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는 인스타그램의 '외모 전시'가 피곤하다

양민영 2018. 7. 15.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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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자 ⑨] 인스타그램과 #운동하는여자.. '꾸밈 강박' 벗어나 진정한 해방 수단 되길

[오마이뉴스 글:양민영, 편집:김예지]

 인스타그램에 #인생화보, #바디프로필 해시태그를 검색했을 때 뜨는 수많은 사진들. '내 몸은 매력적인가?' 인스타그램은 반문하게 만든다.
ⓒ 인스타그램 갈무리
운동하는 여자의 연재명은 예상대로 '#운동하는여자'에서 따왔다. 연재를 처음 시작하던 때는 페미니즘과 함께 운동이 여성들의 중요한 관심사로 급부상하던 시기였다. 흡족한 제목은 아니지만 운동과 관련된 가장 핫한 해시태그이므로 그 화제성을 빌려와서, 운동하는 여자들의 다양한 양상을 선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운동하는 여자를 쓰는 내내 체육관을 오갔다. 과거와 비교해서 체육관의 달라진 면을 꼽으라면 '페미니즘과 여성혐오가 공존하는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몸의 형태보다는 기능에 주목하고 체력을 기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동시에 여전히 수많은 여성이 조금이라도 더 마르기를 소원한다. 상반된 두 가지 욕망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겐 이 두 가지 욕망이 혼재되는 공간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넷(net)생'이다. '현생에 힘주러(현실에 충실하러) 갑니다'와 같은 용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넷생은 현생의 반대말, 즉 인터넷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과거엔 단순히 인터넷 중독을 우려했다면 이제는 현생을 살듯 또 하나의 삶, 넷생을 살아야 한다. 현생을 살면서 넷생을 연출하는 게 아니라, 쿨한 넷생을 위해서 현생을 연출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SNS가 존재한다.

개중에서 가장 핫한 플랫폼이자, 시각적인 이미지가 주를 이루는 인스타그램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끝도 없이 미녀가 등장하고 아무도 일하지 않고 모두가 리조트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세상에 대하여. 처음 인스타그램이 일군 루키즘(외모지상주의, Lookism) 왕국의 실체를 확인했을 때, 그 인상은 사뭇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SNS에서 외모를 전시하는 현상은 싸이월드 시절부터 계속됐지만 인스타그램의 탄생으로 정점을 맞았다. 그만큼 그 양상이 노골적이고 집약적인 것이다.

적게는 천 명에서 많게는 만 명 단위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 스타들의 피드는 대체로 얼굴과 몸만으로 구성된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현란한 이미지들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겁다. 제아무리 대단한 쇼도 인터미션이 있기 마련인데 잠깐이라도 쉬어갈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이내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외모 이외의 것을 전시하며 한가하게 쉬는 건 힘들다. 그곳은 가장 뜨겁고 치열한 미의 콜로세움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인스타그램만의 고유성에서 기인하는데 애초에 인스타그램은 인지도가 확고한 이른바 셀럽이 아닌 이상 '나'를 내세울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계정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 혹은 나의 삶이 아니라 가장 경쟁력 있는 콘텐츠 하나에 주력하며 지속적으로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팔로우를 끌어모으고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인기 계정은 연예인 화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이미지와 대담한 노출로 시선을 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운동하는여자'와 외모지상주의가 만난다. 운동복 입은 미녀의 활동적이고 섹시한 이미지, 열심히 운동해서 몸을 만드는 과정, 복근과 애플힙의 전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다.

또 종전에는 주류 미디어가 트렌드를 만들면 일인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이를 흡수, 재생산했다면 이제는 일인 미디어만의 독립적인 트렌드가 있고 SNS에서 인기를 끈 스타가 주류 미디어로 진출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중, 운동과 관련된 SNS 트렌드를 예로 들자면 '인생 화보' 등의 촬영을 꼽을 수 있다.

'내 몸은 매력적인가?' 인스타그램은 반문하게 만든다

 내 몸은 매력적인가? 얼마나 섹시한가? 충분히 말랐는가? 여기까지 도달하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순간이다.
ⓒ pixabay
인생 화보란 운동으로 몸을 가꾼 일반인들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사진을 말한다. 재미나 자기만족을 위한 이벤트라 하기엔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이 요구된다. 먼저 운동과 식단 조절을 병행하면서 화보 촬영에 적합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어떤 몸이 촬영에 적합한지는, 굳이 누가 정해놓지 않아도 모두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떠올린 그 몸이 맞다).

우선 근육은 필수지만 너무 크거나, '예쁘지 않게' 발달해서는 안 된다. 전반적으로 마른 가운데 근육질인, 전문 댄서 같은 실루엣 갖춰야 하고 여기에 복근과 애플힙이 반드시 추가돼야 한다. 몸이 완성되는 가운데 인공 태닝 등으로 피부색을 어둡게 해서 더욱 슬림하게 보이게끔 효과를 주고, 시선을 끌면서도 너무 흔하지 않은 콘셉트를 선택하느라 고심한다. 그러나 어떤 콘셉트를 선택하든 노출을 빼놓을 수 없다. 어렵게 만든 몸을 인정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인 것이다.

이렇게 넷생을 점유한 트렌드는 다시 현생에 영향을 끼친다. 넷생과 현생이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을 살펴보면 체육관에서의 욕망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팔로잉하는 스타가, 운동을 취미로 즐기는 줄 알았던 사람이, 혹은 나의 친구나 동료가 어느 날 복근과 애플힙을 드러낸다면? 야근을 하면서도 틈틈이 운동을 하고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고 배가 고픈 와중에도 복근을 만든다면?

이 방면에 크게 관심이 없던 여성들까지 자신의 몸에 의문을 갖는다. 내 몸은 매력적인가? 얼마나 섹시한가? 충분히 말랐는가? 여기까지 도달하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순간이다. 물론 인터넷 자아를 선택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연출하는 것은 개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노출과 그로 인한 섹스어필이 쿨한 것으로 통하고 그 반대는 따분하고 경직된 것으로 여기는 흐름 속에서 그것이 취향이고 선택이라고 확신할 만한 근거는 희박하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위시한 일인 미디어가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고 여성혐오를 생산하는 원흉이냐면, 단순히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운동하는 여자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이미지 중에는 몸의 기능성을 자랑하고 날로 발전하는 운동 능력을 기록하는, 일군의 게시물들이 존재한다. 이미지 속 주인공들은 진정으로 운동을 사랑하고 몸을 미적 기준에 맞춰 혹사시키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운동이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해방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근본적으로, 외모지상주의 등의 확산은 유구한 여성혐오의 결과다. 16세기의 코르셋이 여성을 수시로 기절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현대의 다이어트가 불러온 해악 또한 만만치 않다. 오늘날에도 상당수의 여성이 섭식장애를 앓고 일부는 죽어간다.

결국 혐오에 맞서서 외모지상주의를 거부하고 여성의 몸과 정신을 해방할 힘은 오직 여성, 그리고 페미니즘에 있다. 최근 우리는 여성의 외모와 아름다움을 둘러싼 새로운 담론을 만들며 다시 없을 변화의 기회를 맞았다. 이 거센 흐름을 잘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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