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friday] 새콤달콤! 자꾸 손이 가네, 너 어디서 왔니?

야키마(미국)/김상윤 기자 2018. 7. 2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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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체리]
미국 워싱턴주 야키마의 한 농장에서 갓 수확한 체리를 양손 가득 들어 올린 모습. 전 세계 체리 생산량의 70% 이상이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 등에서 나오는 ‘워싱턴 체리’다. 다른 곳보다 조금 늦은 6∼8월이 제철이다. / 미국북서부체리협회

좋은 것만 얄밉게 쏙쏙 골라 먹는 사람을 '체리피커(cherry-picker)'라고 부른다. 케이크 위에 얹어져 있는 체리만 집어 먹는 행동에 빗댄 것. 체리는 그만큼 좋은 과일이다. 체리 마니아들은 품질 좋은 체리를 '과일계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작지만 앙증맞아 매력적인 모양새, 달콤하면서도 새곰새곰한 맛에 한국 소비자들도 점점 빠져들고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체리 수입량은 2010년 3800t에서 지난해 1만7648t으로 늘었다. 한때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나 볼 수 있던 체리는 이제 대형 마트나 수퍼마켓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체리 생산지는 미국 북서부. 미국북서부체리협회에 따르면 전 세계 체리의 70% 이상이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州) 등에서 나오는 '워싱턴 체리'다.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야키마(Yakima)의 체리 농장을 찾아 미국 농장의 나무에 열린 체리가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봤다.

손으로 일일이 따는 체리 재배

빨갛게 익어가는 체리 열매들. 같은 나뭇가지에 달린 것도 햇볕을 쬐는 정도 등에 따라 익는 속도가 다르다. / 미국북서부체리협회

지난달 19일(현지 시각) 오전 야키마의 '윈디 포인트(Windy Point)' 농장을 찾았다. 이 지역 체리 생산 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큰 '도멕스 수퍼프레시 그로어스(Domex Superfresh Growers)'가 운영하는 곳이다. 너른 들판에 키가 2m쯤 되는 작은 체리나무들이 빼곡하다. 농장 직원 20여 명이 낮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 부지런히 체리를 따고 있었다. 정오가 되면 더워져 일하기 힘들어 새벽 4시쯤부터 오전 11시쯤까지 일한다고 한다.

미국 농업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체리도 기계로 나무를 탈탈 털어 수확할 것 같다. 그러나 워싱턴 체리는 모두 손으로 딴다. 같은 나무 안에서도 차례차례 익기 때문에 통째로 흔들다간 반은 버리게 된다. 익은 체리만 골라서 따야 한다. 진정한 '체리피킹'이다. 아래로 잡아당기지 않고 위로 잡아올리듯 따야 다음해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체리를 따는 데에 필요한 지식은 이 정도가 전부다. 복잡하진 않으나 수고스럽다. 괜히 체리가 비싼 게 아니다.

농장 직원은 대부분 집에 돈을 부치는 멕시코인이다. '착한 소비'가 대세인 만큼 '노동자들이 착취에 시달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혹시나 들 수도 있으나 그런 걱정은 접어도 좋다. 농장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보통 하루에 5∼6시간 일하며, 숙련도에 따라 벌이가 다르나 보통 한 시간에 20달러(약 2만2500원)쯤은 쉽게 번다고 한다. 나무 높이가 낮아 사고 날 일도 거의 없다.

"이렇게 한 줄기에 두세 개씩 달린 게 제일 좋은 겁니다. 네 개부터는 알이 작아지거든요. 줄기는 푸른 게 좋지만, 어차피 유통 과정에서 갈색으로 변하니까 한국 소비자는 몰라도 됩니다." 업체 직원이 나무에서 갓 딴 체리를 집어 들고 말한 뒤 그 체리를 그대로 입에 넣었다. 씻어 먹지 않아도 괜찮은가 싶어 다른 직원에게 "농약이나 살충제가 남아 있진 않느냐"고 물었다. 그가 마찬가지로 바지에 쓱쓱 문지르더니 입에 넣고 말했다. "괜찮아요. 공장에서 씻긴 하는데, 그냥 먹어도 별 상관없어요."

