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 계엄실무와 달라"..'촛불 진압' 가상 시나리오 아니었다

손제민 기자 2018. 7. 2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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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2017년 3월 박근혜 탄핵 기각 대비해 ‘선포문’ 미리 작성
ㆍ언론사 배치 요원 수까지 지정…포털·SNS 차단 계획도
ㆍ국방부 6월 제출 자료엔 없던 문서…청 “경위 파악 중”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송영무 국방장관(왼쪽)의 간부소개 도중 차례가 된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국군기무사령부의 촛불집회 당시 계엄령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계엄 선포에 대한 개념적 검토 차원을 넘어 구체적 실행 계획으로 볼 수 있는 충격적인 내용이 다수 담겨 있다.

군이 합동참모본부가 발간하는 통상적인 계엄 매뉴얼과 구별되는 상세한 계엄 실행 계획을 수립한 것은 촛불집회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에 대비해 계엄령 선포를 보다 치밀하게 준비했음을 의미한다. 군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교감 없이 이러한 일을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등 윗선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2017년 3월용 계엄 선포문 작성

이 문서는 우선 “계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보안유지하에 신속한 계엄 선포, 계엄군의 주요 목(길목) 장악 등 선제적 조치 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으로 적시하고 있다. ‘선제적 조치’ 사례로 2년마다 작성되는 통상적인 ‘계엄실무편람’과 달리 계엄사령관에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추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가정보원 통제 계획도 세웠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지시하고,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도록 했다. 정보 통제의 주요 길목을 차단하는 사전 정지작업인 셈이다.

아울러 비상계엄 선포문이 2017년 3월 상황에 맞춰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979년 10월26일 계엄령 때 것(선포문)과 1980년 계엄령 때 것과 함께 2017년 3월에 공포할 내용이 함께 담겨 있다”고 말했다.

■ 여의도·광화문 탱크 진주 계획도

군이 계엄 성공을 위해 2차적으로 차단해야 할 길목은 국회와 언론사, 광화문광장 등으로 명시됐다. ‘각 언론사별 계엄사 요원 파견계획’에서는 KBS·CBS·YTN 등 22개 방송사와 조선일보·매일경제 등 26개 신문사, 연합뉴스, 동아닷컴 등 8개 인터넷매체에 배치될 통제요원 숫자까지 지정했다. 이들은 신문 가판, 방송·통신 원고 등의 사전 검열 임무를 맡았다. ‘유언비어 유포 통제’ 구실로 주요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차단 계획도 세웠다.

국회에 대해선 ‘20대 여소야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 ‘당정협의’를 통해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표결 참여를 막고,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체포 등 의결정족수 미달 계획을 수립했다.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경고문 발표 후 야당 의원들을 집중 검거하는 방안이다.

중요시설 494개 장소와 집회 예상지역인 광화문과 여의도에는 기계화사단, 기갑여단, 특전사 등으로 편성된 계엄임무수행군을 야간에 전차·장갑차를 이용해 신속 투입하는 계획도 담았다.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일전을 불사하려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 시나리오 아닌 구체적 실행 계획

청와대는 이 문서가 합참 계엄과에서 2년마다 수립하는 ‘계엄실무편람’처럼 통상적인 개념 책자와는 “전혀 상이함”을 강조했다. 2017년 3월 촛불집회 당시 정세에 최적화된 문건이라는 점에서 ‘군이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 시나리오’라는 한국당 일각의 주장을 일축할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란 것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 청와대 참모들은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청구가 기각될 가능성을 확신하는 등 민심과 괴리된 현실 인식을 보였다.

기무사가 이 문서를 박 정권과 교감하에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 왜 이제야 제출됐나

이 문건은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공개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8쪽)에 딸린 67쪽짜리 문서로 이날 처음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9일에야 이 문서를 처음 봤다고 한다. 국방부가 6월28일 청와대에 관련 문서를 제출할 때는 물론 이후에도 자료를 온전히 제출하지 않은 것이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지난 3월부터 이 문건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석구 기무사령관은 이날 국회 법사위에서 ‘3월16일 송 장관에게 두 문건 모두 보고했나’는 질의에 “관련 문건을 보고했다”고 답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방부 특별수사단의 본안 수사와 별개로 이 문서의 지연 보고에 대해서도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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