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르포] 택배노조, 7시간 공짜노동 한다는데..직접 가보니

조지원 기자 2018. 7.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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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 끝에 서서 7시간 동안 대기하는 거예요. 자기 본업(근로시간)의 절반을 공짜로…(일합니다.)”

지난 19일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CJ대한통운 신월대리점에서 휠소터가 택배 상자를 분류하는 모습. /조지원 기자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기사들이 하루 근무시간 14시간 중 7시간을 택배 분류작업에 동원돼 ‘공짜노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택배노조는 7시간 공짜노동 분류작업을 개선하라며 물류업계 1위 기업인 CJ대한통운과 갈등을 빚고 있다. 택배노조는 지난달 30일 하루 파업을 했고, 파업 이후에도 분류 작업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일 찾아간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CJ대한통운(000120)신월대리점에서는 레일 끝에 서서 대기하고 있는 택배기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분류작업에 7시간이 걸린다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물류업계에서는 ‘분류작업 7시간 공짜노동’이 택배노조의 억지 주장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종훈 민중당 의원 중재로 택배노조가 파업을 중단하고 20일부터 복귀하기로 했지만, 분류작업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 휠소터(Wheel Sorter) 도입 이후 분류작업 빨라져

이날 오전 9시쯤 찾은 신월대리점에서는 도급업체 직원들이 서브터미널에서 물건을 가득 싣고 온 11톤 트럭에서 짐을 내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리기 바빴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라간 택배상자는 중간에 스캐너를 한 번 거치더니 담당 배송기사가 있는 구획을 알아서 찾아갔다. 벨트 중간마다 설치된 소형 바퀴(휠)가 회전 방향을 바꿔가며 상자를 분류했다. CJ대한통운이 1227억원을 투자해 전국에 설치하고 있는 자동 분류기 휠소터(Wheel Sorter)가 작동하는 모습이다.

분류작업이 이뤄지는 컨베이어 벨트는 한자 ‘아닐비(非)’ 글자 형태와 닮아 있었다. 중앙이 메인 벨트고, 중간마다 양쪽에 ‘소트’라고 부르는 레일이 있었다. 스캐너가 박스에 붙은 송장에서 바코드를 인식하면 휠소터가 담당 배송기사 소트로 물건을 분류했다. 소트 한 곳은 택배기사 5~6명(최대 10명)이 함께 쓴다. 소트에 물건이 쌓이면 각 택배기사 앞에 상자를 쌓아두는 일이 택배노조가 말하는 ‘분류’였다. CJ대한통운과 대리점 측은 이를 ‘인수’라고 불렀다. 분류는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휠소터가 도입되기 전 택배기사들은 오전 7시까지 출근했다. 예전에는 상자가 자동 분류되지 않아 컨테이너 벨트를 따라 일렬로 서서 지나가는 택배 상자를 계속 지켜봤다. 그러다 자신의 이름을 찾으면 주소가 맞는지 확인하고 손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휠소터 도입 이후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휠소터가 담당 배송기사까지 확인해 소트 끝으로 물건을 보내주기 때문에 바닥에 쌓기만 하면 되는 작업이 됐다. 현재 CJ대한통운 대리점 약 2000곳 중 휠소터가 설치된 곳은 70% 정도이고, 나머지 대리점에도 휠소터가 올해 안에 설치될 예정이다. 휠소터가 없는 대리점은 작업 시간과 노동 강도가 2~3배 정도 더 길고 세다.

분류작업을 하는 택배기사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택배기사 5~6명이 돈을 모아 아르바이트 직원 1~2명을 쓰고, 그 시간에 배송을 나가는 것이 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직원 인건비는 대리점주가 일부 부담하고, 나머지를 같은 소트 소속 기사들이 나눠 낸다. 택배기사 한 명이 한 달에 부담하는 아르바이트 인건비는 6만~7만원 수준이다.

택배기사 대신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조지원 기자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고 택배기사가 직접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5~6명이 한 번에 모두 나와서 7시간 내내 서있지 않고 순서를 정해 1~2시간씩 번갈아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날 찾은 신월대리점도 계약된 택배기사만 160명이지만, 오전 9시쯤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던 택배기사는 많아야 30명 정도였다. 신월대리점 택배기사 대부분은 분류 아르바이트를 쓰고 있다.

