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귀 막고 싶을 만큼 냉정한 카메라

송혜진 기자 2018. 7.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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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박화영

탁월하진 않지만 좀처럼 잊기 힘들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박화영'(감독 이환)은 암전 속 스크린을 보며 탁한 현실을 두 시간쯤 잊고 싶은 이에겐 권하기 어려운 영화다. 날 것의 욕설이 넘쳐나는 데다 깨진 발톱이 쓸리듯 괴롭고 불편한 장면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장면 앞에선 눈을 감고 싶고 어떤 대사 앞에선 귀를 막고 싶다. 그럼에도 끝까지 보게 되는 건 영화가 지금 우리를 겨냥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 여고생 박화영(김가희)은 엄마에게 버림받고 혼자 산다. 그는 자신의 빈집을 가출한 또래 친구들에게 열어놓는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라면 먹으며 화영을 '엄마'라고 부른다. 화영은 그 가운데 연예인 지망생 미정(강민아)을 아끼지만, 미정의 남자 친구 영재(이재균)는 화영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어느 날 화영은 또 다른 가출 소녀 세진(이유미)과 영재가 심상치 않은 사이임을 알게 된다.

가출 여고생 박화영(가운데)은 돈이 떨어지면 친엄마를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모두가 그에게 손가락질하지만 극한에 몰린 인간은 뻔뻔해질 수밖에 없다. /명필름랩


여러모로 넘치는 영화다. 컷과 컷의 연결은 매끄럽지 않고 화면은 조악하다. 배우들은 들숨과 날숨을 쉴 때마다 육두문자를 내뱉는다. 흡연과 음주, 폭력과 유사 성매매 현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때론 지나치다 싶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게 된다. 이 극단적인 얘기는 극도로 냉정한 리얼리즘 아래 짜였다. 불편하고 괴롭고 도망치고 싶은 것도 모두 진짜 현실의 이야기다.

영화는 가출 청소년 얘기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박화영은 을(乙)의 삶을 대변한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대신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던 이 소녀는 아이들 사이에서 빨래하고 라면 끓여주면서 "니들은 나 없이 어떻게 살려고 그러냐"고 낄낄댄다. 화영이 그렇게 할수록 현실은 그를 비웃는다. 힘센 아이가 화영을 꿇어앉히고 권력 쥔 아이가 짓밟는다. 억울하고 싫어도 때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 인간과 인간이 부딪치는 현장이란 이토록 사회적이면서도 반사회적이다. 이런 화영이 정작 친엄마에게 악다구니 쓰는 장면은 위악적이지만 그래서 설득력 있다. 극한에 내몰린 인간은 무슨 짓도 할 수 있다. 화영이 그렇게 몸부림쳐도 세상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박화영을 연기한 김가희는 앞으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20㎏ 가까이 살을 찌워가며 영화 속 주인공으로 거듭난 이 배우는 역설을 몸으로 그릴 줄 안다. 그가 웃을 땐 화가 나고 그가 돌아설 땐 울고 싶다. 명필름랩(명필름 영화학교)이 내놓은 세 번째 작품.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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