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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미생물 이식·시험관 인공수정…멸종위기 동물구하기 `쥬라기공원 대작전`

원호섭 기자
입력 : 
2018-07-20 17:03:57
수정 : 
2018-07-21 0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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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피나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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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공룡을 억지로 복원시켜 '섬'에 가둔 뒤 관광지로 만들었다. 사고로 방치된 섬에서 공룡은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만들며 살아간다. 하지만 섬 한가운데 있는 화산 상태가 심상치 않다. 화산이 폭발한다면 6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 충격으로 지구에서 사라졌던 공룡은 또다시 멸종사태를 맞게 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인간은 공룡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결국 인간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공룡을 구하기 위해 쥬라기공원으로 향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쥬라기 공원 폴른 킹덤'은 과학으로 탄생시킨 공룡을 멸종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살리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은 현실세계에서도 진행 중이다. 과학자들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경주하고 있을까. 먼저 나무에 매달려 하루 종일 잠을 자고 가끔 나뭇잎을 뜯어먹는 코알라를 살펴보자. 치명적일 정도로 귀여운 모습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코알라는 개체수 감소로 '취약(Vulnerable)' 등급의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돼 있다. 한때 호주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코알라가 살았다. 하지만 1870~1940년 코알라 모피 유행과 난개발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수백만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호주 코알라재단에 따르면 현재 호주 야생에서 살고 있는 코알라 개체수는 4만3000여 마리, 보호 구역에서 살고 있는 개체수는 30만마리 정도다. 전문가들은 향후 20년 내에 코알라 개체수가 지금의 절반만 남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하고 있다. 이처럼 개체수 급감 위기에 처한 코알라를 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배변 이식과 유전체 분석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코알라는 호주에만 번식하는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 산다. 그런데 서식지 파괴로 유칼립투스 잎이 부족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냥 단순히 유칼립투스 잎이 풍부한 다른 곳으로 서식지를 옮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다. 같은 유칼립투스라고 하더라도 품종에 따라 코알라가 먹지 못하는 유칼립투스 잎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코알라들은 기존에 먹던 것과 다른 품종의 유칼립투스 잎을 전혀 먹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코알라 대변을 관찰해 품종이 다르면 유칼립투스 잎을 먹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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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무어 시드니대 교수는 "서식지를 옮긴 코알라가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유칼립투스 품종과 코알라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난달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생물학회 연례회의에서 발표했다. 무어 교수 연구진은 호주 전역에 살고 있는 200여 마리 코알라 대변을 채취했다. 그 뒤 대변 속에 포함된 식물성 물질을 분석했더니 어떤 코알라들은 유칼립투스 중 영양분이 풍부하다고 알려진 '유칼립투스 비미날리스(만나검)'만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코알라들은 영양분이 적은 '유칼립투스 오블리쿠아(메스메이트)'만 먹을 수 있었다. 극히 일부 코알라만이 두 가지 유칼립투스를 모두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어 교수는 네이처와 인터뷰하면서 "만나검과 메스메이트를 먹는 코알라의 장내 미생물이 서로 다름을 확인했다"며 "그래서 메스메이트를 먹는 코알라의 대변 속 미생물을 만나검만 먹는 코알라에 이식했는데 이후 식성이 변하면서 일부 코알라는 메스메이트도 소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코알라의 개체수 감소에는 전염병 창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게 성병으로 알려진 클라미디아 감염이다. 과거 유럽 사람들이 호주로 넘어왔을 때 함께 들여온 가축으로부터 전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클라미디아에 감염된 코알라는 시력을 잃거나 불임이 되고 요로 감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결국 죽고 만다.

