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능력을 키워주다

이진숙 | 미술평론가

프라 안젤리코 ‘그리스도의 조롱’

프라 안젤리코의 ‘그리스도의 조롱’(1441)은 잔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대신 보는 이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도록 하고 있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리스도의 조롱’(1441)은 잔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는 대신 보는 이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도록 하고 있다.

■ 시복 성인이 된 화가

이름마저 감미로운 화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이지만 “천사 수도사”라는 의미에서 프라 안젤리코라 불린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물질적인 행복보다는 정신적인 행복을 위해 수도사의 길을 택해 도미니코 수도원의 성직자가 됐다. 그는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시절에 성인(聖人) 품위에 오르기 위한 직전 단계로 시복(諡福)됐다. 프라 안젤리코의 주요 활동기는 바로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피렌체의 권력을 잡고 있던 때다. 일찍이 음모와 추방 등 권력의 더러움과 무상함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던 코시모 데 메디치는 “50년이 되기도 전에 우리는 쫓겨나겠지만, 내 건물들은 남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여러 예술가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코시모 데 메디치는 산 마르코 수도원 재건축은 신진 건축가 미켈로초(Michelozzo)에게, 성당의 주제단을 포함하여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원 내 그림은 안젤리코에게 맡겼다. 안젤리코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이곳에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은퇴 후 자신만의 수도실(Cell)을 가졌다. 지금 이곳은 프라 안젤리코 뮤지엄이다.

르네상스는 혁신의 시대였지만 모두 새로움을 향해 나아갔던 것만은 아니다. 역사는 수없이 많은 과거의 썰물과 미래의 밀물이 교차 반복되면서 결국 새것의 승리를 맞이하는 법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새롭게 등장한 원근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움을 향하는 것이 그의 과제는 아니었다. 그에게는 앞으로 이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도록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작업이 필생의 과제였다. 르네상스 같은 급격한 예술의 전환기에는 그것 역시 그 시대에만 주어진 축복이다. 저마다의 시대에는 늘 새로운 과제가 있고, 그 새로운 과제에 다양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반응하면서 독창적인 예술가가 될 기회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가령 마사초-미켈란젤로-카라바조로 이어지는, 강력한 남성적 근육으로 채워진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은 너무나 섬세하고 현실감이 없어 보일 것이다. 전자의 격렬한 남성적인 몸은 선악의 투쟁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고뇌를 보여준다. 이들에게 선은 이러한 투쟁적인 단련과정을 통해서만 도달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속에는 ‘축복받은’, 일종의 타고난 선량함이라 할 만한 것이 표현돼 있다. 이것은 중세 말 종말론에 기인한 염세적인 사고에서도, 근대사회의 진입과 더불어 생겨나는 합리적 비판주의가 강화되는 시점에서도 만날 수 없는, ‘축복받은’ 짧은 시대의 표정이다.

■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기

조롱과 모독당하는 그리스도
얼굴만 있는 사람은 침 뱉고
고통 가하는 사람 손만 네 개
악인들 모습 제대로 안 그려
암시적 묘사만으로도 충분해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그리스도의 조롱’(1503)은 예수를 괴롭히는 악인들을 묘사하고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그리스도의 조롱’(1503)은 예수를 괴롭히는 악인들을 묘사하고 있다.

안젤리코적인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산 마르코 수도원의 7번 수도실(Cell #7) 벽에 그려져 있는 프레스코화 ‘그리스도의 조롱’을 보라. 그림 속에서 사람을 선동하고 신의 아들로 자처한 죄로 체포된 예수가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독을 당하고 있다. 재능 있는 화가인 프라 안젤리코는 간단한 직육면체 형태의 단면만으로도 원근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의자에 앉은 예수상은 전통적으로 ‘권좌에 오른 예수’를 의미하며, 붉은 의자는 수난의 권좌를 의미한다. 세상과 하늘의 왕으로서 왕홀과 보주를 들어야 하는 손에는 갈대와 돌멩이가 들려 있다.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천으로 눈을 가려 예수를 조롱하고 있다. 예수의 눈은 아주 얇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서 고통스럽게 감은 눈의 윤곽이 비치는데, 이는 예수가 느끼는 모멸감이 어떤 것인지 섬세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에 반전이 하나 있다. 빛나는 후광은 그의 궁극적인 승리를 암시한다. 신(神)임을 증거하기 위한 순간에 예수는 빛으로 변하는데, 이 모습은 가장 명도가 높은 흰색 옷을 입은 것으로 그려진다. 이 그림의 특이한 점은 같은 장면을 담은 다른 그림들과 달리 예수를 조롱하는 자들을 제대로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전부 그려진 것이 아니라 손만 네 개 그려져 있다. 모두 오른손이므로 얼굴을 알 수 없는 사람들 네 명이 예수를 둘러싸고 고통을 가하고 있다는 암시이다. 그 외에도 얼굴과 목만 등장하는 인물이 한 명 있는데, 왼손으로 모자를 들어 올린 그는 예수에게 침을 뱉고 있다.

