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얼마나 안받길래.. 中인민은행까지 "현금 받아라"

베이징/이길성 특파원 2018. 7. 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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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지난해 모바일 결제 1경6500조원.. 5년새 244배 폭증
돈 흐름 제어하는 중앙은행 기능·권위 위협받는 상황 우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어떤 개인·단위도 현금 결제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내놨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5일 보도했다. 모바일 결제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은행은 지난 13일자 공지에서 "최근 관광 명소, 식당, 일반 소매점 등 많은 현장에서 소비자의 현금 결제를 거절하거나 차별하는 일이 늘고 있다"며 "중국의 법정화폐는 인민폐 지폐와 동전"이라고 강조했다. 인민은행은 이어 "모바일 결제의 과도한 확산이 인민폐의 지위를 위협하고 지불수단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인민은행은 현금 사용을 거절당한 구체적인 사례나 통계를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현금 없는 사회를 향해 가는 중국의 속도는 통계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난해 중국의 모바일 결제 규모는 97조6000억위안(약 1경6500조원)에 달했다. 2012년 4000억위안에 비하면 불과 5년 만에 244배나 폭증한 것이다. 반면 중국인들의 화폐 사용 규모는 매년 10%씩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의 경우 패스트푸드점, 식당, 택시, 호텔, 관광지, 주유소 등 거의 모든 소매 분야에서 모바일 결제가 현금 결제를 앞질렀다. 오직 단 한 분야, 길거리 노점상에서만 현금 결제가 모바일 결제를 간신히 앞서고 있을 뿐이다.

현금 지상주의였던 중국이 현금에 급속히 등을 돌리게 된 건 한마디로 모바일 결제가 편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사용자가 9억명에 이르는 중국판 카카오톡 위챗 운용사인 텐센트가 제공하는 모바일 결제는 간편하기 그지없다. 휴대폰으로 상대의 QR코드를 스캔한 뒤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전용기에 휴대폰을 갖다 대기만 하면 1~2초 만에 결제 끝이다. 중국의 유통·서비스 시장도 현금을 쓸 수 없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아무 데서나 타고 아무 데나 세워놔도 되는 중국의 공유 자전거,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은 모바일 결제만 가능하다. 모바일로 예약하고, 모바일로만 결제하는 헤어숍 체인도 성황이다.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사회는 그러나 중국 인민은행에 전례 없는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돈의 흐름을 제어하는 중앙은행 고유의 기능과 권위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서비스 회사들 간에 이뤄지는 모바일 결제는 인민은행의 청산·결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는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서비스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인민은행 모르게 국경을 넘나드는 돈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모바일 결제는 기존 시중은행들에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고객들이 ATM에서 현금을 뽑거나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빈도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ATM 인출 수수료와 신용카드 수수료 수입이 쪼그라들고 있다. 모바일 결제로 인한 중국 국영 은행들의 수수료 손실은 2015년 230억달러에서, 2020년 600억달러로 불어날 전망이다. 현금 거절 행위에 대한 인민은행의 경고 뒤에는 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에 대한 역풍이 중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워싱턴DC 시의회는 '소매업자는 현금을 결제 수단으로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상정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최근 보도했다. 현금 거절로 인한 소비자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 지역의 샐러드점 체인 스위트그린은 가게 입구에 '현금을 받지 않습니다. 저희 가게 아이폰 앱을 설치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유명한 멕시코 음식 체인 서프사이드도 현금을 받지 않는다.

'노캐시(no-cash)' 식당은 강도가 돈을 털어갈 위험도 없고, 직원이 돈을 빼돌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잔돈 계산하느라 손님들의 대기 줄이 길어질 가능성도 줄여준다고 WP는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워싱턴DC 거주자 10명 중 1명은 은행 계좌가 없거나, 불법 이민자라서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현금 결제를 강제하는 법안을 제출한 데이비드 그로소 의원은 "음식점 등 소매업체들이 은행에 계좌를 만들 수 없는 저소득자를 배제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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