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문학자의 소확행은 무엇일까?읽음

김성민 | 건국대 교수·철학과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소소한 행복이라는 뜻으로 요즘 젊은 세대에게 유행하고 있는 단어다. 소확행은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발표한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소개된 용어다.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지나 국내에 정착한 소확행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고 있다.

[기고]인문학자의 소확행은 무엇일까?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계속 뛰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나라에서는 내가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주변보다 2~3배는 빨리 달려야 겨우 앞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 소설 속 장면과 흡사하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리라도 지키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조건 달려야 한다. 사회라는 육상트랙에서 끝없는 달리기에 지친 현대인들은 길가에 핀 꽃을 볼 때나 갓 구운 식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을 때 또는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때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누린 작은 행복을 오늘도 인스타그램 한 귀퉁이에 기록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인문학자 입장에서 볼 때 욜로나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현대인들의 고민을 표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번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나?”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학문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 바로 인문학이다. 사람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은 물질을 만들어내는 생산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이 살아나갈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지금 국내 인문학 진흥정책은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돛단배와 같다. 밖에서는 인문학 홍수처럼 보이지만 대학 안에서는 심각한 인문학 위기 상황이다. 학교 밖의 인문학이 성장하려면 학교 안의 인문학이 먼저 성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학문 후속세대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의 순수 연구·개발비가 국가 전체 연구·개발비 예산의 1.6%에 불과한 현실 앞에서 인문학의 미래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담보하기 어렵다. 특히 인문한국(HK)은 대한민국의 향후 100년, 200년을 내다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사업으로 단기간 국가 지원을 받고 마는 게 아니라, 연구소 중심의 연구 역량이 장기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의 꾸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 많은 기술 전문가들은 규제만 풀면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그럴까? 규제만 풀어주면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하고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창의력, 통찰력, 문제해결능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창의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인문학 지식과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꼭 필요하다.

인문학자에게 소확행이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를 통하여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정부와 사회가 부디 인문학자들의 소확행을 좌절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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