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안방 블록버스터의 새 가능성 연 '미스터 션샤인'

김선영 TV평론가 2018. 7. 1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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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최근 몇 년 동안 방송가에서 두드러진 현상 중 하나는 대하사극의 퇴조다. 2010년대 들어 점점 쇠락의 길을 걷더니 2016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 MBC <옥중화>와 SBS <육룡이 나르샤>가 마지막 50부작 이상 사극이다. ‘대하정통사극’으로는 2015년 방영된 KBS <징비록>이 마지막이었다. 현재는 상대적으로 제작비 부담이 적은 미니시리즈형 사극만 간간이 방영되고 있다. 과거 대하사극은 영화에 대중문화의 주류 자리를 내준 드라마가 영화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안방 블록버스터 장르로 사랑받았다. 철학, 정치 등의 거대서사와 멜로, 성장담 등의 일상적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며 한국드라마 고유의 강점인 극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장르인 데다, 대규모 전투신, 세트, 의복 등 볼거리도 풍부해서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이 역으로 방송 광고 시장 축소와 제작비 상승의 이중고를 버티지 못하고 쇠락하는 원인이 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주 방영을 시작한 tvN <미스터 션샤인>은 안방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4부작인 <미스터 션샤인>은 사극으로선 미니시리즈에 가깝지만, 이 장르를 통해 드라마적 재미의 최대치에 도전하고 있다. 김은숙 작가는 전작인 KBS <태양의 후예>, tvN <도깨비>에서 기존의 멜로 중심 이야기를 뛰어넘어 액션, 판타지 등 다양한 서사를 결합해 종합엔터테인먼트로서 드라마의 진화를 실험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실험을 위한 최적의 무대를 사극에서 찾았다. 사실 사극은 그 제작비를 감당할 수 있는 영화계에서는 이미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자리 잡았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로 알 수 있듯, 사극은 거대한 스케일로 극장가를 초토화하는 할리우드산 대작 영화에 맞설 만한 가장 경쟁력 있는 장르다.

현재 <미스터 션샤인>이 TV에서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드라마 최대 제작비의 부담은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로 상당 부분 해결했고, 이 풍족한 지원은 고스란히 드라마의 완성도로 연결됐다. 무엇보다 글로벌 포맷에 맞춘 스토리텔링의 변화가 눈에 띈다. 먼저 캐릭터를 보자. 남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는 김은숙 드라마 하면 흔히 떠오르는 재벌 후계자가 아니다. 노비 출신의 그는 주인에게 살해당하는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도 홀로 가난과 인종차별을 버티며 성장했고, 결국엔 군대에서 공을 세우며 계급 상승을 이뤄냈다. 유진의 서사는 글로벌 성장담의 표준이 된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남주인공 캐릭터의 변화다. 여주인공 애신(김태리)의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낮에는 사대부집 규수로, 밤에는 저격수로 살아가는 그녀는 가면 히어로의 이중생활을 그대로 따른다. 강인하고 역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선호하는 대중문화 트렌드를 반영한 설정이다. 남녀 주연배우의 나이차에 따른 논란에도 불구하고, 애신의 매력적인 캐릭터는 여성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든다.

이에 더해 정의, 평등과 같은 대의명분과 이에 걸맞은 선 굵은 서사가 있다. 구한말 격변기를 배경으로, 제국주의적 탐욕에 저항하는 영웅들의 활약, 차별 없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등 글로벌 시청자들도 공감할 만한 세계관의 확장을 보여준다. 여기에 김은숙 특유의 로맨스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간다. 여주인공을 둘러싸고 세 명의 남자가 순정을 바칠 정도로 러브라인이 복잡해졌지만, 모두가 치열한 시대적 고민을 지닌 캐릭터로서 설득력을 얻는다. “어제는 멀고, 오늘은 낯설며, 내일은 두려운 격변의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각자의 방법으로 격변하는 조선을 지나는 중이었다”라는 애신의 내레이션 위로 주요 인물들이 교차 편집되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로맨스가 역사와 유리되지 않는 이야기가 될 것을 예고한다.

볼거리 면에서도 구한말 격변기를 무대로 한 전략이 제대로 통했다. 전통과 근대가 충돌하고, 세계 열강들의 알력 다툼이 벌어지는 한성의 풍경은 글로벌 서사의 무대로 제격이다. 대표적 사례가 정보 매매자 로건 테일러 테러신이다. 유진과 애신은 각각의 이유로 그를 암살하려 하고, 테일러와 거래하기로 한 일본 낭인들이 둘을 뒤쫓는다. 마침 거리에는 가로등 점등식이라는 신묘한 불구경을 위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한 가운데, 복면을 벗고 제 모습을 드러낸 유진과 애신은 서로를 마주본다. 검을 든 낭인들과 장총을 든 저격수, 서양 신사 복식의 유진과 사대부집 규수 차림의 애신, 이들이 교차하는 순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켜지는 가로등의 불빛은 다양한 서사와 볼거리의 결합으로 극대화된 재미를 추구하는 이 작품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미스터 션샤인>이 선보인 안방 블록버스터로서 사극의 가능성은 앞으로의 대작 라인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화제를 모으는 김은희 작가의 신작 <킹덤>, 그리고 <대장금>,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가 대본을 쓰고 송중기가 주연 물망에 올라있는 <아스달 연대기>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 같은 흐름에 우려할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과거에도 한번 일본발 한류 열풍에 편승한 ‘무늬만 대작’ 열풍이 불었다가 자기 복제 스토리로 실패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춘 변화가 필수적이다.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 <미스터 션샤인>의 뒷심 유지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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