호주를 비롯해 7개국 29개 기관 54명의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코알라 지놈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코알라 유전체 분석에 들어갔다. 코알라 지놈 컨소시엄은 5년 만인 지난 3일 학술지 '네이처 유전학'에 코알라 유전체 지도를 발표한 뒤 이를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공개했다. 슈퍼컴퓨터까지 동원돼 작성된 유전체 지도에 따르면 코알라는 34억개 이상의 염기쌍과 함께 2만6000여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연구를 이끈 레베카 존슨 시드니대 교수는 "인간 유전체 분석을 통해 여러 신약이 개발됐듯이 코알라 유전체 분석은 클라미디아 감염을 막을 수 있는 백신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며 "생물학적으로 독특한 코알라를 보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호주의 상징인 코알라를 보호하기 위해 올해 365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서식지 확보와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간단한 식단 변화가 멸종 위기종을 돕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도 나왔다.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동물원 연구진은 준위협종으로 분류된 코뿔소 식단을 바꿈으로써 생식능력이 떨어지는 동물원 코뿔소 임신에 성공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동물원에 있는 백색코뿔소와 외뿔코뿔소 차이를 관찰했다. 외뿔코뿔소는 동물원에서 살아도 잘 번식했지만 백색코뿔소 번식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백색코뿔소 대변에는 암컷 생식호르몬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인 '피토에스트로겐'이 포함돼 있었다. 연구진은 "동물원 코뿔소는 동일한 먹이를 먹는 만큼 이들의 장내 미생물이 피토에스트로겐을 서로 다르게 분해한다는 생각에 백색코뿔소 먹이를 피토에스트로겐 함유량이 적은 식단으로 바꿨다"며 "그 결과 2년 뒤 임신하지 못했던 두 마리 백색코뿔소가 건강한 새끼를 낳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코알라나 동물원에 살고 있는 코뿔소의 상황은 나은 편이다. 전 세계에 단 두 마리만 남아 있는 북부흰코뿔소 멸종은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최근 독일 라이프니츠 야생동물연구소 연구진이 시험관 아기 방식을 활용해 북부흰코뿔소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아프리카 중부 지역에 서식하는 북부흰코뿔소는 지난 3월 마지막 남은 수컷이 죽은 뒤 그 딸과 손녀만 남았다. 암컷 두 마리만 남은 만큼 더 이상 번식은 불가능했다. 수컷의 정자는 보관해 놨지만 설상가상으로 암컷인 딸은 다리에 부상을 입어 임신이 어려운 상태고 손녀는 생식 기능에 문제가 있어 배아가 자궁에 착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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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라이프니츠 야생동물연구소 연구진은 냉동 보관 중이던 북부흰코뿔소 정자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또 다른 종인 남부흰코뿔소 난자와 수정시킨 뒤 대리모에 착상시킬 수 있을 정도까지 배양하는 데 올인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남아 있는 두 마리 암컷 북부흰코뿔소 난자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채취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연구진은 인공수정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17개의 남부흰코뿔소 난자에 남부흰코뿔소 정자를 주입했고 이를 통해 3마리의 순종 남부흰코뿔소가 탄생했다. 코뿔소에서 인공수정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신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의 다음 과제는 암컷 북부흰코뿔소 난자를 채취한 뒤 보관 중인 북부흰코뿔소 정자와 수정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아를 암컷 남부흰코뿔소 자궁에 착상시키면 북부흰코뿔소 유전자를 오롯이 갖고 있는 코뿔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연구진은 3년 이내 이 같은 방식으로 세계 최초의 인공수정 북부흰코뿔소를 탄생시킬 계획이다. 또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해 냉동 보관 중인 북부흰코뿔소 피부세포에서 난자, 정자로 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들어 인공수정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멸종된 공룡도 화석에서 DNA추출해 복원 가능할까? "수백만 년 전 멸종한 공룡 같은 동물도 그들의 청사진을 우리가 찾을 수 있도록 남겨 놨죠.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가 갇힌 호박 화석을 발견했거든요."

1993년 개봉한 영화 '쥬라기공원' 첫 장면에 등장하는 대사다. '쥬라기공원'은 이처럼 호박 속에 화석으로 남아 있던 모기에게서 공룡의 DNA를 추출해 공룡을 복원한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DNA가 파괴되는 만큼 영화 속 설정이 현실이 될 리는 거의 없지만 과학자들은 비슷한 방식을 이용해 멸종한 동물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2015년부터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의 유전자를 접합해 멸종된 매머드를 부활시키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멸종된 동물 사체에서 체세포를 추출해 낸다. 이어 멸종된 동물과 비슷한 동물의 난자에서 핵을 빼낸 뒤 멸종동물 체세포를 넣어 배아를 만든다. 매머드의 경우 비슷한 동물은 아시아코끼리다. 이 배아를 난자를 제공한 동물 자궁에 착상시킨 뒤 태어나게 하면 멸종동물과 유전적으로 99% 일치하는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는 유전적으로 비슷한 만큼 이 같은 일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온전한 DNA를 갖고 있는 매머드 세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게 문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멸종동물과 비슷한 종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아시아코끼리 배아에서 특정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제거한다. 예를 들어 매머드는 긴 털과 두꺼운 피하지방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된 유전자를 넣어주거나 제거한 뒤 코끼리 자궁에 착상시키면 완벽한 매머드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외형을 갖게끔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코끼리 세포로 매머드 세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7000만개 이상의 유전자를 교정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외에도 여러 멸종동물을 복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800년대 초 북미 지역에 수십억 마리가 살았던 '나그네비둘기'도 그중 하나다. 1914년 공식적으로 멸종했는데 원인은 인간의 무분별한 포획 때문이었다. 하버드대 연구진은 박물관에 있는 나그네비둘기 박제 깃털에서 유전자를 채취한 뒤 바위비둘기 난자에 넣어 복원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 연구진은 1980년대 중반 호주에서 멸종한 위부화개구리 복원에 도전해 배아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매일 30~159종의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인류 출현 전 포유류 1종이 멸종하는 데 평균 50만년이 걸렸지만, 인류가 등장한 이후에는 한 달에 1종꼴로 사라졌다는 보고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과거 진행됐던 생물 대멸종은 100만년에 걸쳐 진행됐지만 현재 인류에 의해 진행되는 멸종 속도는 100배 이상 빠르다는 보고도 나온다. 1500년 이후 척추동물 300여 종이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쳤고 인류를 제외한 나머지 생물체는 개체수가 25% 가까이 급감했다. 멸종된 생물을 어렵게 복원하기 전 인류에 의한 생물 멸종을 지연시키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은 아닐까.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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