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년차 급여 > 10년차..참 이상한 '아시아나KA'를 아시나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선담은 2018. 7.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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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The) 친절한 기자들][더(the) 친절한 기자들]
문혜진 아시아나 지상여객서비스 노조지부장 인터뷰
아시아나 고객 서비스 담당하지만 소속은 '주식회사 KA'
5년차 미만 기본급 102만원.."수당으로 임금보전 잘못된 구조"
14일 저녁 청와대 인근에서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직원들이 총수 및 경영진 규탄 문화제를 열고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4일 저녁 청와대 앞에는 수십 개의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녔습니다. 색종이를 곱게 접어 비행기를 날린 이들은 ‘갑질 논란’, ‘기내식 논란’ 등에 휩싸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었습니다. 연이은 ‘오너 갑질’을 규탄하기 위해 첫 공동집회를 연 양대 항공사 직원들은 종이비행기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의 말처럼 “사람이 먼저라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두 항공사 직원들의 고충과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나라의 제일 큰 어른으로서 한마디 해 주기를 바란다”라는 마지막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여론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그릇된 행동에 공분했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갑’인 회사에 맞선 ‘을’이고 ‘병’입니다. 30도 안팎의 무더위 속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집회에 참가한 사실이 알려져 불이익을 당할까 가면과 선글라스,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참가자들의 모습이 씁쓸한 이유입니다. (▶관련 기사 : “갑질 어디까지 당해봤니?”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직원 뭉쳤다)

그런데 이날 현장에서 앳된 모습의 한 여성이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집회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앉아 가면을 쓴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길래 거침없이 가면을 벗어던졌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는 문혜진 아시아나 지상여객서비스 노조지부장이었습니다. 올해 스물일곱살인 문씨는 2015년 4월 입사한 4년차 직장인이자, 출범한 지 3개월 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아시아나 지상여객서비스지부를 이끄는 ‘20대 노조위원장’입니다.

문씨는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누가 봐도 ‘아시아나항공 유니폼’인 옷을 입고, 승객들에게 아시아나항공 탑승권을 발급합니다. 그가 고객들에게 안내하는 수하물 처리 규정 역시 아시아나항공이 정한 지침입니다. 그러나 문씨의 소속은 아시아나항공이 아닌 ‘주식회사 케이에이(KA)’입니다. 케이에이는 아시아나항공 탑승권 발급과 라운지 서비스 등 공항 내 지상서비스 전반을 담당하는 회사로, 공익법인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2시간 자고 17시간 격무”…항공사 지상직 노조 설립)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문씨는 ‘공항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해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케이에이에 입사했습니다. 회사에 들어온 뒤 1년 동안 문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행복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에서 일한다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직장생활 만 3년이 지난 지금, 함께 입사했던 동기 30명 가운데 회사에 남은 건 문씨를 포함해 5명뿐입니다. 절반에 가까운 동기들은 입사 1년도 채 안 돼 케이에이를 떠났습니다. 지난 3년 동안 회사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문씨와 동기들은 입사 초부터 선배들의 ‘이상한 질문’에 시달렸습니다.

“입사하자마자 선배들이 신입들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넌) 언제 그만둘 거야? 3개월? 6개월? 그냥 빨리 나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어요. 그땐 저도 정말 그 말을 이해 못 했거든요. 어디를 가나 회사생활 힘든 건 다 똑같고, 그 전에도 직장을 다녀봤으니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일하다 힘들 땐 누구나 잠깐씩 하는 거잖아요. 근데 회사를 2년, 3년 다닐수록 왜 그때 선배들이 그런 말을 했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케이에이는 임금체계가 “참 신기한” 회사였습니다. 5년차 미만 직원의 기본급은 102만원 수준이고, 10년차 선배들은 그보다 20만∼30만원을 더 받는데요. 1년차 직원의 급여가 10년 넘게 일한 선배보다 더 높은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기본급이 터무니없이 낮은 대신 야간·휴일근로 등 연장근로수당(시간외수당)으로 급여를 보전하는 임금체계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수당’이 포함돼야만 최저임금이 간신히 넘는 수준의 돈이 월급으로 나왔습니다. 1년차 신입과 10년차 이상 매니저들의 ‘임금역전’ 현상은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연차가 높은 매니저들은 승객들이 몰려 업무량이 많은 주간근무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고, 문씨처럼 연차가 낮은 직원들은 새벽 근무 등에 대거 투입되는 대신 그만큼 선배들보다 많은 시간외수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도 그는 전날(금요일) 밤 10시 반에 퇴근해 숙소에서 2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다음날(토요일) 새벽 3시 반부터 오전 10시까지 근무를 뛰었습니다. 문씨는 “기본급 외 추가 수당이 붙어야만 최저임금이 넘는 돈을 벌 수 있고, 급여보전을 위해 연장근로가 당연시되는 구조가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적은 급여만큼 케이에이 직원들의 업무는 쉬웠을까요? 문씨는 “임금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인데, 업무는 사전 공지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직원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업무를 케이에이 직원들이 떠안아야 했던 상황에 불만이 컸다고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아시아나 업무’는 무엇이었을까요?