택배노조가 분류작업에 걸린다고 한 7시간은 서브터미널에서 물건을 싣고 오는 11톤 차량이 처음 대리점으로 들어온 시간부터 마지막 차량이 떠나는 시간까지다. 그 시간 동안 택배기사가 계속 대기하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분류 아르바이트 직원들도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1시에 퇴근한다. 또 이날 신월대리점에는 오전 7시 첫 차가 들어와서 오후 1시가 되기 전에 마지막 차가 떠났다. 6시간이 넘지 않았다.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 정도에만 오후 2시쯤 작업이 끝난다고 했다.

택배노조는 분류 아르바이트 인건비도 부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CJ대한통운은 택배가 휠소터를 지날 때까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분류는 배송의 일부라고 반박한다. 아르바이트를 쓰는 것은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가 알아서 결정하고 부담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 한 상자 배송에 800~900원…단가 인상하면 오히려 수입 감소

CJ대한통운이 택배 한 상자를 배송할 때마다 받는 수수료(배송비)는 2300원 수준이다. 이 중 택배기사가 800~900원을 가져간다. 나머지 1400~1500원에서 터미널과 대리점 상‧하차 도급업체, 간선차량 기사 등 기타 인력 인건비가 나간다. 2300원에서 다 떼고 CJ대한통운이 가져가는 돈은 70원(3%)이다.

택배기사 한 명이 하루에 처리하는 물량이 300상자라고 보면 일당은 24만~27만원이다. 주 5일 근무 기준으로 4주 동안 일하면 월수입은 약 480만~540만원을 버는 셈이다. 이 일당이 모두 수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 기름 값, 밥 값 등 각종 비용을 제외해야 한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다른 회사보다 밀집도가 높아 택배기사 한 명이 처리하는 구획이 넓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른 회사보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더 많은 물량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담당 구역 내 물량이 혼자 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면 대리점주에게 구획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직접 고용해 써도 되고, 배우자와 함께 일해도 된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중 함께 일하는 부부는 900쌍 정도다. 택배대리점 관계자는 “택배기사 혼자 물량을 다 처리하기 힘들면 얼마든지 물량을 조절하면서 일할 수 있다”며 “택배기사 조건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택배 단가를 올려서 택배기사 처우를 더욱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택배업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단가 인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단가를 조금이라도 올리면 화주가 떨어져 나가고, 그로 인한 물량 감소는 택배기사 수입 감소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모든 업체가 동시에 택배 단가를 올리면 담합이 된다.

분류작업이 한창인 오전 9시쯤 자리를 비운 택배기사 빈자리에 아르바이트 직원이 분류해놓은 택배상자가 쌓여 있다. /조지원 기자

◇ CJ대한통운 택배기사 1만8000명 중 파업 참여는 1%…나머지는 “공감 못 해”

택배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하기 전까지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은 180명이다. CJ대한통운 전체 택배기사 1만8000명 중 파업 참여한 기사 비율은 1%에 불과하다.

인원은 1%에 불과하지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컸다. 노조가 배송을 거부하고 있는 경남 창원‧김해, 경북 경주, 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 배송 차질이 발생하다보니 이 지역으로 물건을 보내야 하는 화주들이 대거 이탈한 것이다. 택배기사는 물건을 배송하는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집화’ 화물을 수거하면서도 수익을 얻는데, 화주가 이탈하면서 집화 화물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비노조원 택배기사들은 분류작업을 개선하라는 노조 요구에 공감하지 못하는데 수익까지 줄어들자 노조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CJ대한통운 내에는 택배노조 말고도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CJ대한통운 택배분회가 있는데, 이들은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1만8000명이나 되는 택배기사 중 노조 파업에 동참하는 사람이 180명밖에 안 된다는 것은 이번 파업 이유에 공감을 못 얻고 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노조 파업으로 화주가 떨어져나가면서 일반 택배기사들이 손해를 보고 있어 불만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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