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계엄령 계획.."12·12 군사 반란과 닮은꼴"

박영회 2018. 7.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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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그런데 오늘(20일) 공개된 계엄 계획을 보고 계엄을 경험하신 분들은 그때가, 또 계엄을 경험 못한 세대는 현대사 교과서가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박영회 기자가 실제 현대사에 기록된 계엄의 장면과 오늘 발표 내용을 겹쳐서 설명해 드립니다.

◀ 리포트 ▶

1961년 5월 16일, 육군 소장 박정희 등이 주축이 된 군사 쿠데타.

군부 세력은 이른 새벽, 서울 남산 중앙방송국부터 장악해 이른바 혁명공약을 발표하고 계엄을 선포합니다.

같은 날 오후 발표된 포고 4호, 국회 해산을 명령하고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킵니다.

[대한뉴스/1961년] "이날 새벽 서울에 진군한 혁명군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나라의 입법, 사법, 행정의 전 기관을 완전 장악했습니다."

언론, 특히 방송부터 장악해 국민을 속이고, 이어 자신들을 견제할 의회를 마비시킨 건데, 기무사의 작년 계엄령 계획과 똑 닮았습니다.

19년 뒤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도 비슷한 수순을 밟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을 차례로 체포 또는 구금해 의회 세력을 무력화시켰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이른바 국보위를 세워 전권을 휘두릅니다.

[대한뉴스/1980년 6월 3일] "내각과 계엄당국의 협조 체제를 긴밀하게 하기 위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언론사들은 통폐합한 뒤, 이른바 '보도지침', 언론의 보도 내용과 방향까지 모두 정권이 결정했습니다.

'국회 무력화'와 '언론 통제', 계엄의 공식뿐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탱크를 투입한다는 계획 역시, 신군부가 실권을 잡았던 1979년 12·12사태를 떠오르게 합니다.

MBC뉴스 박영회입니다.

박영회 기자 (nofootbird@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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