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0여명 군인 사망 참사 후 "다리 위에선 발 맞춰 걷지 마"

남도현 2018. 7. 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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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 사이클 붕괴로 이어져
절대 발맞춰 걷지말라는 지침
한국도 건물 붕괴 위기 경험해


Focus 인사이드

신병이 군대에 입소한 후 제일 먼저 받는 교육 과정이 제식 훈련이다. 그 어떤 조직보다 단체 규율을 중요시하고 상명하복 체계가 철저한 군대 문화의 특성상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대오를 맞추어 절도 있게 걷는 행진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군은 다수의 사람과 장비로 구성 된 조직이어서 움직일 때도 당연히 이에 맞는 행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이동간 제식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실전에서는 열병식처럼 절도 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없지만 유사시 즉각적으로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 이동 중에 반드시 대형을 갖추어야 한다. 군대가 발을 맞추지 않고 행진하는 어수선한 모습은 군기가 실종된 패잔병이거나 포로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는 장면 정도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행진만으로도 해당 부대가 얼마만큼 전투력을 유지하고 발휘할 수 있는지 가늠될 정도다.

그런데 ‘행진하더라도 다리 위에서는 절대로 발을 맞추어 걷지 않는다.’는 격언이 있다. 특히 교량 중에서도 영종대교, 남해대교처럼 높은 교각에서 팽팽히 늘어뜨린 케이블로 상판을 지탱하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에서는 발을 맞추는 행위를 절대 금한다고 한다. 이것이 흔히 FM이라 부르는 교범에 나와 있는 내용인지, 그리고 우리 군도 따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온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붕괴 되는 타코마 대교의 모습. 다리의 고유 진동에 같은 사이클의 외부 충격이 더 해지면서 벌어진 사고였다. [사진 wikipedia]

상판이 긴 현수교가 바람 같은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다리가 가진 고유의 진동 때문이다. 외부의 압력이 다리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만나 분산 상쇄되면서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드문 경우지만 다리의 진동과 외부에서 전해지는 충격의 사이클이 우연히 같게 되면 다리를 더욱 요동치게 만들어 무너지게 될 수 있고 실제로 붕괴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40년 11월 7일,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시에 있던 타코마 대교 붕괴 사고다. 불과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최신 다리가 측풍에 진동을 타면서 더욱 요동치게 되었고 그 결과 다리가 붕괴됐다. 사전에 통제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 사고는 이후 현수교를 비롯한 교량 설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이보다 한참 전인 1831년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무서운 사고가 있었다.

1831년 무너지면서 많은 군인들이 숨진 이후 1924년 같은 자리에 새로 건설된 브러튼(Broughton) 교. 이때의 교훈으로 영국군은 다리 위를 건널 때 발을 맞추지 않는다. [사진 wikipedia]

500여 병력으로 구성된 영국군 1개 대대가 맨체스터 인근의 브러튼(Broughton) 현수교를 발맞추어 통과하고 있었다. 이때 병사들이 동시에 발을 구르는 진폭이 다리의 진동 폭과 일치하면서 다리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이렇게 흔들림이 증폭된 다리가 붕괴하며 2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를 면밀히 조사해 원인을 알아낸 영국군은 이후부터 다리 위에서는 절대로 발을 맞추지 말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2011년 실시된 테크노마트 진동실험 [사진 중앙포토]

그런데 이와 비슷한 사고가 지난 2011년 7월에 서울 한복판에서도 있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테크노마트 빌딩이 10여 분간 흔들려 입주자들이 긴급히 대피하고 건물이 잠시 강제 폐쇄된 적이 있었다.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 12층에 있던 피트니스 센터에서 발맞추어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진동이 증폭되어 건물이 흔들린 것으로 조사되었었다.

위의 사례들은 흔하지 않지만 위험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그래서 행진하는 부대가 발맞추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걷더라도 그것을 군기나 전투력과 연관 지을 필요는 없다. 절도 있는 행진이 군대의 표상이라는 막연한 관념을 어떤 때는 버려야 한다. 안전보다 우선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도 예외없이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더욱 충실히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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