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경제]<탐정: 리턴즈> 한국에서는 뿌리 내리기 힘든 탐정산업](https://img.khan.co.kr/newsmaker/1286/1286_49.jpg)
탐정산업 규모는 작지 않다. 법인에 소속된 사설탐정은 전세계적으로 140만명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 런던의 베이커 스트리트 221B에는 ‘셜록 홈즈 박물관’이 있다. 셜록 홈즈는 아서 코난도일이 1886년 창작한 탐정이다. 베이커 스트리트 221B는 소설 속 셜록 홈즈의 사무실 주소다. 원래는 없는 주소지만 도로를 정비한 뒤 실제 주소를 만들었다. 영국이 이렇게까지 한 것은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열광적인 팬들, 즉 홈지안(Holmesian)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들을 셜로키언(Sherlockian)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팬클럽도 조직했다. 미국에는 베이커 스트리트 일레귤러스(Baker Street Irregulars·BSI)가, 일본에는 ‘일본 셜록 홈즈 클럽’이 있다.
셜록 홈즈는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등 수많은 탐정물의 모티브가 됐다. 한국은 마땅한 대표 탐정물이 없다. 이언희 감독의 <탐정: 리턴즈>가 그 자리를 꿰찰 수 있을까.
셜록 홈즈 덕후 만화방 주인 강대만(권상우 분)은 과감히 만화방을 정리한다. 그리고 광역수사대 노태수(성동일 분)와 함께 한국 최초의 탐정사무소를 개업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의뢰가 들어온다. 과일을 사러 밖에 나간 약혼자가 실종되더니 며칠 뒤 열차사고로 주검이 됐단다. 살인이 의심되는 사건. 의뢰인은 성공보수로 5000만원을 제시한다. 죽은 약혼자는 보육원 출신이라 가족이 없다. 파고들다보니 같은 보육원 출신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추리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에서는 사설탐정(혹은 사립탐정)을 할 수 없다. 관련법이 없기 때문이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란에다 변호사 등의 반발도 심해 국회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사설탐정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공식적으로는 민간조사원(PI·Private Investigator)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각종 민·형사상 사건에서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합법적으로 증거를 수집해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수집된 증거는 법정에서 법관과 배심원이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을 돕는다.
한국민간조사협회는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에게 민간조사원 자격증을 부여하지만 국가공인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은 민간조사원을 합법화했다. 민간조사원은 지적재산권 침해, 보험범죄, 기업 내 부정, 사이버범죄, 환경범죄, 공금횡령 및 사기범죄 해외도피자 소재 파악, 교통사고 사실 여부 파악 등의 활동을 한다. 증거를 잡기가 까다로운 의료사고에도 의료전문 민간조사원이 유용할 수 있다.
영화 속 희연은 경찰에게 사고사로 처리된 약혼자의 죽음을 수사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찰로부터 외면당하셨군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강대만이 불쑥 끼어든다. 경찰의 인력구조상 심증이나 물증이 확실하지 않은 사건은 수사에 착수하기 힘들다. 이런 사각지대를 민간조사원이 채워줄 수 있다.
탐정산업 규모는 작지 않다. 법인에 소속된 사설탐정은 전세계적으로 140만명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사설탐정회사로는 ‘핑커튼’, ‘크놀’ 등이 있다. 미국의 사설탐정 임금은 2010년 기준 4만2870 달러(4700만원) 정도 된다. 정부는 2014년 일자리 창출의 하나로 민간조사원을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큰 진척이 없었다. 정부가 추산한 국내 민간조사원 일자리는 4000여개로 경찰 관련 학과나 전직 경찰 출신들이 많이 응할 것으로 봤다. 영화 속 노태수도 현직경찰이다. 휴직계만 냈다. 경찰 정보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람이나 사건을 쫓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공인탐정법’이 발의됐다. 관련법으로는 10번째다. 9번 퇴짜당한 탐정법이 20대 국회에서는 통과될 수 있을까.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