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미국 무기 원조받던 한국..이젠 유럽에 자주포 수출
상전벽해(桑田碧海). 한국군과 국내 방위산업의 놀라운 변화과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군이 운용중인 장비 중 상당수가 국내 방산업체게 생산한 제품이다. K-1/K-1A1, K-2 전차와 K-21 보병전투차, 수리온 헬기, T-50 훈련기 등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군 장병들과 함께 한반도를 지키고 있다.
국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수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탄약이나 차량을 수출하던 것에서 벗어나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무기의 수출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군에서 대량운용하다보니 도입비와 후속군수지원비가 다른 나라 무기보다 저렴하고, 가격에 비해 성능이 우수하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국산 무기 가운데 가장 높은 수출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은 K-9 자주포다.
K-9 자주포는 최대 40km 떨어진 곳까지 포탄을 발사할 수 있다. 신형 사거리연장탄을 사용하면 50km까지 사거리가 늘어난다. 최대 1000마력의 출력을 내는 엔진과 우수한 트랜스미션 덕분에 높은 수준의 기동력을 발휘한다. 초탄 발사가 30초 이내에 이뤄지며 분당 최대 6발 발사가 가능하다.
한화지상방산(舊 삼성테크윈)이 생산하는 K-9 자주포는 2000년대 이후 세계 최고 수준의 자주포에 요구되는 성능을 갖춘 무기로 평가된다. 미국 M-109A6와 비교하면 사거리, 탄약적재량, 기동성 등에서 우수하며 영국 AS-90보다는 사거리, 기동성 등에서 앞선다는 평가다. 세계 최고의 자주포라 불리는 독일 PzH2000는 탄약적재량과 발사속도는 뒤지지만 사거리는 대등하고 기동성은 우수하다.
K-9 자주포의 성능은 2016년 1월 노르웨이에서 진행됐던 동계 시험평가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노르웨이 자주포 사업 수주를 위해 시험평가에 참가한 각국 자주포들은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에 허리까지 쌓인 눈밭을 질주하며 사격해 목표물을 정확히 맞춰야 했다. 당시 시험평가 현장에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인접국 군 관계자도 참관하고 있어 노르웨이에서의 시험평가가 추가 수출이나 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시험평가 과정에서 경쟁사 자주포들은 눈길에서 궤도가 끊어지거나 중간에 시동이 꺼지는 사고가 빈발했다. 반면 K-9 자주포는 눈 덮인 산길과 경사면을 거침없이 달리며 정밀사격을 실시해 군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이같은 장점에 힘입어 K-9 자주포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터키,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인도 등에 500대가 수출됐다. 최근에는 에스토니아에 12문을 판매하는 4600만유로(5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수출 방식도 중고 자주포 수리 후 재판매(핀란드, 에스토니아), 차체 판매(폴란드), 일부 직접 공급 및 기술협력생산(터키, 인도)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경쟁 기종들은 우리나라처럼 대량생산이 이뤄지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가격과 성능, 판매방식 측면에서 K-9 자주포가 경쟁 기종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다.
한화지상방산은 미국 자주포 시장 공략을 최종 목표로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지상방산전시회 유로사토리에 핀란드용 K-9 자주포를 전시하는 등 글로벌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세계 시장서 각광받을 국산 무기는
K-9 자주포가 세계 시장에서 잇따라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특정 무기체계에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 따라서 K-9 자주포 이외에 다른 무기들도 수출 드라이브를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남북 화해분위기가 고조되면서 국내 소요가 축소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방산수출 강화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세계 시장에서 수주 가능성이 있는 품목으로는 장갑차를 중심으로 한 지상 기동무기체계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우리 군도 대량운용하고 있어 후속군수지원비가 낮고, 운용경험도 충분히 쌓을 수 있어 외국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로템이 생산해 500여대가 배치될 육군 차륜형장갑차의 경우 국지전이나 대테러전에 유용해 남미, 중동 등에서 수요가 많다. 다른 나라 경쟁제품에 비해 국내 배치 수량이 많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상태에서 수출이 이뤄져 가격 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
한국형전술차량과 트럭 등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지프보다 방어력과 기동력이 뛰어난 전술차량은 미국의 험비가 등장한 이후 세계 각국에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우수한 자동차 기술과 저렴한 비용이 결합되면 세계 시장에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KT-1과 T-50을 비롯한 항공분야는 추가 수출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훈련과 지상공격 기능이 결합된 터보프롭기는 브라질제 슈퍼 투카노 외에 미국제 AT-501 등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T-50 계열 항공기 중 해외에서 선호도가 높은 FA-50 경공격기는 미국제 중고 F-16 전투기를 상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세계에 수천대가 퍼져있는 중고 F-16은 전자장비 교체 등 약간의 성능개량만으로도 다목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F-35A 도입이 진행되면서 매물로 나올 중고 F-16은 FA-50의 입지를 좁힐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크로아티아는 이스라엘이 F-35A를 도입하면서 퇴역시킨 중고 F-16 12대를 5억 달러(5660억원)에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크로아티아는 한때 FA-50 도입 가능성이 제기됐던 나라였다. 하지만 크로아티아 전투기 사업에 참여의사를 나타낸 미국, 이스라엘, 그리스는 중고 F-16을 제안했다.
반면 함정은 세계적으로 수요가 많은 초계함의 경우 자국 기술 발전과 자주국방 차원에서 국산화 정책을 표방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고, 구축함급 함정은 유럽 국가들이 수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마케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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