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판사, 당신은 누구인가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2018. 7.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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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① 칭찬에 목마른 모범생들

칭찬에 목마른 모범생…있는 듯 없는 듯 전관예우

한국의 시민들은 판사와 법원을 믿지 않는다. 세계 12위 경제력을 가진 국가에서 일어나기 힘든 현상이다. 지난해 시작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이 판사들의 출세를 위해 거래된 의혹이 드러났다. 대법원장의 비서기구인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이 동료 판사들의 사생활과 재산을 뒷조사했다. 최고법원인 대법원 판결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자발적으로 수정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앞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을 예정이다. 자신이 판사로 있던 형사법정에 출석해 심판을 받고 처벌되겠지만 그걸로 사법부의 신뢰가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의 이공현 전 헌법재판관은 “지금 누가 처벌을 받고 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믿고 의지할 법원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행정 수반인 대통령, 입법부의 국회의원과 달리 사법부를 구성하는 판사는 선출되지 않는다. 다수결을 넘어서 올바름을 추구하고, 소수자를 보호하라고 헌법이 그렇게 정했다. 민주적 정당성이 없기에 법관들은 더욱 양심적이어야 하고 정연한 법 논리로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법관 3000여명은 어떤 사람들인가. 법관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비슷한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세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입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진정한 사법개혁의 첫걸음은 판사들을 이해하는 것이다.

◆수재 자부심·강한 인정 욕망…법정에서 사람들 내려다봐

대한민국 판사의 평균적인 프로필을 보자. 서울대 법과대학 3학년 혹은 4학년 때 합격률 3%인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수재 1000여명이 모인 사법연수원에서 못해도 100등 안팎의 성적을 거둔다. 이들에게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사법연수원 1~10등 정도의 성적을 말한다. 수석이 대법원장상, 차석 법무부장관상, 삼석이 대한변호사협회장상, 그 외 10등까지 사법연수원장상을 받는다. 공부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종종 성적 얘기를 한다. 40~50대 어른이 동료의 성적을 기억하고, 그걸로 상대를 판단하는 곳은 판사 집단이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할 것이다.

판사에게 성적은 물신(物神)이다. 똑같이 법조계 비주류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법조계의 반응이 판이한 이유도 성적이다. 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12기 수료생 가운데 차석이다. 법조인 누구도 문 대통령이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거나 판사를 거치지 않았다고 시비하지 않는다. 행여라도 시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연수원 수석뿐이다. 12기 수석이 김용덕 대법관이고 삼석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대상인 박병대 전 대법관이다. 문 대통령에게 시국전과가 없었다면 지금 대법원에서 기록을 넘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법연수원은 판사가 되기 위한 경쟁장이다. 어느 변호사 얘기다. “판사 임용 성적이 되면 반드시 판사에 지원한다. 150등까지 검사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오래된 얘기다. 오히려 김앤장 같은 대형 로펌 지원자는 있다. 성적대로 차례로 판사를 채우고, 그 다음 성적부터 검사와 대형 로펌 변호사가 된다. 연수원은 판사에게 우월감을, 변호사에게 좌절감을 주는 곳이다.” 대한민국 판사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좌절을 모르는 사람의 자부심이다. 그리고 이들을 움직여온 것은 칭찬이다. “칭찬받으려는 욕망이 강하고, 뭐든지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 법조계 다른 공직에 있다가 중간에 판사로 들어간 중견법관의 평가다.

절망을 모르는 자부심, 그 이면의 칭찬과 인정을 향한 강한 욕망, 이것들이 일상과 법정에서 드러난다. 이와 관련,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문건을 보면 판사들을 해외연수를 미끼로 구슬린다는 계획이 나온다. 법원 밖에서는 “판사씩이나 되어서 해외연수가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해외’가 아니라 ‘선발’이다. 대상이 연수든, 휴가든 그 절차가 선발이라면 탈락해서는 안되는 것이 판사들이다. 만약 해외연수가 추첨으로 정해졌다면 판사들이 그렇게까지 목을 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벙커’라는 법원 은어가 있다. 골프장 모래구덩이를 뜻하는 이 영어단어는 배석판사를 힘들게 하는 부장판사를 가리킨다. 자세히는 업무형 벙커와 생활형 벙커가 있다.

사법연수원 100등 안팎까지 임용 ‘등수’ 꼬리표로 상대 판단하는 곳 배석판사 힘들게 하는 부장판사에 항의 못하고 ‘벙커’라 부르며 흉봐 승진 생각에 윗사람엔 고분고분 변호사들엔 면박·무안 주기 일쑤 대화·토론보다 판단·결정에 익숙 ‘법원 외부와는 교류 적다’ 지적에 “일도 많은데 물정 모른다 욕 먹어”

