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응원봉부터 3D피규어까지..불황 모르는 '아이돌 굿즈'의 세계

입력 2018. 7. 19. 09:56 수정 2018. 7. 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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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커버스토리
연 매출 1천억원 규모의 굿즈 시장
아이돌 본뜬 피규어·등신대 소장용으로 인기
편의점·식품업계도 협업 상품 봇물

[한겨레]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때부터 김혜숙씨가 10년 넘게 모은 ’서태지 굿즈’. 사진 김혜숙씨 제공

아이돌을 말할 때 ‘굿즈’가 빠지면 섭섭하다. 굿즈는 아이돌의 정체성을 담아 만든 제품이다. 굿즈야말로 ‘덕질(팬 활동)’의 시작이자 ‘덕력(덕질하는 노력)’의 현현이다. 버스에서는 ‘워너원’ 강다니엘 얼굴이 인쇄된 교통카드를 찍고, 방 안에서는 강다니엘의 등신대(실물과 비슷한 크기의 입간판)를 보고 있자니 흡사 그가 내 곁에 있는 기분이다. 말하자면 가상현실 체험의 매개랄까. 굿즈 시장은 연간 매출 1천억원 정도로, 불황도 피해 가는 보기 드문 분야다.

시장 규모는 다를지언정 예전에도 그랬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책받침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시절, 아이돌 1세대인 ‘서태지와 아이들’, ‘에쵸티(H.O.T)', ‘젝스키스’ 팬들에게 ‘핫’했던 굿즈는 스타의 디엔에이(DNA)가 담긴 목걸이였다. 이때 ‘디엔에이’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이름이 아니다.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혈액에서 추출한 ‘진짜’ 디엔에이다. 디엔에이와 아이돌의 결합이라니. 예나 지금이나 팬덤 문화는 열정적이고, 예측불허다. 때로는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친근한 굿즈의 세계. 예전 굿즈와 요즘 굿즈를 비교해봤다.

'젝스키스'가 1990년대 후반 활동하던 당시의 사진과 스티커.

2018년 잠실실내체육관. 캄캄한 객석, 무대 위를 비추는 가느다란 핀 조명, 서서히 드러나는 ‘그들’의 실루엣. 콘서트장은 엄청난 함성과 함께 ‘이것’의 물결로 뒤덮인다. ‘이것’의 정체는 뭘까? 풍선? 땡! 생수통? 땡! 손수건? 완전 땡! 정답은 ‘응원봉’이다. 응원봉은 각 아이돌의 이미지에 어울리게끔 제작된 휴대용 램프로, 주로 공연장에서 응원 도구로 쓰인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야광봉과는 다르며, 소싯적 콘서트장에서 자주 보이던 밋밋하고, 기다랗기만 한 막대기 모양의 경광봉과도 당연히 다르다.

’빅뱅’ 응원봉(브이아이피봉).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블랙핑크’ 응원봉(뿅봉).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위너’ 응원봉(위너봉).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아이콘' 응원봉(콘배트).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젝스키스'응원봉(공갈봉).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블락비’ 응원봉(꿀봉). 사진 케이큐(KQ)엔터테인먼트 제공

응원봉마다 고유의 디자인이 있을 뿐더러 응원봉을 부르는 팬들의 애칭도 따로 있다. 뿅망치처럼 생겼다고 ‘뿅봉(블랙핑크)’, 막대사탕 모양이라고 ‘캔디봉(트와이스)’, 꿀벌을 닮았다고 ‘꿀봉(블락비)’, 왕관을 얹어놨다고 ‘브이아이피봉(빅뱅)’, 공갈빵과 판박이라서 ‘공갈봉(젝스키스)’…. 우스갯소리지만 ‘둔기’(?)로 분류되는 응원봉도 있다. 구석기시대의 뗀석기(돌연장)를 연상시키는 ‘샤석기(샤이니)’, 야구방망이 형태인 ‘콘배트(아이콘)’, 횃불 모양에 모서리가 뾰족한 ‘횃불봉(투피엠)’ 등이다.

최근엔 응원봉에도 블루투스가 탑재돼 스텝들이 중앙 제어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장 분위기나 곡에 따라 응원봉 색깔이 바뀌면서 카드섹션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한다. 에쵸티는 흰색, 젝스키스는 노란색, 지오디(G.O.D)는 파란색’ 식으로 풍선 색을 정해놓고, 그 색깔의 소유권(?) 때문에 팬덤끼리 살벌하게 싸우던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격세지감이다. 그땐 풍선이 주요 응원 도구였다.

’워너원’ 피규어. 사진 씨제이이엔엠(CJ e&m) 제공

실용성 0%, 소장 욕구 99%. 비교적 고가임에도 출시되자마자 동나는 굿즈가 있다면, 그건 바로 피규어(인간의 형상을 본뜬 모형 장난감)다. 사진보다 실감 나는 ‘3차원적 아바타’로 느껴지기 때문일까. ‘워너원’ 멤버 11명의 특색을 살려 10cm 크기로 만든 피규어는 품귀 현상을 빚었고, ‘빅뱅’ 피규어는 팬덤뿐 아니라 피규어 마니아들에게까지 화제였다. 얼마나 실감 나게 만들어졌는지 책상 구석에 세워두면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에 흠칫 놀랄 정도다. 특히 지드래곤 피규어는 지드래곤만이 소화할 수 있는 장갑과 신발, 목덜미에 있는 문신까지 재현한 것이 깨알 같다.