차를 타고 체리 포장 공장으로 이동했다. 공장 내부는 한겨울같이 춥다. 섭씨 7∼12도로 유지하는데, 수확된 체리는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냉장 트럭으로 옮겨진 체리는 섭씨 1~2도 정도의 찬물 세척 및 줄기를 알맞게 떼는 과정 등을 거친다. 그 뒤 기계가 색깔과 크기에 따라 분류한 뒤 포장되고 곧바로 수출길에 올라 12시간 뒤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워싱턴 체리 4~5% 한국으로

미국 야키마의 한 체리 농장에서 사다리에 올라 체리를 따는 멕시코인 직원. 농장에는 스페인어 노래가 노동요처럼 나오고 있었다.
체리 포장 공장에서 씻어서 나온 체리의 줄기와 잎을 알맞게 떼는 직원들.
검붉은 ‘빙’ 체리<사진 아래>와 노르스름한 ‘레이니어’ 체리. / 미국북서부체리협회·김상윤 기자


워싱턴 체리의 70% 정도는 미국 내에서 소비된다. 나머지는 중국, 캐나다, 한국 등에 수출된다. 한국의 비중은 4∼5%쯤. 최근 성장세가 남달라 주목받는 시장이다.

워싱턴 체리는 열매가 크고 과즙이 많아 인기가 높다.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단맛도 강하다. 최근 며칠 내에 외국산 체리를 사 먹었다면 워싱턴 체리일 확률이 매우 높다. 덜 온난한 기후 때문에 다른 곳보다 약간 늦은 6월 중순∼8월 중순(올해 기준)이 철이기 때문. 반면 캘리포니아주 등에선 4∼6월쯤 나온다.

야키마는 지형과 기후가 체리 생산에 최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로키산맥과 캐스케이드산맥이 둘러싸고 있으며 산에서 농장 지대로 빙하수가 흐른다. 이곳은 화산지대다. 캐스케이드산맥에서 가장 높은 레이니어산은 100여 년 전에 폭발한 적이 있는 활화산이고, 주변 산도 수십 년 전에 폭발한 적이 있다. 그 화산재로 인해 토양이 비옥해졌다. 일교차가 큰 것도 좋은 환경이다. 낮 기온이 30도를 넘길 때도 밤에는 거의 10도까지 떨어진다. 또 날씨 흐린 시애틀과는 달리 해가 쨍쨍하고 건조하다. 초록색 체리 농장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는 메마른 황무지가 펼쳐져 있을 정도다.

생(生)체리의 맛과 향을 잘 모르는 이들에겐 통조림에 담긴 '마라스키노 체리'가 더 익숙한데, 체리 맛 음료나 체리 맛 사탕 등에서 나는 향이 대부분 이 체리를 본뜬 탓이다. 마라스키노 체리는 작은 체리에 착색제와 시럽, 술 등을 넣어 만들어 물렁물렁하고 맛이 자극적이다. 반면 생체리의 식감은 아삭하고 맛과 향은 새콤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달다. 흐르는 물에 대강 씻어 껍질을 벗길 필요 없이 그대로 먹고 씨만 뱉어내면 되므로 간편하다.

체리 종류와 효능

요즘은 국산 체리도 많이 나온다. 국산과 외국산 중 무엇이 더 맛있는지는 각자의 취향이다. 전체적으로 미국산 체리가 표면이 단단하고 크기가 더 크다. 미국북서부체리협회 키이스 휴 이사는 "한국은 알이 큰 체리를 선호하는 편이라 큰 체리를 주로 수출한다"고 했다.

체리의 품종은 1000여 개에 달한다. 겉모습은 비슷비슷해서 수입업자들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그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빙(Bing)'이다. 레드 와인처럼 검붉은 것이 특징이다. 요즘 떠오르는 품종은 '레이니어(Rainier)'다. 색깔이 노르스름해서 덜 익은 체리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겉으로 봐선 떫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달다. 수치로 표현하자면 보통 체리보다 30% 이상 달다. 레이니어는 생산량이 적고 수확 시기가 짧아 비싸지만 특유의 단맛 덕분에 인기가 점점 늘고 있다.

체리의 대표적 효능은 노화 방지다. 항산화 성분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 농무부 산하 연구팀이 '영양(Nutrients)'지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체리를 장기적으로 섭취할 경우 운동으로 인한 통증 및 근육 손상을 줄일 수 있으며, 당뇨와 심혈관계 질환 등 발병 확률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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