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소액 사건 맡겨주오" 전관예우 걷어찬 전 대법관

조미덥 기자 2018. 7. 17.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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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박보영, 여수시 법원 판사 지원…대법관 출신으로 처음
ㆍ법조계 “시니어 법관제 첫 사례…전관예우 혁파 기대”

지난 1월 퇴임한 박보영 전 대법관(57·사진)이 서민들의 소액 사건을 다루는 전임 시·군법원 판사로 일하겠다는 의사를 법원에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대법관이 시·군법원 판사에 지원한 것은 처음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 전 대법관은 최근 법원행정처에 고향과 가까운 전남 여수시 법원 판사로 임용될 수 있는지 문의했다. 시·군법원은 소송액 2000만원 미만의 소액 사건을 주로 다루는 소규모 법원이다. 서민들이 변호인 없이 소송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은 1995년부터 재판 서비스 질을 높이려고 경험 많은 원로 변호사 등을 시·군법원 판사로 임용해왔다. 지난해 2월부터 법원장을 지낸 고위법관 중 희망자를 시·군법원에 보내기도 했는데, 대법관 출신이 자청한 것은 처음이다. 박 전 대법관은 퇴임 후 사법연수원과 모교인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다.

박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임명 전부터 공익활동을 해왔다. 2004년 남편 사업이 기울자 18년의 법관 생활을 접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서울가정법원 배석·단독·부장판사를 모두 거친 경험을 살려 가사 사건을 주로 맡았다. 변호사 사무실에 가족치료사를 고용해 이혼소송 의뢰인에게 치료상담부터 받게 했다.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 비상임위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으로도 일했다. 2011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맡아 다문화가정과 성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사업을 주도했다. 2012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이뤄진 박 전 대법관의 대법관 임명은 비서울대(한양대 법대)·호남(전남 순천) 출신, 상대적으로 짧은 판사 경력 등 그 자체로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법관의 시·군법원 판사 지원이 전관예우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으로 얼룩진 사법부에 희망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이 많다.

그동안 법조계에선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상고이유서에 찍는 도장값만 3000만원”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나왔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페이스북에서 “박 전 대법관이 법관의 70% 급여를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재판 업무를 보조하는 미국식 시니어 법관의 첫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며 “시니어 법관 제도가 도입되면 전관예우를 혁파할 수 있고, 재판 경험을 활용해 국민에게 신속하게 고품질의 재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환영했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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