’빅뱅’ 지드래곤 피규어.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빅뱅’ 탑 피규어.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빅뱅' 태양 피규어.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아이돌 멤버를 실물 크기로 제작한 등신대 역시 ‘최고의 굿즈’다. 최근 세계적인 보이그룹으로 우뚝 선 방탄소년단의 ‘퓨마’ 등신대는 진짜 방탄소년단인 줄 알고 사람들이 몰려간다는 후일담까지 나온다. 실물 크기 등신대는 따로 불법 제작하지 않는 이상 쉽게 구입할 수 없으므로 희소가치가 높다. 해당 아이돌이 광고하는 의류·화장품업체에서 이벤트나 추첨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중고시장 거래가가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누구 OOO등신대 파실 분 없나요?’, ‘저는 OOO팬이 아니라서 팝니다’ 등이 문구가 중고시장 누리집에 올라온다.

이에 비견할 예전 굿즈는 앞서 말한 디엔에이 굿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스타의 머리카락과 입안 세포, 혈액 등에서 추출한 디엔에이를 작은 유리병에 넣은 뒤 ‘디엔에이 카드’와 함께 팔았다. 디엔에이 카드는 스타의 이름과 사진, 혈액형 같은 신상 정보가 적힌 카드로, 스타와 사적인 영역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0년 넘게 ‘서태지 물품’을 모았던 김혜숙(37)씨도 당시 디엔에이 카드를 샀다. “디엔에이 카드는 물론이고 한 카드사에서 출시한 ‘서태지 카드’, 피아노 악보, 매니저가 쓴 책까지 서태지와 관련된 건 다 샀어요.”

신박하기로는 1990년대 ‘포켓 젝키’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굿즈가 당시 내세운 문구는 이랬다. ‘젝스키스 매니저가 되어 뮤직 톱 텐 1위 스타로 만들자!’ 그랬다. ‘포켓 젝키’는 ‘젝스키스’ 멤버들을 스타로 키우는 휴대용 게임기였다. 한창 유행하던 게임 ‘다마고치’에서 착안했으며, 팬들이 그들을 트레이닝하고, 훈육하고, 쉬게 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스타로 못 만들면 젝키 해체! 팬들로서는 이보다 흥미진진한 게임이 또 있었을까?

'워너원' 우산. 사진 씨제이이엔엠(CJ e&m) 제공
'워너원' 캐리어. 사진 씨제이이엔엠(CJ e&m) 제공
'빅뱅' 방향제.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위너' 크로스백.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위너' 볼캡.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티셔츠나 모자, 볼펜, 수첩, 열쇠고리 같은 굿즈는 시대를 초월하는 스테디셀러다. 스타의 사진을 활용한 엽서와 스티커, 브로마이드도 마찬가지다. 굿즈의 종류는 날로 다양해지는 추세다. 에코백·향초·파우치·디퓨저 같은 생활용품부터 앞치마·그릇·머그잔·텀블러 같은 주방용품에 이르기까지 굿즈가 넘나들지 않는 분야가 없다. 이에 발맞추느라 편의점 업계도 분주하다. 씨유(CU)는 ‘워너원’ 교통카드와 엘이디(LED)네임 선풍기, 우산을 출시했고, 세븐일레븐은 ‘동방신기’ 3단 우산과 ‘레드벨벳’ 비닐우산을 판매 중이다. 식료품 업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엑소라면’, ‘샤이니 탄산수’, ‘레드벨벳 넛츠’, ‘워너원 비타음료’, ‘슈퍼주니어 콜라’처럼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수두룩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돌식품은 ‘에쵸티 음료수’로 불리던 ‘틱톡’뿐이었다.

'엑소' 지에스(GS) 교통카드. 사진 지에스(GS)리테일(편의점CU) 제공
'방탄소년단' 씨유(CU) 교통카드. 사진 비지에프(BGF)리테일(편의점CU) 제공
'빅뱅' 볼펜.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위너' 휸대전화 케이스.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제공
'젝스키스' 2017년판 휴대전화 케이스.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블랙핑크’ 크로스백.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빅뱅' 슬리퍼. 사진 ’와이지이숍’(YG eshop) 제공

굿즈를 보면 시대의 변화가 한눈에 보인다. 비디오테이프 형태의 뮤직비디오가 요즘 같은 유튜브 세상에 있을 리 없다. 예전에는 ‘에쵸티 부채’가 잘 나갔지만, 요즘은 ‘트와이스팬’ 같은 휴대용 선풍기가 잘 나간다. 예전에는 젝스키스 노래를 벨 소리로 내장한 ‘젝키폰’을 팔았지만, 벨 소리를 만들어 쓰는 스마트폰 시대에는 폰 케이스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음악 방송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종이 잡지를 모은 스크랩북은 시간이 흐르면서 ‘핸드메이드 굿즈’가 된다. 인터넷으로 뭐든 다시 볼 수 있는 요즘과 달리 예전에는 한 번 지나간 콘텐츠는 볼 수 없었으므로 아카이빙 목적으로 아이돌의 활동을 녹화·녹음·스크랩하는 팬들이 많았다. 젝스키스가 데뷔한 1997년부터 젝키 물품을 모았던 김지영(34)씨는 “젝키가 진행한 ‘학원별곡’이라는 라디오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가 10개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와 대화한 건 지난 7월12일. 그는 이튿날이 젝스키스 멤버 이재진의 생일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아이돌 노래와 춤을 특기로 하는 하이틴 그룹. 10대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주요 팬층이다. 연예기획사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으로 들어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한다. 지망생은 100만명 남짓이지만, 그 중 데뷔할 확률은 1%, 성공할 확률은 0.01% 정도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케이팝(KPOP) 열풍을 이끄는 주역이며, 최근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음반 차트 1위를 하면서 화제가 됐다. ‘아이돌(idol)’이라는 영어는 원래 ‘신화적인 우상’을 뜻한다.

강나연 객원기자 nalot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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