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기업

[시승기] 한국에 딱 50대뿐…마세라티 한정판

김정환 기자
입력 : 
2018-07-16 04:01:06
수정 : 
2018-07-16 11:01:06

글자크기 설정

마세라티 기블리 네리시모
사진설명
'럭셔리카=드림카'라는 등식은 단단하다. 그런데 럭셔리카이면서 한국에 단 몇 대밖에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이라면 어떨까. 이 조합은 세속적이지만 강렬하다. 럭셔리카는 감성으로 타는 차다. 그런데 희소성까지 갖춰졌다면 다른 럭셔리카 오너에 비해 한 단계 위에 선 듯한 감성이 배가된다. 마세라티는 이 심리를 깊숙이 공략했다. 지난 5월 2018년형 신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물들인 한정판 모델 '네리시모'를 내놨다. 마세라티는 이름 자체로 독일 차가 난립한 한국 시장에서 눈에 띄는 존재다. 강렬한 삼지창 로고와 도로에서 찾기 어려운 이탈리안 카리스마를 버무렸다. 여기에 영리하게도 한정판이라는 외투를 입힌 것이다. 마세라티는 2018년형 기블리, 콰트로포르테, 르반떼 내·외부를 모두 딥블랙 컬러로 칠하고 네리시모 간판을 걸었다. 전 세계적으로 450대만 판매되는 모델인데 한국에 50대가 배정돼 럭셔리카 세계에서 달라진 위상을 반영했다.

지난달 17일 마세라티 3형제 중 막내인 기블리 네리시모에 올랐다. 서울 양재동~서판교~경기 광주 일대를 넘나드는 100㎞ 코스다. 서울외곽순환도로 등 고속 주행이 가능한 도로와 서울 도심, 커브가 심한 광주 특유 언덕길 등을 고루 밟아봤다.

외모로만 따지면 지금까지 스티어링 휠을 잡았던 자동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차 반열에 오를 만하다. 네리시모는 엔트리 모델인 '기블리' 주제에 마세라티 대형 기함 콰트로포트테 뺨치는 차다. 원래 기블리는 콰트로포르테 포스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거대한 콰트로포르테 그릴과 비교했을 때 잔뜩 오므린 듯한 입술에 후드에서 전면 헤드라이트 상단까지 이어지는 경사가 다소 가볍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엔트리카 시장 저변 확대를 위해 내놓은 '콰트로포르테 압축판'이라는 느낌이 상당하다. 하지만 기블리 네리시모는 이 판을 뒤집었다. 같은 차에 색깔만 달라진 게 아니다. 전혀 다른 차처럼 인상이 달라졌다.

프런트 그릴, 윈도 몰딩, 도어 핸들, 대시보드, 인테리어 트림, 다크 휠 등 여러 가지 디테일이 바뀌었다. 특히 딱 집어들고 싶은 것은 프런트 그릴. 그릴까지 모두 올블랙으로 칠하며 콰트로포르테와 비교해 왜소한 것 같은 입술 윤곽에 차체 색깔이 녹아들었다. 기블리가 이렇게까지 예뻐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사진설명
이날 시승한 기블리 네리시모는 스포츠 성능에 방점을 찍은 그란 스포츠 모델이다. 콰트로포르테 동생 격으로 성능만 놓고 보면 종전 2018년형 기블리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보면 된다. 섀시, 서스펜션 레이아웃, V6 엔진, 8단 ZF 자동 변속기를 콰트로포르테와 모두 공유한다. 다만 콰트로포르테에 비해 길이는 293㎜ 짧은 대신 무게는 50㎏ 더 가볍다. 마세라티 파워트레인 V6 가솔린 엔진은 이탈리아 마라넬로 페라리 공장에서 독점 제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고속도 267㎞/h에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5.5초 만에 주파할 수 있다. 이 스펙을 머리에 담고 냉정히 주행 평가에 들어갔다. 결론적으로 기블리 동종 모델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은 느낄 수 없다. 다만 마세라티 자체가 달리는 즐거움이 상당한 브랜드다. 이 같은 레이싱 DNA는 고스란히 기블리 네리시모에서도 재현됐다. 3m짜리 긴 휠베이스로 안정적으로 주행하면서 날카로운 핸들링의 손맛도 살아 있다. 차량 전후 무게도 잘 배분됐다. 레이싱 DNA가 이식된 만큼 정숙성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불과 초기 가속에 들어갔지만 벌써부터 리어 미러 근처 차체에서 진동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혹시라도 가족들이 같이 타는 차를 기대했다면 고속 주행 때 떨림 현상과 소음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은 감안하는 게 좋다. 이 차는 패밀리카 대척점에 있는 모델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내부 공간은 다소 실망스럽다. 올블랙 가죽에 레드 스티치로 모양을 냈지만 딱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적어도 내부는 이탈리아 차라기보다는 미국 차 같다는 느낌이 지배하고 있다.

마세라티를 쥐고 있는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 때문인지 마세라티 안방조차 크라이슬러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마세라티 특유의 아날로그 시계는 붙어 있지만 여전히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에서는 크라이슬러 냄새가 풀풀 난다. 전장이 5m에 육박하는 차인 만큼 수납 공간은 널찍하다. 3m에 달하는 휠베이스로 푹 기대 앉을 수 있는 공간도 장점으로 꼽힌다.

편의 장비는 역시 약하다. 널따란 터치 패드를 전진 배치하며 분위기를 띄우기는 했지만 내비게이션, 인터페이스 등 첨단 기술 트렌드에는 상당히 많이 뒤처졌다. 이제 고급차 필수 공식이 된 헤드업디스플레이(HUD)조차 없다. HUD에 익숙해져 있는 소비자라면 한동안 시선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기블리 네리시모는 라인업별로 1억2500만~1억4400만원의 가격표가 붙었다. 종전 뉴 기블리(1억1240만~1억4080만원)보다 300만~1200만원 비싸다. 성능은 훌륭하지만 그 값이면 차라리 다른 럭셔리카를 레벨업해 타겠다는 유혹과 한국에 얼마 없는 희소성을 갖춘 모델이라는 유혹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여러모로 불꽃 튀는 차다.

[김정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