왜 프라 안젤리코는 예수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온전한 몸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일까?

동일한 주제를 그린 그뤼네발트의 그림에서처럼 예수를 괴롭히고 수난을 가하는 사람들은 악인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일말의 인간적인 연민을 갖지 못하는 무지막지한 악한이다. 그러나 ‘축복받은 천사 수도사’ 프라 안젤리코는 차마 예수가 수난을 당한 험한 장면을 상상할 수도, 그릴 수도 없었다. 프라 안젤리코와 가장 대극이 되는 이미지를 제공하는 문화적 생산물은 멜 깁슨(Mel Gibson)의 <그리스도의 수난>(2004)이라는 영화다. 예수의 몸을 참으로 가혹하게 다룬 이 영화가 보여주는 끔찍한 폭력의 수위는 그만큼 우리 시대가 타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예수가 우리를 위해 대속했다는 것의 의미를 몸의 고통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줘야만 양심의 가책을 겨우 느낄까 말까 하는 폭력불감증 시대, 성스러움을 향한 어떤 고양된 정신적 계기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타락한 시대를 의미할 뿐이다.

수전 손택이 일침을 가했던 ‘타인의 고통’이 구경거리로 되는 시대에는 예수의 고통도 구경거리가 됐다. 이미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도 다른 사람의 벌 받는 고통을 구경하는 지옥의 관음증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그가 누구이든 한 인간이 고통을 받는 것, 분쟁과 다툼 속에 있는 광경은 잔혹하면서도 비일상적인 기괴한 장면으로 관음증을 야기한다. ‘타인의 고통’이 구경거리가 되고 흥미의 대상이 되는 순간, 그것은 일종의 도덕적 무감각을 야기한다. 그것은 매우 “천박한 일”이라고 단테는 엄정히 경고한다.

멜 깁슨 감독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2004)의 한 장면.

멜 깁슨 감독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2004)의 한 장면.

물론 프라 안젤리코의 시대가 우리 시대보다 덜 야만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시 코시모 데 메디치도 끊임없는 정치적 음모에 시달렸다. 실제로 모두들 자신이 기도하는 성당의 주제단 후원권을 독점적으로 획득해 축복마저 독점하려고 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멜 깁슨처럼 흥행을 위해서라면 예수의 고통조차 구경거리로 만들어도 좋다는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던 시대였다. 프라 안젤리코는 이 수도원에서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하는 수도사들에게 악인의 얼굴을 그려줘서 악의 표정을 심어주는 일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감정은 한번 학습되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지만 잦은 분노, 잦은 좌절감, 잦은 욕설들은 축적되면 그대로 성격이 되어 버리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표출되어 타인과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감정의 복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근본주의와 순혈주의는 정통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순교자를 만들고 비정통적이라고 찍힌 것에 대해 일상적인 공포와 증오를 누적시킨다. 단테의 시절부터 코시모 데 메디치까지 100여년간 피렌체 정쟁을 프라 안젤리코도 모르지 않았다. 세상 밖은 어떤지 몰라도 프라 안젤리코는 이 수도실에서만은, 혹은 자기 그림을 보는 이 순간만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보는 것처럼 악은 폭행을 가하는 손, 내뱉는 침 등 암시적으로만 그려도 충분했다. 이 그림은 잔혹한 현실을 관념적으로 부정하는 그림이 아니라 거꾸로 타인의 고통을 제 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된 공감능력이 뛰어난 섬세한 사람들을 양성하기 위한 작품이다. 암시적인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면 굳이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가장 아름다운 명상의 자세

성모와 성도미니크 명상적 태도
예수를 차마 제대로 못 쳐다봐
수도사에겐 가장 현실적 자세
묵상으로 그의 고통 알 수 있어

‘그리스도의 조롱’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고 그릴 때, 프라 안젤리코가 더 권하고 싶었던 것은 조롱하는 악인들의 악행이 아니라 전면에 앉아 있는 성모와 성 도미니크의 명상적인 태도다. 실제로 예수가 체포돼 책형을 받는 장면을 성모는 보지 못했다. 성 도미니크는 12~13세기 때의 성인이니, 예수나 마리아를 직접 볼 수가 없었다. 그림 속 예수가 있는 곳과 달리 마리아와 성 도미니크가 있는 곳은 단차가 있다. 이러한 공간적인 구분은 동시에 두 사건의 성격이 확실히 구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난당하는 예수가 앉아 있는 공간은 사실 참으로 기이하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예수가 앉아 있는 단과 의자는 능숙한 원근법으로 구현된 입체적인 공간인데, 예수 뒤쪽의 배경은 마치 걸개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모욕을 가하는 사람들은 비현실적인 공간에, 묵상하는 성모와 성 도미니크는 현실적인 공간에, 예수는 그 중간에 놓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즉 예수의 수난은 회화나 텍스트를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인 동시에 수도사들에게는 매일매일 체험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수도사들이 접했을 때 가장 현실적이고, 타당한 자세는 묵상이다.

