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판사의 간곡한 메시지로.. 시청자 울린 '미스 함무라비'

김종성 2018. 7. 1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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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 "세상에 저런 판사 좀 있었으면" 바람 갖게 한 <미스 함무라비>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 JTBC
JTBC <미스 함무라비>가 종영했다. 3.739%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마지막 회에서 5.333%까지 올랐다. 비록 한 자릿수에 불과한 시청률이었지만, 드라마가 주는 울림과 그 반향은 생각보다 컸다. 사실 '법조물'은 흔하디 흔한 장르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미스 함무라비>는 특별하다. 왜냐하면 검사 또는 변호사가 주축이 되는 기존의 법조물과는 달리 '판사'가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기존에 판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당장 지난해 방영됐던 SBS <이판사판>이 떠오른다. 젊은 판사들을 내세워 그들의 성장 스토리를 그렸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전체적으로 미지근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전문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단지 직업만 판사로 설정된, 무늬만 '판사 드라마'를 시청자들은 원하지 않았다.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 JTBC
<미스 함무라비>는 구체적이었다. 집중 해부에 가까웠다. 법원의 구성과 권력 관계에 대해 다뤘고, 판사 개개인의 일상과 고뇌를 세심하게 그려냈다. 부장판사를 필두로 좌배석과 우배석의 관계, 그들이 재판을 하고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치열하게 다뤄졌다. 또, <미스 함무라비>는 판사뿐만 아니라 참여관, 실무관, 속기사, 경위 등 법원 내 직원들까지 등장시켰고, 그들의 이야기도 허투루 날려버리지 않았다.

구체적일 수 있다는 건 제대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정확히 모르는 이야기를 전달할 때 뭉뚱그리기 마련이다. 구체적이라는 건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느껴졌던 힘은 디테일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스 함무라비>가 '법원'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판사'라는 외계인(外界人)에 대해 구체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도 역시 간단하다. 극본을 쓴 문유석 덕분이다.

현직 부장판사인 그가 쓴 극본은 디테일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건 취재로 얻을 수 있는 시선과는 또 다른 리얼한 자기고백이었다. <미스 함무라비> 속에는 작가 문유석이 '판사로서' 겪었던 경험들과 수도 없이 품었을 고민들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법원 내의 갈등구조, 조직 내의 부조리들이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문유석은 과감하게도 자신의 속한 조직의 어두운 면을 들춰냈다.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 JTBC
부장판사와 좌·우배석 간의 권력 관계, 법원 내에 팽배한 서열 구조와 만연한 성차별 등은 <미스 함무라비>가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문제였다. <미스 함무라비>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초임 판사 박차오름(고아라)을 통해 이러한 문제제기에 나섰다. 그리고 박차오름의 끊임없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보수적인 법원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가는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미스 함무라비>가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섣부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단하지 않았다. 선과 악을 미리 정해두고 판단하지 않았고, 경청하고 또 경청했다. 현상에 집중하기보다 '왜 그랬을까?'라는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다. 사건 속의 사람을 들여다 보려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간단하고 쉬워 보였던 케이스가 한없이 어렵고 막막해졌다. <미스 함무라비>는 그럴 때마다 차분히 좀더 나은 답을 찾으려 끊임없이 궁리했다.

선의를 믿고 늘 약자의 편에 서고자 하는 좌배석 박차오름과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냉철한 우배석 임바른(김명수), <미스 함무라비>는 이 두 날개를 가동시켜 중심점을 찾아나간다. 그들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는 건 굉장히 흥미진진한 공부였다. 그런가 하면 후배들의 의견을 모아 균형감 있는 판결을 내리는 부장판사 한세상(성동일)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다.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 JTBC
물론 <미스 함무라비>를 보면서 '세상에 저런 판사가 어디 있어?'라는 의문을 품었던 게 사실이다.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주는 괴리감은 분명히 있었다. 작금의 사법부를 보라.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거래에 나섰던 게 바로 '양승태 대법원'이었다.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기여할 테니 상고법원 입법을 도와달라"고 적극적으로 로비에 나섰던 사실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지 않는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를 위해 법관을 사찰했고, 은밀히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 당시 상고법원 도입을 반대하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사찰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이렇게 되자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국민의 64%가 사법부의 판결을 불신한다고 한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당에 종영한 <미스 함무라비>를 보내야 하는 심정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 그럼에도 희망과 기대감이 조금 더 크다 '세상에 저런 판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바람이야말로 온 국민의 공통된 희망사항 아닐까. 부디 현직 부장판사가 전하고자 했던 <미스 함무라비>의 간절하고 간곡한 메시지가 법원을 끊임없이 두드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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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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