“저희(케이에이)가 승객들이 탑승할 때 수하물 처리를 하잖아요. 초과 수하물이 발생할 경우 아시아나항공 규정을 설명해 드리고 징수금을 받아요. 특히 인천에서 중국, 그중에서도 베이징으로 가는 여객기의 경우 정말 많을 때는 한 편당 (수하물 요금으로) 500만~600만원을 넘게 벌어요. 중국으로 가는 ‘따이공’(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상)들이 많거든요. 수화물 요금을 어떻게든 안 내려고 하는 승객들한테 규정대로 돈을 받으려면 거친 말이 오가고, 싸워야 하고 힘들어지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번 돈은 한 푼도 빠짐없이 아시아나항공 수익으로 돌아가요. 승객들을 상대한 건 케이에이 직원들인데. 정작 그 업무를 담당했던 저희한테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수고했다’고 피자 한 판씩 돌리는 게 전부인 거예요. 학교를 갓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온 나이 어린 직원들은 또 그게 좋다고 (피자를) 먹거든요. 그런 모습이 너무 화가 났어요. 우리가 3~4개월 동안 죽도록 일해서 3억~4억원의 수익을 벌어들이는데, 아시아나는 둘째치고 우리 회사(케이에이)조차도 직원들에 대한 보상이나 대우가 너무 터무니없으니까…. 입사해서 뭣 모르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했던 후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일로 상처받고 1년 안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14일 저녁 청와대 인근에서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직원들이 총수 및 경영진 규탄 문화제를 열고 촛불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케이에이 소속 직원들은 설과 추석 등 명절 때마다 아시아나항공이 지정한 누리집에서 회사가 지급한 포인트 5만점을 갖고 명절선물 세트를 신청해야 했습니다. 회사는 물건을 주문하지 않은 직원들에게는 선물세트를 랜덤으로 발송했습니다. 이 선물이 ‘공짜’였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직원들이 받은 포인트 5만점은 급여명세서 기타항목에 5만원으로 찍혀 나왔다가, 다시 같은 달 공제액 항목에서 5만원이 공제되는 형태로 ‘증발’됐습니다. 형식상 회사가 직원들에게 5만원의 복지 혜택을 준 것처럼 꾸며졌지만 실상은 “줬다가 뺏어가는” 꼴이었습니다. 문씨가 회사에 “이럴 거면 선물세트를 안 받고 싶다”고 건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아시아나항공에서 주는 건데 안 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는 “회사 쪽에 급여체계를 설명해달라고 물어도 네이버 지식인(iN)에서 통상임금에 대한 답변을 그대로 복사해 회신했다. 회사의 태도가 너무 납득이 안 됐다”고 답답해했습니다.

그 사이 문씨처럼 ‘공항에서 일하고 싶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입사했던 동료들은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는 “나보다 어린 후배들이 첫 직장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안 돼 상처받고 떠나는 일이 다시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어딜 가서든 우리가 하는 일(지상직 업무)도 ‘정말 괜찮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라며 “나 역시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만큼 지금의 급여체계로는 미래를 자신할 수 없기에 케이에이를 나와 동료들이 꾸준히 다닐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서”라고, 행동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때마침 공항에서 알게 된 아시아나 에어포트(APP·항공기의 토잉카 운영 등 지상조업을 담당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소속 선배가 지나가며 한 말이 문씨의 마음에 불씨를 붙였습니다.

