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커버스토리] "너, 그런 태도 부장님이 싫어해.."오지랖 김대리, 혹시 젊은 꼰대?

강창욱 기자 2018. 7.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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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불문 늘어가는 꼰대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대접 받으려는 권위의식 감춰져
원하지 않는 후배에게 충고·지적, ‘자칭멘토형’ 가장 많이 나타나
대학가 강압적 음주·얼차려…‘젊은 꼰대질’ 대물림 현상도

신입사원 시절 회사 선배들과 함께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는 우리 기수를 보고는 종전까지 부서 막내였던 여자 선배가 쌀쌀맞게 입을 열었다. “이런 데선 너희가 수저 놓고 물도 따르는 거야.” 그의 눈빛과 말투에 흥건했던 짜증스러움을 잊지 못한다. 오래전 회사를 그만둔 그 선배는 요샛말로 ‘젊은 꼰대(젊꼰)’였고 그런 젊꼰은 지금도 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전통’이나 ‘미덕’ 같은 단어를 들먹이지만 결국 서열을 강조하며 자신도 대접을 받고자 한다. 그 저변에는 권위의식과 보상심리가 숨어 있다.

꼰대는 원래 나이 든 남성을 일컫던 말이다. 과거에는 주로 교사나 아버지를 지칭하는 은어로 쓰이다가 언젠가부터 말이 안 통하거나 서열과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꼰대의 특징은 권위(서열)주의 불통 독선 무례 인정욕 자기애 등이다. 꼰대라고 하면 나이 많은 남성부터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범위가 넓다. 나이와 성별 직업 학력 출신지역 종교 정치성향 등 거의 모든 조건과 무관하게 꼰대는 나타난다.

동년배가 꼰대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씁쓸하고, 자기 자신이 꼰대로 변해가고 있음을 깨닫는 건 충격적이다. 그런 기분을 느껴야 옳지만 보통은 자각조차 못한 채 꼰대가 되고 꼰대로서 뭉친다. 어떤 이들은 꼰대임을 자부하기라도 하듯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다치게도 하는 ‘꼰대성’을 당당하게 휘두른다. 세상에는 우리가 아니라도 꼰대가 가득한데 꼰대는 왜 세대 불문 늘어만 갈까.

꼰대, 그 불편한 9가지 유형
꼰대는 나이나 직위 같은 서열을 강조하며 상하관계를 중시한다. 자신이 윗사람이니 상대가 자기 말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부류가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골목대장형’이다. 이들은 나이나 지위라는 힘으로 남을 찍어 누르면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모욕 막말 욕설 같은 언어폭력을 동원한다.

꼰대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꼰대인지 모른다. 되레 스스로 멘토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자기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사사건건 가르치려 드는 경향이 있다. ‘자칭멘토형’이다. 국민일보가 지난 11∼13일 구인·구직 중개업체 사람인과 함께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자칭멘토형은 ‘젊은 꼰대’와 ‘기성 꼰대’ 모두에서 주로 나타나는 유형 1위를 차지했다.

자칭멘토형은 조언을 구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충고와 지적을 하사하듯 하며 자신의 견해와 사고방식을 강요한다. 이들은 ‘나는 꽤 괜찮은 선배’라는 식의 자기만족을 느끼기도 하지만 정작 듣는 사람은 그 견해에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자칭멘토형과 비슷하면서 좀 더 사적인 영역에 치근덕대는 유형이 있다. 연애·결혼·가족사를 비롯한 사생활을 꼬치꼬치 캐묻거나 참견하는 ‘동네반장형’이다. “남자친구 있어?” “시집 언제 갈 거야? 빨리 결혼해야지” “애 낳을 거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낳는 게 좋아”처럼 상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을 거침없이 한다.

동네반장형만큼이나 피곤한 부류가 ‘사감선생형’이다. 인사와 술자리 예절부터 말투·표정을 비롯한 태도, 옷차림·화장·헤어스타일 같은 외모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걸고넘어지는 경우다. 이런 꼰대는 젊꼰 유형 2위로 꼽혔다.

꼰대는 후배에게 ‘네가 틀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가 대표적인 말투다. 이들은 의견이 맞서면 자기 견해를 우선시한다. ‘독불장군형’이다. 이 유형은 자기보다 나이가 적거나 연차가 낮은 직장 후배가 반론을 제기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불편해 한다. 이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안 뒤에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상대에 대한 존중’ 가장 많이 꼽아
젊은 꼰대 스스로 탈권위적이고 후배와 가깝다고 믿지만 착각
상대에게 상처… 재능 발휘도 막아

대부분 “한번 (생각해)보자” “좀 더 확인해보자” 같은 말로 상황을 모면하고는 그 일을 다시 거론하지 않는 식으로 회피한다.

자신이 한때 대단했다는 투로 과거를 미화하는 ‘참전용사형’도 쉽게 눈에 띈다. “예전에는” “우리(나) 때에는” 같은 말을 자주 하고 무용담 늘어놓기를 즐긴다. 무용담의 사실 여부를 떠나 과거의 성과로 인정받고자 하는 태도 자체가 꼰대성이다. 꼰대질은 자신의 지위나 성취 따위에 도취돼 나타나는 자기도취적 현상이기도 하다. 대놓고 잘난 체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속으로 우쭐대는 사람도 ‘나르시스형’에 속한다.

