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이 시골판사의 길을 택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산하 여수시법원에서 판사로 일하겠다고 신청했다. 시·군법원은 지방법원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주민을 위해 만들어졌다. 판사 한 명이 근무하며 소액심판 즉결심판 가압류 등 서민의 삶이 담긴 사건을 다룬다. 봉사 차원에서 원로 법조인도 임용해 왔는데 대법관 출신이 지원하기는 처음이다. 우리는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로 막대한 부를 챙긴 이들을 많이 알고 있다. 전관예우라는 관행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 악습의 수혜를 스스로 거부한 박 전 대법관에게 박수를 보낸다.
멀리는 조무제 전 대법관부터 가깝게는 김영란 전 대법관까지 전관(前官)의 길을 마다한 사람들이 있었다. 변호사가 아닌 자리에서 이들이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는 동안 전관예우는 법조계에 질긴 뿌리를 내렸다. 관행을 넘어 비리가 돼버린 실태를 불과 2년 전 정운호 사건은 생생하게 보여줬다. 박 전 대법관처럼 남다른 선택을 하는 고위 법관이 나오기만 기다려서는 전관예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거꾸로 그런 선택을 하려는 사람을 고위 법관에 적극 발탁하는 인사 관행을 만들어가야 한다.
현재 대법원에는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대법관 3명이 있다. 모두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뤄진 선언이었다. 의원들이 질의를 통해 개업 의사를 물었고 이들은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국민을 상대로 사회적 약속을 한 거였다. 약속을 지키는지 국민이 지켜볼 테니 이들은 전관 변호사가 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법제화할 순 없어도 이처럼 인사 과정에서 검증 항목 중 하나로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고위 판검사가 되려는 이들에게 퇴임 후 계획을 묻고 그 답변을 비중 있게 반영해 임명하는 것. 이런 인사 관행이 정립된다면 전관예우 관행을 상당히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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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2, 제3의 박보영 나올 인사 관행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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