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포토다큐]'인공수정 1호' 아기 반달곰은 동생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강윤중 기자 2018. 7. 20.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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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양정진 야생동물의료센터 팀장이 번식연구실에서 인공수정으로 첫 출산에 성공한 반달곰 ‘RF-04’의 인공수정 당시 발정기의 질세포 색상과 형태를 현미경과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관찰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인공수정으로 형성된 수정란은 어미의 자궁을 떠돌다 10~11월 경에야 착상이 됐다. 동면을 앞두고 영양상태가 좋아진 덕분이다. 새끼는 2월 어미가 동면 상태일 때 태어났다.

“꿈에서 초음파를 하는데 곰이 보이고 손으로 만져졌어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 정동혁 센터장은 ‘태몽’이라 했다.

그가 꿈을 꾼 지난해 7월 4일, 반달가슴곰(RF-04)에 인공수정(수컷곰에서 채취한 정액을 암컷곰에 넣어주는 방식)을 한 날이다. “혹시 잘못될까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반달곰과 함께한 14년 경력의 정 센터장의 말은 비장했다. 책임자로서 부담이 컸던 것이다. 의료센터 연구팀은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반달가슴곰 인공수정 출산에 성공했다.

한 연구원이 휴대폰을 이용해 지난 2월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새끼 반달곰의 움직임을 실시간 관찰을 하고 있다. 사람의 접근이 차단된 종복원기술원 내 적응시설에서 어미(RF-04)와 함께 보내고 있다. 이후 자연적응훈련을 거쳐 자연으로 방사 할 예정이다.

전남 구례군 지리산 아래에 터 잡은 종복원기술원 야생동물의료센터를 지난 17일 찾았다. 연구원들이 마취 상태의 암컷 반달곰(KF-105)을 센터 내 수술실로 옮기는 중이었다. 뒷다리가 절단돼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어 기술원 내 생태학습장에 머물고 있는 반달곰이다. 인공수정을 하기 적합한 발정상태인 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가슴에 품은 반달을 천장으로 향한 채 누운 반달곰 주위에서 연구원들이 분주했다. 생식기 상태를 확인하며 사진을 찍고, 질세포와 혈액도 채취했다. 초음파로 난소와 난포의 형태, 크기를 측정해 이전 상황과 비교하고 기록했다. 번식연구실에서는 염색한 질세포의 형태와 색깔의 분포를 관찰했다.

야생동물의료센터 반달곰 인공증식 연구원들이 이날 발정상태를 확인할 암컷곰 ‘KF-105’를 옮기고 있다.
연구원들이 의료센터 내 수술실에서 초음파로 반달곰 ‘KF-105’의 난소와 난포의 크기와 형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발정상태를 확인하고 인공수정의 시기를 판단한다. K는 Korea, F는 Female, 105는 관리번호다.

연구진은 초음파와 질세포, 혈액 내 호르몬 검사결과를 종합해 ‘KF-105’는 아직 발정기가 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일주일 전 센터를 찾았을 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첫 인공수정 출산이라는 빛나는 성취가 있었지만 번식연구는 계속됐다. 인공수정의 다양한 조건에 대한 자료들을 축적한는 과정이다.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보던 양정진 팀장은 “개체마다 발정 환경이 달라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동혁 센터장이 초음파로 암컷곰의 난소와 난포의 크기·형태를 파악하고 있다.
양정진 팀장이 ‘KF-105’의 질세포를 모니터에 띄워 살펴보고 있다. 세포의 색상과 형태로 발정기를 확인한다.
암컷곰 ‘RF-04’의 인공수정 당시 발정기의 질세포 색상과 형태(왼쪽)와 발정기가 오지 않은 ‘ KF-105’의 질세포.
혈액 내 호르몬을 분석해 암컷 반달곰의 발정상태를 판단한다.

국내 반달곰 인공증식의 역사는 길지 않다. 종복원기술원이 2004년 러시아 반달곰 6마리를 들여오면서 종복원사업이 본격화됐고, 2011년 사업의 일환으로 인공수정을 통한 개체증식에 뛰어들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 스미소니언·독일 라이프치히 연구소의 전문가를 찾았다가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50년 역사의 판다 선행연구를 참고했지만 반달곰은 종이 달라 이에 맞는 연구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현재 방식의 인공증식 연구는 2015년부터 시작된 것이다. 첫 반달곰 출산은 3년 만의 성과다. 정 센터장은 “증식연구는 국외 도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개체를 확보하고 개체군의 건강성과 유전적 다양성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의료센터 수의사들은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지금과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암수 반달곰의 인공증식 계획표. 야성을 잃거나 부상을 당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반달곰들이 연구의 대상이다.
의료센터는 인공수정 증식연구를 위해 수집한 암컷곰의 질세포 슬라이드를 반영구 보존하고 있다.

증식연구 외에도 센터의 업무는 많다. 각 개체의 검역과 질병검사, 복원 종 서식지 이주를 위한 현장 마취, 응급구조·외과적 처치, 자연방사 후 질병 모니터링, 폐사동물 부검·감정, 야생동물의 구조·치료·재활·방사 등도 병행해야 한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의료진은 설악산에서 데려와 수술한 산양을 검진했고, 구조돼 들어온 족제비와 소쩍새 등 야생동물들을 보살폈다.

현재 지리산에는 56마리의 반달곰이 살고 있다. 머지않아 반달곰의 수가 지리산의 수용한계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 센터장은 “반달곰은 작은 개체군이라 질병 등 외부 환경변화에 매우 취약해 생태학적으로 충분한 개체수가 아직 아니다”라고 밝혔다.

야생동물의료센터 반달곰 인공증식 연구진이 곰 모양이 새겨진 출입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서명교 수의사, 이안나 연구원, 정동혁 센터장, 유지상 연구원, 양정진 팀장, 안우영 연구원, 양승완 연구원, 임승효 수의사.

전국적으로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리산 자락의 한낮 최고기온도 36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센터 연구팀의 휴가는 9월 이후나 가능하다. 반달곰의 교미·번식기가 6~8월로 이때에 증식연구를 집중해야하기 때문이다. 양 팀장은 말을 하면서 ‘시행착오’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반달곰 인공수정 출산의 성공은 결국 ‘실패의 축적’이 견인했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밝혀낸 것도 많지만 여전히 알아가는 과정이고, 더 밝혀내야 할 것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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