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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쌍릉 인골 주인 '서동요' 백제 무왕 가능성 커졌다

머니투데이
  • 배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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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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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쌍릉 출토 인골 분석…7세기 사망한 큰 키의 노년 남성, 무왕 기록과 겹쳐

익산 쌍릉(대왕릉) 전경./사진제공=문화재청
익산 쌍릉(대왕릉) 전경./사진제공=문화재청
익산 쌍릉이 백제 무왕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동안의 기록 등을 근거로 학설만 존재했는데 무덤 발굴조사 과정 중 인골이 새롭게 출토되면서 학설에 힘을 싣는 실증 자료가 추가됐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이 7세기에 사망한 노년 남성의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인골의 병리학적 특징을 미뤄볼 때, 당시 무왕을 묘사한 기록들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이뤄진 익산 쌍릉은 오래전부터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설이 전해졌다. 특히 대왕릉은 무왕의 무덤이라는 학설이 유력했다. 이번 인골 분석 결과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연구소 측은 보고 있다.

쌍릉의 존재는 '고려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고려 충숙왕 때(1327년) 도굴됐다는 사건기록도 남아있다. 당시부터 이 무덤이 고조선 준왕이나 백제 무왕의 능이라는 설이 있었다.

1917년 조선총독부가 쌍릉을 단 며칠 만에 발굴하면서 백제 말기의 왕릉이거나 그에 상당한 자의 능묘라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 남긴 공식기록은 1920년 고적조사보고서에 단 13줄의 내용과 2장의 사진, 2장의 도면이 전부였다.


석실 내부 구조와 목제유골함의 위치(위). 목제유골함과 인골파편 발견 당시 모습(아래)./사진제공=문화재청
석실 내부 구조와 목제유골함의 위치(위). 목제유골함과 인골파편 발견 당시 모습(아래)./사진제공=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 중 하나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익산시와 공동으로 쌍릉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석실 끝부분에서 이제껏 알려진 바 없던 102개 인골 조각이 담긴 나무상자가 나왔다. 100년 전 일제가 발굴하면서 다른 유물들은 유출했지만 이는 꺼내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인골 자료가 무덤의 주인과 연결된다면, 백제 무왕의 능인지 결정짓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임산공학, 물리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모두 참여시켜 인골의 성별, 키, 식습관, 질환, 사망시점, 석실 석재의 산지, 목관재의 수종 등을 정밀 분석했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와 골절선(왼쪽 위)과 고관절(오른쪽 위). 넙다리뼈 무릎부위 마이크로CT 이미지(아래)./사진제공=문화재청
옆구리 아래 골반뼈와 골절선(왼쪽 위)과 고관절(오른쪽 위). 넙다리뼈 무릎부위 마이크로CT 이미지(아래)./사진제공=문화재청
주요 뼈의 각도와 크기, 너비 등으로 판단했을 때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해 산출한 결과 키는 161~170.1㎝로 추정했다. 19세기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다. '삼국사기'에 무왕에 관한 묘사로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되어있다. 639년 작성된 '미륵사지 서탑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대왕폐하'로 불린 기록도 있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소견을 내놨다. 목의 울대뼈가 있는 갑상연골에 골화(노화로 연골이나 인대가 뼈로 바뀌는 현상)가 상당히 진행됐고, 뼈 표면이 거칠고 결절, 구멍 등이 관찰됐기 때문이다.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 다리와 무릎의 통증 등의 흔적도 나타났다.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해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과 보정연대가 620~659년으로 산출돼 인골 주인은 7세기 초중반에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뼈가 심하게 부식돼 유전자 분석은 쉽지 않았다. 추출한 콜라겐의 탄소 안정동위원소 분석과 질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벼, 보리, 콩, 어패류 등을 섭취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익산은 질 좋은 화강암의 산지로 유명한데, 인골이 있던 석실의 석재는 약 9㎞ 떨어진 함열읍에서 채석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령이 400년 이상으로 알려진 관재(棺材)는 늦어도 7세기 전반 이전에 벌목된 것을 가공한 것이다. 목관은 최고급 건축·가구재인 금송으로 제작했다. 유골함은 잣나무류의 판자로 만들었다.

연구소는 "600년에 즉위해 641년 사망했다는 무왕의 재임 기록에 따라 10대나 20대에 즉위한 경우 무왕의 사망 나이가 남성 노년층으로 추정되는 쌍릉의 인골 추정 나이와 비슷하다"며 "인골 사망 시점이 7세기 초중반 즈음인 것으로 보아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해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는 역사적 가능성을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최신 공학기술을 활용해 진행됐다.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뼈의 3D(3차원) 입체 모형화 및 3D 프린팅을 통한 디지털 자료도 구축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현재 진행 중인 대왕릉 보완조사와 앞으로 진행할 소왕릉 조사·연구 등을 통해 익산 쌍릉의 성격과 무덤 주인 규명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추가적인 인골 심화연구, 백제 후기 왕릉급 고분의 구조와 특징 등 중장기 연구계획을 수립해 백제 왕도의 역사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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