“회사 일이 힘들다는 제 이야기를 듣던 선배가 ‘노조를 만들면 뭔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 말이 떠올랐어요. 그 얘길 처음 들었을 땐 ‘저희는 (노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회사에도 나이 어린 직원들이 많은데 어떻게 노조를 만들어요?’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3명만 모이면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 하나만 믿고 작년 11월 친구랑 둘이 손잡고 고용노동청에 가서 ‘우리 회사에 노조 있는 거 맞아요?’라고 물어봤어요. 선배들은 회사에 있던 노사협의회가 노조랑 같은 건 줄 알더라고요. 이 얘길 했더니 고용노동청 직원이 우리 회사에 노조가 없다면서 노무사만 선임하면 노조를 만들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또 바로 고용노동청 앞 노무사 사무실 중에 무료상담을 해준다는 곳에 들어갔죠. 수임료 50만~60만원이면 노조를 만들 수 있다고 하길래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애들(팀원)한테 ‘우리 노조 만들 수 있으니까 한 사람씩 1만원씩 걷어서 모으자’라고 했어요. 저 혼자 노조가입 동의서 형식을 만들어서 이름, 주소, 싸인 쓰도록 하고, ‘노조 가입 시 조합비가 나갈 수 있다’는 문구도 써넣고. (웃음) 그래서 5일 만에 저희 팀(출입국 팀) 150명 중에 70~80명이 모였어요. 이렇게 받은 서명지를 매니저들에게 보여주면서 ’이만큼의 사람이 노조할 생각이 있는데, 같이 하시겠냐?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때까지 선배들한테는 서명받는 걸 비밀로 했거든요.”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노조 설립에 무관심하거나 걱정을 하는 선배들도 있었습니다. 전체 직원이 400명인 회사 내에서 다른 팀 조합원들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평소 회사에 많은 불만을 터뜨렸던 직원들조차 노조 설립 움직임에는 개운치 않은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연차가 높은 선배 중에는 ‘난 이대로 (회사를) 다니겠다’,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 ‘(노조를) 해봤자 뭐가 바뀌겠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올해 초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자 ‘최저임금 인상이 반영된 급여를 본 다음에 노조가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 결과 문씨의 1차 노조 설립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회사도 법을 준수하기 위해 딱 그만큼 급여를 올리거든요. 최저임금이 올라 급여가 오르니까 직원들이 어느 순간 또 만족을 하는 거예요. 당장 자기 눈앞에 보이는 (급여) 금액이 오르니까 분노가 사그라든 거죠. 그때 실패를 했지만, 저는 멈추기 싫었어요. 노조 가입하겠다고 70∼80명 모인 사람들도 아까웠고, ‘3명으로도 노조를 만들 수 있는데 80명으로 안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료들이 상처받지 않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싶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문씨는 다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노조 관계자분이 저희 급여체계와 경영구조, 근로계약서를 보시더니 황당해하시더라고요. 직접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어떻게 이 돈 받고 일하세요?’라는 표정을 지으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까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내 권리에 대해 이렇게나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지난 봄, 우리 회사 경영 문제를 지적한 기사가 보도됐고 회사 다른 부서에도 노조 설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저까지 20대 직원 5명(3년차 2명, 2년차 1명, 1년차 2명)이 4월27일 날 조그만 사무실에서 발기인 대회를 했어요. 더 미룰 것도 없으니, 이제 (노조) 하자고. 그리곤 5월2일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던 거죠. 조합원은 130명(전체 직원 수 400명)까지 늘어났다가 줄고 있는 상황이에요. 노조를 관둔 게 아니고, 회사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직원들이 계속 퇴사를 해서…. 그래도 오늘 집회에 와서 다시 희망이 보이는 게요. 1차 집회 때 6명이 참가했던 것과 비교해 오늘은 우리 회사에서 16명이 왔네요.”

학교 다닐 때 그 흔한 학생회 활동 한 번 해본 적 없었다는 문씨는 과거 자신도 노조를 “아저씨들이 시위하다가 경찰한테 맞는” 이미지로만 생각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그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2016년 겨울 촛불집회를 통해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광장’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노조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던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정권이 바뀌면서 ‘이걸 기회로 생각하자’는 마음도 들었다. 박근혜 정부 때였으면 아마 노조 만들 생각은 못 했을 것 같다”는 겁니다.

이런 그에게도 최근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20대 초·중반의 여성 직원이 많은 회사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친근하게 노조를 알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예전에 (노조) 총회 때 민주노총 본부장님이 오셔서 젊은 시절 노동운동하셨을 때 얘길 하셨거든요. ‘우리 땐 여관방에 숨어 지내고, 그러다 수배가 떨어지고’ 하는 그런 얘기들…. 듣다 보니 저희들이 사는 시대와 좀 동떨어진 세계를 듣는 것 같았어요. 물론 옛날에 그런 활동을 하신 데 대해 자부심을 갖고 계신 만큼 이야기를 하셨던 거였겠지만…. 직원들 중에는 그런 얘기에 오히려 겁을 먹은 친구들도 있었고. 저도 이야길 듣다 보니 ‘아, 이게 아닌데 저렇게 말하면 직원들 안 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저희 나잇대 직원들한테는 집회 때 부르는 파업가 같은 노래도 어색하죠. 그러다 보니 단합이 좀 힘든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연령대가 낮은 여성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이끌려면 좀 다르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까지 평범한 직장인이 회사를 바꾸겠다고 ‘노조를 만든 썰’이었습니다. ‘스물일곱살 노조위원장’ 문씨를 보면서 노조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쩐지 무섭고,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편견이 부서지는 느낌이 드는 건 저뿐일까요?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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