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생각하는 ‘사법농단’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내일이 제헌절이다. 특히 올해는 제70주년 제헌절이라 더더욱 뜻깊다. 1948년 7월17일에 제헌헌법이 만들어져 공포된 이래 70년의 헌정사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민주헌정이 권력자들에 의해 유린당하는 위기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헌법을 지켜낸 이들은 주권을 실현하려는 평범한 국민들 자신이었다. 그래서 제헌절 70주년이 더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정동칼럼]제헌절에 생각하는 ‘사법농단’

촛불혁명의 현장에서 국민들에 의해 가장 많이 애창되었던 현행헌법 제1조 제2항은 제헌헌법에서는 제2조에 규정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썼다. 이때 “주권”은 추상적 권력으로서 ‘국가의사를 전반적·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최고권력’으로 정의되며,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권력”의 “권력”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과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권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원이 행사하는 사법권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위임받은 사법권의 행사가 주권자인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것일 때에는 이 국민주권조항에 반하는 위헌적인 사법권 오남용이 된다. 제헌헌법은 이러한 사법권을 위임받은 법원의 판사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제대로 소신껏 사법권을 행사하라고 ‘사법권 독립’을 헌법에 규정해 주었다.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도 구속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심판한다는 원리 말이다. ‘사법권 독립’은 모든 헌법교과서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 구현장치의 하나로서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제헌헌법은 제77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이를 조문화하였고, 1962년의 제5차 개헌에서 “헌법과 법률” 이외에 법관의 “양심”이 추가되면서 현행헌법 제103조로 이어지고 있다.

70년의 헌정사 동안 국민을 위한 공정한 사법권의 행사와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위해 애쓴 대법원장들도 없지 않았다. 특히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 대법원장은 당시 야당의 맹장인 서민호 의원 사건 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승만 정권 아래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구체적 사건 재판에 대한 각종 간섭을 막아내고 법관들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애쓰다가 지병이 도져 한쪽 다리를 절단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사법권의 국민을 위한 공정한 행사와 이를 위한 개별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제헌헌법 이래로 70년간 일관되게 이어져온 우리 헌법의 엄숙한 명령이었다.

최근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하의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사법농단 사태는 그래서 국민들에게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이미 법원의 특별조사단이 조사하고 검찰에 임의 제출한 410개의 법원행정처 문건 등에서도 여러 위헌·위법한 사법행정권 오·남용 사례들이 담겨있다. 대법원장이, 또 법원행정처가 법관의 독립을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재판을 하는 법관들을 뒷조사하고 이를 문건화하는 데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들의 피와 눈물이 담긴 사건들의 재판에서 공권력의 오·남용으로부터 국민들의 인권을 지켜주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힘쓰기는커녕, 오히려 당시 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제 도입을 위해 당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한 정황이 담긴 문건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최근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상고법원제 도입에 반대한 전 대한변협 회장이나 다수의 민변 변호사 등 민간인들까지 불법사찰한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과거 독재시대의 국정원이나 기무사가 한 민간인 불법사찰을 감행한 것이다. 실로 점입가경이다. 법을 잘 알고 재판을 했던 법원행정처의 법관들이 한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들이다. 앞으로 국민들은 이런 사법농단 사태 때문에 얼마나 더 놀라야 하고 얼마나 더 분노해야 하는가. 민주헌정 국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도 법원은 이미 스스로 진행한 자체조사에서 검토한 자료들을 제외하고는, 여러 이유를 들어 검찰의 자료 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국민들의 눈에는 이것이 사법농단에 관여한 의혹으로 수사를 받아야 할 당사자인 법원이 스스로의 자의적인 판단을 내세워 어떤 자료는 줄 수 있고, 어떤 자료는 줄 수 없다는 식으로 선별적인 자료 제출 거부에 나선 것으로 비칠 뿐이다. 정녕 법원은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인가.

제헌절을 즈음해 헌법 제1조 제2항의 국민주권조항과 제103조의 사법권 독립 조항을 다시 소리 내어 읽어본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 믿는다. 사법부가 지금부터라도 이런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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