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마세라티 3형제 중 막내인 기블리 네리시모에 올랐다. 서울 양재동~서판교~경기 광주 일대를 넘나드는 100㎞ 코스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고속 주행이 가능한 도로와 서울 도심, 커브가 심한 광주 특유 언덕길 등을 고루 밟아봤다.
외모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스티어링 휠을 잡았던 자동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차 반열에 오를 만하다. 네리시모는 엔트리 모델인 '기블리' 주제에 마세라티 대형 기함 콰트로포트테 뺨치는 차다. 원래 기블리는 콰트로포르테 포스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거대한 콰트로포르테 그릴과 비교했을 때 잔뜩 오므린 듯한 입술에 후드에서 전면 헤드라이트 상단까지 이어지는 경사가 다소 가볍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엔트리카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내놓은 '콰트로포르테 압축판'이라는 느낌이 상당하다. 하지만 기블리 네리시모는 이 판을 뒤집었다. 같은 차에 색깔만 달라진 게 아니다. 전혀 다른 차처럼 인상이 달라졌다.
프런트 그릴, 윈도 몰딩, 도어 핸들, 대시보드, 인테리어 트림, 다크 휠 등 여러 가지 디테일이 바뀌었다. 특히 딱 집어들고 싶은 것은 프런트 그릴. 그릴까지 모두 올블랙으로 칠하며 콰트로포르테와 비교해 왜소한 것 같은 입술 윤곽에 차체 색깔이 녹아들었다. 기블리가 이렇게까지 예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부 공간은 다소 실망스럽다. 올블랙 가죽에 레드 스티치로 모양을 냈지만 딱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내부는 이탈리아 차라기보다는 미국 차 같다는 느낌이 지배하고 있다.
마세라티를 쥐고 있는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 때문인지 마세라티 안방조차 크라이슬러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세라티 특유의 아날로그 시계는 붙어 있지만 여전히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에서는 크라이슬러 냄새가 풀풀 난다. 전장이 5m에 육박하는 차인 만큼 수납 공간은 널찍하다. 3m에 달하는 휠베이스로 푹 기대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장점으로 꼽힌다.
편의 장비는 역시 약하다. 널따란 터치 패드를 전진 배치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는 했지만 내비게이션, 인터페이스 등 첨단 기술 트렌드에는 상당히 많이 뒤처졌다. 이제 고급차 필수 공식이 된 헤드업디스플레이(HUD)조차 없다. HUD에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라면 한동안 시선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기블리 네리시모는 라인업별로 1억2500만~1억4400만원의 가격표가 붙었다. 종전 뉴 기블리(1억1240만~1억4080만원)보다 300만~1200만원 비싸다. 성능은 훌륭하지만 그 값이면 차라리 다른 럭셔리카를 레벨업해 타겠다는 유혹과 한국에 얼마 없는 희소성을 갖춘 모델이라는 유혹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여러모로 불꽃 튀는 차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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