얼마나 유명한지 리스트도 있고, 외부인인 기자들도 얼마쯤은 외운다. 생각해보면 어느 회사나 무능하거나 후배를 못살게 구는 상사는 있게 마련인데 굳이 이런 은어를 만들었을까. 특히 벙커는 검찰이나 로펌에는 없는 은어다. 이 단어를 통해 법조인 전체가 아닌 판사만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판사들은 개개인이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통제받는 것을 부당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그러면서도 부당한 통제에 대응하지 못하면서 은어를 만들어서 흉이나 본다는 점이다. 문제제기를 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는 순간, 유능하면서도 고분고분한 사람을 원하는 법관사회의 경쟁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이 법원 밖에서는 대체로 자부심만 남는 인간관계를 만든다. 판사석 아래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느 여성 변호사의 설명이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견뎌야 하는 가장 큰 스트레스가 법정에서 판사를 대하는 것이다. ‘이게 되겠느냐’ ‘말이 되느냐’면서 면박과 무안을 준다. 설령 내가 실력 없다고 해도 판사에게 혼날 일은 아니다. 더구나 실력과는 명백히 무관한 발언이 상당수다. 재판 첫날에 이런 증거를 왜 신청하냐고도 하는데 사건 내용도 모르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 판사들은 법관평가가 친절평가라고 비난하는 모양인데 워낙 불친절하니 그러는 것 아니냐.”

이런 일은 변호사만 겪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어느 부장검사의 얘기다. “지방에 근무할 때 판사하고 골프를 치러 갔는데 라운딩하는 내내 캐디를 닦달하더라. 우리가 판검사인지 빤히 아는데 민망하기도 해서 ‘뭐하러 그렇게 힘을 빼시냐’고 했더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얘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하더라. 그 판사가 골프장 운영위원이긴 했다. 그래도 도를 넘는 행동이었다.” 이 부장검사는 “판사들이 변호사가 어설프다고 당사자 도울 생각에 신경질 내는 게 아니다. 그렇게 치면 검사들도 무죄를 수두룩하게 받는데 판사한테 면박당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우리가 판사들보다 공부는 못했지만 수사권이 있으니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친절도 자부심에서, 정확히는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판사들의 인간관계가 다소 특이하게 분화하는 지점에 승진 포기가 있다. 판사들이 인정 욕망의 핵심인 승진을 포기하면, 인정받아야 할 상대가 법원 외부가 된다. 수도권의 부장검사는 “지역법관에게 재판을 받아보면 주요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많다. 통계를 내보지 않았지만 체감이 그렇다. 집행유예는 지역사회와도 척지지 않고, 검사 체면도 세워주는 판결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건 판결도 아니고 뭐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인정을 해주는 상대는 지역사회이기도 하고 여론일 때도 있다. 특별한 경우 로펌이 되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출세하겠다는 서울의 엘리트 판사들이 악착같이 유무죄를 따지고 든다. 과감하게 무죄도 쓰고, 눈 딱 감고 유죄도 때린다. 문제는 판결들을 대법원을 바라보면서 내리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지금 불거진 이런 상황이다.”

판사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경청(傾聽)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된다. 판사보다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데 판사들과 거듭해서 얘기하다 보면, 이들이 귀 기울여 듣는 것도 듣는 것이지만 대화에 끼어드는 타이밍이 한 템포 늦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화라는 것은 말을 하고 싶어도 참고, 또 하고 싶지 않아도 하면서 의사를 섞는 것이다. 하지만 판사들은 상대방과 의사를 교환할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판단하는 것에 치중한다. 이런 성향은 토론이 필요한 상황에서야 드러난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들은 “판사들이 헌재에 연구관으로 파견 와서는 한동안 토론에 참여하지 못한다. 의견을 내고, 반박당하고, 재반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더라”고 했다. 법관 상대 강연에 나가본 사람들도 말한다. “표정의 변화가 없다. 가벼운 자리인데도 계속해서 평가받는 기분이 들게 한다.”

토론보다 결정에 익숙한 생활은 강한 자기 확신을 갖게 만든다. 도덕성을 강조하는 최근 분위기에 따라 외부와의 교류가 더욱 줄면서 이런 성향이 강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사법기관 최고위직을 거친 법조계 원로는 우려를 나타냈다. 우선 요즘 판사들이 과거에 비해 청렴한 것은 맞고 제대로 된 방향이라고 전제했다.

“내가 임용됐을 때 선배들이 돈만 안 먹으면 된다고 했다. 지금 들으면 말도 안되는 얘기다. 돈 쓰는 입장에서 보면 다를 게 없잖나. 카드를 쓰던 때도 아니라 현금이 똑같이 나갔다. 돈만 안 받으면 된다는 것은 돈을 받는 판사가 있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우리 시절 판사들이 오염된 것은 맞다. 부인하지 못한다.”

하지만 판사들이 사람들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 교류 자체를 하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판의 핵심은 어쨌든 결론이다. 현실적인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이론은 만들어서 돌파하면 된다. 타당성을 갖추려면 사회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타당성, 사회적 공감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런데 요새 판사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이론에만 골몰한다. 힘은 힘대로 들고 욕은 욕대로 먹는다. 지금처럼 판사들이 사람을 법정에서만 보는 것은 소름 끼치는 일이다.”

하지만 법관이 외부와 소통할 여유가 도저히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평생에 걸쳐 엄청난 업무량을 견디며 사는데 사건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는 부장만 돼도 도장 찍는 게 일이고, 변호사도 중견이 되면 영업만 한다. 하지만 법관은 대법관이 되어도 연간 3500건을 처리한다. 기록을 읽고 판결을 써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 안 만나고 물정 모른다고 욕까지 먹어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들이 인터뷰 말미에 하나같이 꺼낸 말이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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