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전설이 됐다고 하지만 들어보면 현실인 '전관예우'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2018. 7.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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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판사 출신 변호사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캡처

“관운 끝나고 재운 시작된다.” 퇴직하는 판사에게 현직 판사들이 곧잘 건네던 덕담이다. 법원을 떠나는 사람에 대한 위로겠지만 빈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연수원 마치고 개업한 변호사보다 돈을 많이 벌었다. 이를 두고 전관예우를 받아서라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다. 전관예우라는 표현의 출처와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지만, 판사들의 암묵적이고 조직적인 도움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불과 10년 전 “○○부장이 개업하고 첫 사건인데 패소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는 전관은 어떤 사건을 맡아도 패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전제돼 있었다. 물론 판사 물이 덜 빠진 전관 변호사가 사건을 살펴보고 승소할 사건만 수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있었다.

법원은 조직이 아니라 독립된 헌법기관인 판사들이 속한 기구다. 그런데 판사들이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전관들을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이런 일이 있었는지 혹은 여전히 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런 의혹의 바닥에는 판사들이 독립적이지 않으리라는 의심이 있다. 비슷한 대학을 나오고 같은 연수원에서 공부하고, 이름만 말하면 누군지 아는 작은 사회여서 조직적인 전관예우가 있다는 것이다. 법정에 나타난 변호사가 앞서 모신 부장의 친구, 동료 판사의 선배나 후배, 다들 이런 식이란 얘기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변호사가 법원장을 만나 “재판을 딱딱하게 진행하는 것 같다”고 한마디 할 수도 있으니 적절한 선에서 편의를 봐준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이제는 설득력이 없다. 판사가 3000명을 넘어서고 승진 구조가 완화되면서 전관이란 이유만으로 유리한 판결을 받아낸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얘기가 됐다. 설령 그런 경우가 있다 해도 얼굴도 모르는 전관보다 법원에 근무한 적이 없어도 대학이나 연수원 동기인 변호사가 유리할 수 있다. 충청권 지방법원 한 부장판사는 “법정에 들어온 변호사가 평소 존경하던 사람이라면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지만, 반대로 안 좋아하거나 아예 싫어하는 사람이면 얘기는 뻔한 것 아니냐”고 했다.

따라서 현재 논란인 전관예우는 법원에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는 ‘슈퍼 변호사’나 재판부와 직접 인연이 있는 ‘안면 변호사’의 문제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리고 내용도 결론뿐 아니라 각종 절차상 편의를 포함한다. 이렇게 파악하면 판사들의 인간관계와 승진 욕망이 판결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로 정리된다. 한편 슈퍼 변호사는 대법원 고위직들과 가깝다고 알려진 사람들로 법관 인사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있다. 이들이 마련한 술자리에 현직 판사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전관예우 우려에 대처하는 판사들의 모습에서 법원사회의 세대 변화가 드러난다. 어느 지방법원의 형사단독 판사는 최근 자신이 담당하는 사건의 변호인이 자신과 인연이 있는 사람인 것을 알고 수석부장판사에게 재배당을 요구했다. 하지만 수석부장은 그다지 심각한 인연도 아니고 그걸로 재판이 제대로 안될 것 같지도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판사님이 그 변호인 안다고 달리 판단할 사람도 아닌데, 그냥 하시지요”라고 했다. 하지만 이 얘기를 전해들은 판사들은 “마음이 불편해서 하기 싫다는데 왜 굳이 하도록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른바 변호사의 판사 접대도 없어졌다.

현직 판사 “판사가 3000명 넘는데…‘슈퍼 변호사’나 해당되죠” “안면 있는 변호인일 땐 부장판사에게 재배당 요구도” 변호사 “의뢰인 여전히 전관 선호”…48%가 “없어지지 않을 것”

그렇다면 판사들은 자신과 아는 변호사가 법정에 나타나면 어떤 심정일까. 서울지역 지방법원 어느 부장판사 얘기다.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변호사 개인이 아니라 로펌이다. 사건마다 담당변호사가 있어서 이름을 올린다. 그런데 그 변호사들 모두가 관여하는 게 아니다. 사건을 맡아 의뢰인을 만나고 법정에 오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런데 최근에 법정에 연수원 동기인 변호사가 나타났다. 왜 나타났는지 감이 오더라. 그러면서 ‘이게 뭐하는 거지’ 싶더라. 당사자를 한 번 봤다. ‘아이 참, 이거 의심받게 생겼네’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로 아주 신경 써서 재판을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덕을 본 게 없을 거다.”

