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알바생 '乙질'에 한달치 월급 물어준 영세사업주

나현준 입력 2018. 7. 19. 17:39 수정 2018. 7. 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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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불량해 이틀만에 해고.."근로계약서 작성안해 불법"
얌체직원, 노동청 고발 협박..벌금 해고수당까지 토해내
법규정 잘모르는 사업주들, 속수무책 당하는 사례 급증
서울고용노동청, 피해 막고자 노동법 유튜브 영상 제작하기도

서울 노동분쟁 매년 10%대 늘어

서울시 서초구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직원 B씨가 고객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등 업무 태도가 좋지 않아 고용한 지 이틀 후 그만 나오라고 했더니 B씨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해고할 경우 한 달 치 월급을 줘야 하는데 이 같은 규정을 어겼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A씨는 결국 총 230만원(벌금 50만원, 해고예고수당 180만원)을 토해내야 했다. A씨는 "근로자인 B씨가 주민등록등본 등 채용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계약서를 작성하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며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을 것 같아 해고한 것인데 순식간에 범법자가 됐다"고 서울고용노동청 조사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영세사업자 사업환경이 더 악화한 가운데 일부 근로자가 노동법 규정을 악용해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겠다"는 식으로 협박하는 '을질(을이 갑의 약점을 잡아 횡포를 부리는 것)' 사례가 늘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19일 서울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노동분쟁 신고 건수는 올해 6월 기준 5만3585건으로 지난해 대비 10%이상 늘었다. 지난해 역시 총 신고 건수가 9만7042건에 달해 2016년 대비 13.2% 늘었다. 특히 지난해 신고건 중 7만6866건이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들 분규 중 대다수가 근로계약서 미작성, 퇴직금 등 임금 미지급 때문에 벌어졌다. 사업주 잘못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업주가 노동법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점을 역으로 악용해 돈을 타내는 '얌체 근무자'도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서초구 한 건물에서 2년간 경비원으로 근무하다 퇴사한 C씨는 자정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하루 6시간꼴로 약 2년치 임금인 1650만여 원을 받지 못했다며 노동청에 해당 건을 신고했다. 근로계약서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휴게시간을 명시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건물주 D씨는 "저녁 10시 이후면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이 모두 퇴근해 할 일이 없는데 왜 돈을 줘야 하느냐"며 따졌지만, 결국 법을 위반한 것이어서 C씨에게 500만원을 주고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사장 E씨 역시 계약서에 임금 구성 항목을 누락하고 작성하는 바람에 해고한 배달 직원 F씨에게 연장근로시간과 해고예고수당을 포함해 총 500만원을 줘야 했다. 해고예고수당이란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할 때 한 달 전 이를 미리 예고하고 마무리 근무를 시키되, 즉시 해고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한 달치 월급)를 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본래 6개월 이상 근무한 근로자만 적용 대상이었는데, 2015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과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인해 6개월 미만 근로자도 해고예고수당을 수령할 자격을 얻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2014년 7362건에 불과했던 해고예고수당 신고 건이 2016년 9999건으로 늘어난 바 있다.

이같이 영세 사업장을 중심으로 분쟁이 심해지자 서울고용노동청은 기존에 과태료·벌금만을 물리던 처벌적 관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영세 사업장에 노동법을 홍보하고 있다. 사업주가 제대로 알고 대처해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근로감독관 노동법'을 검색하면 20분짜리 영상이 맨 위에 나오는데, '월 급여에 포함해 지급한 퇴직금은 무효다' 등 영세 사업장 사업주가 주의해야 할 내용이 항목별로 소개돼 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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