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점심의 사회학④] "3000원국밥 먹고 친구도 만나고.." 노인들의 고마운 쉼터 '낙원동'

2018. 7.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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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점심마다 와. 혼자 와도 밥 먹고 주변 사람들하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

출근시간대가 지나고 점심시간이 가까와지면 이곳 낙원동은 서울과 수도권 곳곳서 모여드는 노인들로 북적인다.

지난 12일 낙원상가 아래 골목식당 음식점에서 만난 단골 오강준(64) 할아버지의 점심 메뉴도 어김없이 골목식당에서 파는 3000원 국밥이다.

수유리 형네 집에 함께 살다 나와 쪽방서 생활한지 벌써 10개월, 이런 오 씨에게 낙원동 3000원 식당은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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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골목. 3000원 메뉴가 즐비한 모습. 성기윤 수습기자/skysung@heraldcorp.com]



-“값 싸지만 혼자 와도 밥먹을 때 말벗 많지”
-폭염에도 노인들 북적…“사람사는 냄새 난다”
-둘이 한그릇 나눠먹기도…200원 커피도 불티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ㆍ성기윤 수습기자] “매일 점심마다 와. 혼자 와도 밥 먹고 주변 사람들하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

서울 낙원상가 아래 골목식당은 허전하고 주머니 가벼운 노인들의 낙원이다. 출근시간대가 지나고 점심시간이 가까와지면 이곳 낙원동은 서울과 수도권 곳곳서 모여드는 노인들로 북적인다. 3000원이면 한끼를 해결할수 있는 식당과 200원에 달큰한 후식을 즐길 수 있는 커피자판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낙원상가 아래 골목식당 음식점에서 만난 단골 오강준(64) 할아버지의 점심 메뉴도 어김없이 골목식당에서 파는 3000원 국밥이다. 수유리 형네 집에 함께 살다 나와 쪽방서 생활한지 벌써 10개월, 이런 오 씨에게 낙원동 3000원 식당은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다. 오 씨는 “넓직하고 좋아. 매일 사람만나는 곳이야. 친구들하고 얘기하기 좋지”라고 말한다.

이날 31도를 웃도는 찜통 더위에도 식당 안은 오 씨같은 이들로 가득했다. 주인장의 뜨끈한 국물맛과 인심을 찾아든 손님들이다. 해가 중천에 뜬 낮시간이지만 몇몇 테이블은 벌써부터 막걸리잔을 권커니 잣커니하며 얼큰히 취해가고 있었다. 간간히 고성도 들렸다. 5000원 지폐 한장이면 점심식사와 막걸리까지 곁들일 수 있다. 

[12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골목. 200원 자판기엔 커피와 생강차, 율무차 등을 판매하고 있다. 성기윤 수습기자/skysung@heraldcorp.com]

10년째 ‘3000원’ 가격을 고수해온 식당주인 변순혜(62) 씨는 운영난에 시달리면서도 노인들의 외상을 번번히 받아주는 인심좋은 안주인이다.

변 씨는 “15년째 오는 손님들도 계시다. 자기 집처럼 이 음식 해달라, 저 음식 해달라는 요구를 들어주다보니 메뉴가 30개가 됐다. ‘다른 데서 먹었더니 떡만두가 맛있어’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선 가벼운 주머니 사정도, 하나 시켜 둘이 나눠먹는 민망함도 허용된다. 변 씨는 “다른 식당에선 두 명이 와서 하나 시키면 눈치가 보이니까 우리 식당에 와서 나눠먹는 손님들이 많다. 나라에서 노인 복지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노인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매상을 늘리고 싶어도 값을 올릴 수 없다.

어떤 노인에겐 1000원 지폐 세장을 내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멀리 장한평에서 매일 지하철을 타고 낙원동에 온다는 A(85) 씨는 점심은 집에서 꼭 챙겨먹고 나온다고 말한다. 그에겐 3000원 점심도 가끔 먹는 ‘외식’이다. 

[12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골목. 식사 후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 성기윤 수습기자/skysung@heraldcorp.com]

그가 이 거리에서 즐겨 찾는 건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다. “단골 카페만 있나. 단골 자판기도 있어. 다 커피맛이 달라”라며 웃었다.

무더운 날씨에 얼음 띄운 차가운 음료가 생각날 법도 하지만 그에겐 이곳에서 마시는 생강차가 최고다. A 씨는 “카페는 비싸서 안 가. 여기에서 몇천원이면 얼마나 많이 먹는데”라며 웃었다.

해가 늦게 떨어지는 여름날, 점심 식사를 마친 노인들은 더운 집 대신 공원 그늘막을 찾아 자리를 잡는다. 주머니가 조금 넉넉할 땐 영화표값 2000원을 내고 실버극장에서 가끔 영화를 보는 호사도 누린다. 알뜰한 A 씨 역시 ‘돈 내기’가 걸린 장기 대결을 마다한채 공원에 간다며 돗자리를 꺼내보였다.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집에는 여섯시 쯤 들어가야지”라며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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