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전면전] 보복에 또 보복..장기화 가능성에 세계 경제 '출렁'

이용성 차장 2018. 7. 1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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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위안화의 인위적인 평가절하를 멈출 수 없다면, 우리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중국 제품에 25% 관세를 매길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저 ‘부동산 재벌’로 통하던 2011년 출간한 그의 저서 ‘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Time to Get Tough: Making America Number One Again)’의 한 대목이다. 

그는 또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보름 앞둔 2012년 7월 13일 트위터에 “미국 올림픽 선수단 유니폼은 중국에서 만든 것이다. 유니폼을 불태워버리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여 뒤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올해 7월 6일(현지시각) 340억달러(38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며 자신의 믿음을 실행에 옮겼다. 경제 규모 합계가 34조5053억달러(약 3경8680조원)에 달하는 미국과 중국을 전면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6일 관세를 부과한 대상은 첨단기술 제품과 전자부품 등 818개 품목이었다. 앞서 예고한 500억달러 중 나머지 16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장비, 플라스틱 등 284개 품목에 대해선 향후 2주 이내에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곧바로 미국산 농산물·자동차·수산물 등 545개 품목에 같은 규모의 보복 관세를 발동했다.

중국의 즉각적인 대응에 미국은 나흘 뒤 2000억달러 상당 수입품에도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관세 부과 대상이 되는 중국산 수입품은 총 2500억달러어치로 늘어났다. 지난해 중국의 전체 대미 수출(5050억달러)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해 3752억달러(약 417조원)에 달한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 규모를 생각하면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에 훨씬 유리한 싸움이 되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대미 수출액(5056억달러)이 미국의 대중 수출액(1539억달러)보다 세 배 이상 많다는 것은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벌일 경우 미국이 중국보다 공격 무기가 세 배 이상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250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관세 부과를 선언한 상황에서 미국산 제품 수입액이 1539억달러에 불과한 중국은 정공법으로 맞서 싸울 ‘총알’이 바닥난 셈이다.

트럼프가 거침없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됐다. 트럼프는 6월 2일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가 거의 8000억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무역전쟁에서 패할 수가 없다”고 썼다. 상대보다 피해를 덜 입는 쪽이 이긴다고 한다면, 승리는 미국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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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美 GDP 0.34% 하락 전망

미국의 경제 상황이 중국을 압도하고 있는 것도 트럼프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미국에서 6월 한 달간 새로 창출된 일자리는 예상(19만 개)보다 훨씬 많은 21만3000개에 달했다. 실업률은 4.0%로 5월보다 0.2%포인트 상승했지만, 그마저도 구직을 포기했던 이들이 대거 노동 시장에 복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날 발표된 미국의 5월 상품수지 적자는 전달보다 6.6% 줄어든 431억달러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적었다.

반면 중국 런민은행은 올해 들어 지급준비율을 세 차례나 인하하며 유동성 확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윈드(WIND)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올해 1~6월 말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중국 기업은 24곳에 달했다. 가장 뚜렷한 불안 신호는 주가에서 감지된다. 올해 1월 2일 3348을 기록했던 상하이종합지수는 6개월 새 18% 폭락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의 경제적인 체력이 중국보다 낫다는 이야기일 뿐, 무역전쟁이 경제에 악재인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5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상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의 여파로 내년 말까지 미국 내 일자리 14만5000개가 사라지고 국내총생산(GDP)은 0.34%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같은 기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생산비 상승은 소비심리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관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미국 기업들이 벌써 하나둘 해외로 생산 시설을 옮기고 있는 것도 ‘제조업 부활’을 내건 트럼프에게 반가울 리 없다.

가장 먼저 미국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기업은 미국을 대표하는 오토바이 업체 할리데이비슨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연합(EU)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EU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에 보복관세를 부과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할리데이비슨은 지난달 25일 생산시설 일부 해외 이전을 발표했다.

중국이 미국산 제품 불매에 나설 경우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실적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특히 중국에서만 매년 50조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애플과 중국 커피 전문점 업계 1위 스타벅스 등의 피해가 클 수 있다.

상하이의 애플 매장 앞에서 아이폰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중국인들. 사진 블룸버그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이 캐나다와 EU 국가들을 비롯한 동맹국과도 무역마찰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와 중국 간의 경제 협력이 한층 긴밀해질 가능성도 있다. 동맹국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해야 할 미국이 오히려 중국의 위상을 높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한 상황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끝을 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무역전쟁의 본질이 두 나라의 미래를 건 ‘패권전쟁’이자 ‘기술전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무역전쟁에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중국에 넘기지 않겠다’는 미국의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또 중국이 세계 규칙과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반하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고 믿는 미국 보수주의자,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이 해킹 등 ‘반칙’을 통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우주 기술 등 첨단·군수 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지위를 넘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점점 커지고 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대(對)중국 강경 정책이 합당한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에 (무역전쟁은) 트럼프에겐 나쁘지 않은 정치적 선택”이라고 전했다.

중국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역전쟁에서 진다면 세계 리더 자리를 포기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가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 직후 낸 보복 조치를 설명하며 강조한 것도 “국가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중국이 이번 무역 분쟁을 중국의 위상은 물론 생존권이 걸린 문제로 본다는 뜻이다.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트럼프가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건 중국의 군사력과 첨단기술”이라고 했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핵심 성장 전략을 포기해야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지만, 시 주석도 확고한 정치적 명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lus point

트럼프 무역전쟁은 레이건 따라하기?

‘트럼프는 제2의 레이건이 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롤 모델’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1981~89년 재임)이란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에 8년 전 세상을 떠난 레이건을 추모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 좋아 보인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레이건은 1980년대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나서 ‘스타워즈 계획’에만 700억달러(약 79조원)를 투입했고, 미국과 군비확충 경쟁을 견디지 못한 소련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트럼프가 지난달 18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제3차 국가우주위원회(NSC)에서 공식화한 ‘우주군’ 창설 계획은 여러모로 레이건의 스타워즈 계획을 연상시킨다. 


‘국방예산 대폭 증액’ 공통점도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중국과 전면적인 무역전쟁에 나선 것을 레이건 주도의 미·소 군비경쟁과 비슷한 시도로 보고 있다. 상대방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고, 군비 경쟁이 관세 경쟁으로 변했을 뿐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경쟁자가 제풀에 나가떨어지게 하려는 의도는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1987년 백악관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트위터 캡처

트럼프와 레이건은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다. 트럼프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는 레이건의 ‘국가안보 정책 결정지침(NSDD)’과 내용이 흡사하다. 레이건은 NSDD에 따라 ‘힘에 의한 평화’를 중요한 원칙으로 천명했다. 

트럼프는 NSS에서 중국을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전 분야에서 중국의 굴기를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방예산을 증액한 것도 레이건과 트럼프의 공통점이다. 

레이건 행정부의 통상대표부 부대표를 맡았던 인물이 지금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라는 점도 흥미롭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엔고(円高) 시대를 연 1985년 ‘플라자 합의’ 당시 무역대표부 부대표로 일본을 굴복시킨 주역이다. 

감세와 재정 지출 및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도 레이건의 정책과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 경제 상황은 레이건 시절과 큰 차이가 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 초기 총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5.6%였던 반면 현재는 164.4%에 달한다. 

레이건은 집권 초기에 감세 및 재정 지출로 고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고금리로 강달러가 지속되면서 재정 및 무역수지의 ‘쌍둥이 적자’로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가 불황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핀란드의 명문 알토대의 칼 페이 교수(국제경영)는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1930년대 세계 경제를 불황으로 내몰았던 대공황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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