꼰대 중에서도 가장 무지막지한 부류는 ‘독립투사형’이다. 이들은 회사 일과 단체생활을 최우선으로 삼도록 강제하며 남의 사생활을 희생시킨다. 시도 때도 없이 ‘수당 없는 야근’을 시키면서 휴가를 막고 퇴근 후나 주말에도 업무 메시지를 보내 일하도록 만든다.

언행에 공사 구분이 희박하다는 점도 꼰대의 특징이다. ‘아랫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전세 낸 것처럼 본업과 무관한 개인적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들은 사례 중에는 후배에게 자기 석사학위 논문을 위한 자료 조사를 시키거나 가족여행 계획을 대신 짜도록 한 경우가 있었다. 이들은 ‘갑질오너형’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넌 아닌 거 같지?
젊은 꼰대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예를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대학가다. 대학은 1∼2년 먼저 입학한 것만으로 후배들에게 갖은 부조리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곳이다. 지나친 예절 강조를 비롯한 군기 잡기, 강압적 음주, 장기자랑 강요, 희롱과 추행을 망라한 성폭력, 얼차려, 욕설과 막말, 폭행까지 꼰대질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요즘 그런 일이 어디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선배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라, 선배가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하기 전까지 문자메시지로만 연락하라, 선배와 술자리에선 선배 허락을 받고 귀가하라, ….’ 지난해 이화여대 모 학부 신입생 카카오톡 대화방에 올라온 이 지침은 꼰대질이 나이와 성별을 불문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학 신입생 때는 을(乙)이었다가 선배가 되면 갑(甲)이 되고, 취준생(취업준비생)이나 신입사원 때는 다시 을이 됐다가 입사 후배가 들어오면 다시 갑이 되는 식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2030 꼰대’는 자신의 지적질에 “그렇게 하면 윗사람이 싫어하기 때문에 알려주는 것”이라는 사족을 자주 붙인다. 윗사람 핑계는 젊은 꼰대의 여러 특징을 함축한다. 자신의 호불호를 숨기는 습관, 잔소리를 하면서도 자신은 좋은 선배로 남고 싶어 하는 욕심, 알아서 윗사람에게 맞추려는 자세, 후배에게 훈계할 수 있다고 여기는 권위의식 등. 중소기업 대리급 사원 김모(34)씨는 “윗사람 운운하는 비겁한 핑계는 이제 지겹다”며 “‘네가 그렇게 하는 걸 내가 싫다’고 말하는 게 기성 꼰대라면 다른 선배들의 호불호를 앞세워 비위를 맞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젊은 꼰대의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약 55%는 ‘2030 꼰대’가 자신은 ‘4050 꼰대’와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젊은 꼰대는 스스로 합리적·탈권위적·진보적이면서 후배들과도 사이가 가깝다고 믿지만 그건 착각이다. 직장인 정모(30)씨는 “아무리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척해도 꼰대는 꼰대”라며 “그들 역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괴물은 되지 맙시다
꼰대가 기피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꼰대도 안다. 그래서 묻는다. “나 꼰대 같아?” “내가 잘못하는 거야?”라고. 이들은 내심 “아니야”라는 답변을 기대한다. 이런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하면 돼)식 문답을 통해 같은 집단 내에서 꼰대질은 정당화된다. 꼰대는 세대·직급·계급·학년별로 집단화하는 경향이 있다. “걔들은” “그 기수는” “요즘 애들은” 식으로 어떤 이들을 싸잡아 욕하는 태도가 집단화한 꼰대의 말버릇이다.

꼰대는 상대를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상처를 주고 개성과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꼰대 아래에서 사람들은 시들어간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필요나 기준에 맞춰 상대를 대하는 행태는 소시오패스의 특징과도 멀지 않다. 꼰대를 분석한 책 ‘꼰대의 발견-꼰대 탈출 프로젝트’(인물과사상)에서 저자 아거(필명)는 “나는 젊은 꼰대가 과거보다 권위주의적이고, 서열과 위계를 당연시하고, 공감능력 제로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 꼰대는 어쩌면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사회가, 생존 경쟁을 펼쳐야 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르다”고 진단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태도로는 배려와 공감, 침묵, 성찰, 겸손 등이 거론된다. 국민일보 설문조사에서 가장 많은 응답자가 고른 것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62.9%)였다. 이어 말조심(41.1%), 꾸준한 자기성찰(36.8%), 지나친 참견 및 관심 배제(34.5%), 철저한 공사 구분(26.2%) 순으로 꼽혔다. ‘후배들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13.0%에 그쳤다.

안타깝지만 꼰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보통은 자신이 꼰대가 되는 줄도 모르고 꼰대가 되어갈 것이고, 꼰대스러워졌음을 알게 된 뒤에도 행동을 크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꼰대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사람은 17.8%로 10명 중 2명이 채 안 됐다. 나머지 82.2% 중에 ‘꼰대’라 불리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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