턱을 손에 괴고 있는 두 사람의 자세는 전형적인 명상의 자세다. 아들의 수난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성모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함과 동시에 그 의미를 생각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 옆에서 성 도미니크는 ‘영적인 독서’(Lectio Divina)라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수행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턱에 손을 괸 모습은 단순한 궁리의 자세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영적인 사색, 명상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자세이다. 실제로 이는 미켈란젤로부터 로댕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인 묵상, 구원과 죄, 인간적인 회의에 대해 사색하는 자의 자세의 근본이 된다. 또한 이는 놀랍게도 우리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자세와 유사하다.

최근 러시아 소재의 피렌체·모스크바 협회라는 학술단체는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영묘의 조각과 동양 불상의 상호연관성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실크로드를 통해 50㎝ 이하의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불상들이 꽤 많이 서양에 유입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다.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 미켈란젤로가 보았다면, 프라 안젤리코도 보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떤 과정을 거쳐 가능했는지는 차후에 더 세밀한 논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만 여기에서는 도상학적인 유사성이 말하는 흥미로운 가능성을 열어 두는 차원에서 논의를 정리한다. 아무리 뛰어난 현대의 장인도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다시 만들 수 없듯이,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도 다시 그려질 수 없다. 거기에는 그 시대에만 태어날 수 있는 정신적인 함의가 담겨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진한 시대의 한 장면이었다.

조용한 수도실 한쪽에 한 수도사가 그린 그림이 가진 선한 감화력은 매우 더디게만 퍼져 나갔다. 반면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은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세상을 뒤덮었다. 코시모 데 메디치에서 시작되어 아들인 피에트로와 손자인 로렌초까지 이어지는 3대에 걸친 메디치 가문의 통치는 이미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코시모 데 메디치의 예언 아닌 예언이 들어맞았는지 이 그림이 그려진 뒤 딱 50년 뒤인 1491년,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는 동료들과 모반을 일으켜 친메디치 성향의 돈 구이도가 수도원장을 쫓아내고 산 마르코 수도원장으로 선출됐다. 사보나롤라는 3대에 걸친 메디치 가문의 독재에 반대하고, 교회의 개혁과 피렌체 정치체제의 개혁을 요구하며 광장에서 연설을 했다. 사보나롤라는 산 마르코 수도원에 기거하면서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을 익히 보아왔다. 그는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자체보다, 그 그림들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서 그려졌다는 사실을 증오했다. 메디치 가문이 산 마르코 성당의 주제단 독점 후원권을 획득해서 축복마저 돈으로 독점하려고 했던 행위를 용서하지 않았다.

부정적 감정들은 어떻게든 표출
결국 타인과 자신에게 해 끼쳐

“우리 도미니코 수도회 안에 침투한 돈의 사악함에 하느님과 나의 저주가 내리기를”이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독한 말이 효력을 발휘했는지 로렌초 데 메디치는 1492년 4월9일,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벼락이 떨어지고 나서 나흘 뒤에 52세의 나이로 급서한다. 사보나롤라의 격렬한 연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역시 1498년 연설을 하던 광장에서 공개화형을 당했다. 피렌체 시민들의 그동안 눌려 왔던 증오와 분노는 사보나롤라가 내뱉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로 증폭됐다.

사보나롤라에 의해 학습되고 훈련된 부정적인 감정이 결국은 그 자신을 향해 폭발했던 것이다.

■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5)‘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능력을 키워주다

산 마르코 국립박물관 : 피렌체의 산 마르코 성당의 부속 수도원이었던 곳이 프라 안젤리코, 베네토 고촐리, 기를란다요 등 여러 화가들의 작품 덕분에 산 마르코 국립박물관이라고 불리게 됐다. 안젤리코의 ‘산 마르코의 주제단화’ ‘수태고지’ 등 대표작을 볼 수 있다.

■ 필자 이진숙

[이진숙의 휴먼 갤러리](5)‘타인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감능력을 키워주다

서울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을 하며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에 큰 감명을 받아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국립인문대학 미술사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롤리타는 없다 1, 2> <시대를 훔친 미술> <위대한 미술책> 등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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