이 같은 설명에 변호사들은 반론한다. 내가 전관예우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판사가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판사한테 물어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들을 설문한 결과를 보면 열에 아홉이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판사들도 변호사들의 주장에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판사 출신 아닌 변호사들이 주로 답했을 텐데, 입증되지 않는 주장에 불과한 것 아니냐. 전관예우라는 말은 전관들은 수임하는 데 자신을 팔려고, 전관이 아닌 사람들은 패소한 사건에 대한 변명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논쟁은 대상을 전관으로 잡아 다소 문제이기는 하지만, 전관변호사 대신 ‘슈퍼 변호사’나 ‘안면 변호사’를 넣어도 얘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판사로 시작해 대형 로펌 변호사를 거쳐 다시 판사로 복귀했던 현직 변호사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의뢰인은 적어도 손해를 안 볼 것이라는 생각에 재판부와 안면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한다. 잘 모르는 대리인보다는 일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과거에는 통하는 시절이 있었다. 요즘에는 의도적으로 혜택을 안 주려고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이 근무하던 사람, 친한 사람이라면 법정에서 야단칠 것도 안 치고 면을 세워주기도 한다.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한다. 구설에 안 오르려 조심하는 경우가 많지만, 다른 한편 배척할 만한 증거신청을 어지간하면 받아주기도 한다.” 즉 판사들마다 ‘슈퍼 변호사’ ‘안면 변호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연차의 판사들 얘기를 모아보면 이렇다. “변호사한테 술 얻어먹고 전관예우 해주던 판사들은 이미 다 나간 거 아니냐. 대놓고 그렇게 해주는 판사들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예전의 법관은 스스로 직장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수틀리면 나가면 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직업이 좋아서 계속하고 싶다는 식이다. 요새 젊은 판사들은 아는 사람이라고 편의 봐주고 그러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판사라고 해도 친분관계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영향을 배제하지는 못할 것이란 설명은 부정하지 못했다. 대형로펌에서 법원행정처 인사담당 출신 판사를 잡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도, 판사 사회의 친소관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서 드러난 판사들의 행동에서 법원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판사도 사람이어서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이 함께 있다. 여기에 가까운 사람들이 끼어들면 손익을 계산하는 마음이 커진다. 동료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재판을 거래하려는 시도는 손익을 계산하는 마음이 커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시를 곧바로 거부한 이탄희 판사 같은 사람이 여전히 법원에 있다. 어떠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올바름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이 훨씬 큰 사람이다. 우리 법원에 이탄희 판사 같은 사람이 아주 적지는 않을 것이다.”

부장판사는 재판장? 부장판사는 ‘승진 코스’ 헌법에 의하면 법관은 셋으로 나뉜다.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다. 임명 과정과 임기가 다르다. 판사는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임기는 판사가 10년, 대법관과 대법원장이 6년이다. 판사와 대법관은 연임이 가능하며 대법원장은 연임도 중임도 불가능하다. 부장판사라는 직함이 법원조직법에 있다. 판사 셋으로 이뤄진 재판부의 장은 재판장이라고 하는데, 재판장과 부장판사는 다른 개념이다. 부장판사는 기본적으로 재판부의 사무를 감독하는 판사를 가리킨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차관급으로 사실상 승진코스다. 이들은 자신의 소속도 아닌 지방법원의 수석부장이 되기도하는데 식민지 총독과 비슷하다는 비판이 있다. 지방법원에는 부장판사이지만 단독판사인 경우도 있다. 결국 재판장과 부장판사는 다른 셈이다. 헌법에도 없는 부장판사라는 승진 코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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