인씨(58)는 "대전 지역은 브랜드 경쟁력에 의존해 창업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음식업과 음료업 프랜차이즈 가입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밀집도까지 높다 보니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금융 비용 부담에 나가 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대전충남민언련은 20일 뉴스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지역 언론이 최저임금 인상 관련 보도를 하면서 "최저임금이 인상돼 소상공인이 경영상의 부담을 느낀다는 식의 보도만 있을 뿐 노동자의 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실제 기자가 만난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많아도 벌이가 시원찮은 진짜 이유가 가맹 본사가 가져가는 높은 비율과 임대료, 카드 수수료에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진짜 문제를 풀지 않고 최저임금만 올리는 정부의 대응에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는데 맨 마지막 최저임금 단추만 올려 달면 무슨 소용인가요. 영세 자영업자만 죽어 나갈 밖에요." (B씨)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