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의 거울읽음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1963년이 어떤 ‘기준’이 되는 해였다고, 당시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어요. 분명히 그해의 공기는 달랐고, 어떤 기운과 조짐이 있었어요.”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는 그해를 이렇게 회상한다.

연대란 10년 단위로 흘러가지만, 실제 세상은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해에 시침처럼 바뀌지는 않는 법이다. 미국 음악의 1990년대가 너바나가 ‘Smells Like Teen Spirit’를 히트시킨 1991년에, 한국의 그것은 서태지와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에 1980년대와의 완전한 이별을 선언했듯이. 대중문화의 역사, 특히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1960년대의 시작은 언제일까. 1월13일, 음악인 두 팀이 나란히 영국 방송에 출연한다. 그날, 리버풀 출신의 더벅머리 네 명은 처음으로 영국 공영 방송 무대에서 ‘Please Please Me’라는 곡을 불렀으며 뉴욕에서 날아온 젊은 포크 가수가 BBC에서 ‘Blowin’ In The Wind’로 미국에서보다 먼저 TV 데뷔를 했다. 1963년의 일이었다. 비틀스와 밥 딜런이 주인공이었다. 그날 이후, 세계는 달려갔다. 혁명을 향해.

수많은 갈래길이 있지만 이정표가 없는 시대다. 하나의 문제를 놓고 몇 가지의 축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너무나 빠른 변화에 10년 후는커녕 1년 후를 대비할 수 없다. 나는 이럴 때 1960년대 서구 대중문화를 다룬 책들을 읽곤 한다. 지금은 레전드로 숭앙받지만 그때는 막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이들이 세계를 휘젓기 시작했던 시기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들이 풍요를 바탕으로 쏟아져 나오고 보급되었다. 그 주인공은 베이비붐 세대, 즉 2차 대전 후 태어난 아이들이다. 영국의 두 저널리스트, 로빈 모건과 아리엘 리브가 쓴 <1963-발칙한 혁명>은 그들의 세상을 그린 책이다. 한 시대를 그리는 서사는 많다. 그 서사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기승전결의 구조하에 한 시대의 정점에서 끝을 내거나, 그 이후의 에필로그로 마무리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시대가 1960년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쓰는 사람에게는 침을 흘릴 만한 상징적 사건들과 화려한 인물들이 있다. 비틀스로 시작된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있으며 히피족의 등장으로 인한 ‘사랑의 여름’이 있다. 미국 동부 대학생들이 주도한 반전 운동과 포크 무브먼트는 또 어떤가. 얼핏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융성기의 로마에 필적하는 이야기의 보고다.

이 책은 그 화려한 소재의 유혹 대신 1960년대라는 활화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1963년이라는 특정한 해에만 집중한다. 전쟁의 상흔을 겪지 않고 태어난 세대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맞던 해가 1960년이었으며 1963년은 그들에게 문화의 칼자루가 쥐여지던 때다. 책은 음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음악이 전부는 아니었다. “패션은 인생에 관한 거예요. 패션은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죠. 사람들은 자신들의 옷을 통해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요. 전에는 어머니가 입던 것을 거의 물려받아 입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위한 옷이 생긴 거예요. 옷이 개성을 가져다주었고, 옷 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만족하게 됐어요”라는, 패션 에디터 펠리시티 그린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그해에는 모든 멋과 자유가 발아했다. 그 모든 것 안에는 피임약의 등장으로 인한 자유로운 섹스, 비달 사순의 보브 컷, 메리 퀀트의 미니스커트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 문화들을 바탕으로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 밥 딜런과 존 바에즈 같은 주인공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그들의 ‘룩’이 1950년대의 단정하고 지루한 옷으로 구성됐더라면? 그들과 함께 사진에 담긴 팬들 또한 그랬다면? 1960년대의 에너지는 우리에게 꽤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감독 필립 세빌의 증언을 인용한다. “지금 막 스무살이 된 젊은 배우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는 경험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그에게 물었죠. ‘직업이 뭐예요?’ 그가 대답했어요. ‘젊음이에요.’ 그게 상품이었어요. 젊음 말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게 존재한다는 믿음만 있었다. 그걸 깨고 욕망의 나침반을 따라 나아가는 이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 역사는 늘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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