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퍼스펙티브] 현행 제도로 총선 치렀다면 243 대 47이었다

김진국 입력 2018. 7. 12. 00:10 수정 2018. 7. 12.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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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 독식, 지역주의, 사표 ..
문 대통령 선거구제 개혁 강조
노무현, 지역주의 타파하려
선거제도 개혁하려 했으나
기득권 거대 정당 번번이 무산
지방선거가 개혁 기회 만들어
한국, 서울3, 경남7, 대구·경북 24
민주, 그밖의 모든 의석 휩쓸어


지방선거와 선거제도 개혁
6·13 지방선거는 충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정치 지형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자유한국당이 설 땅이 없다. TK(대구·경북)당으로 남든가, 사라지라고 요구한다. 더불어민주당은 곳곳에서 사실상 독점적 정당이 됐다.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휩쓸었다. 일당독주가 가능하다. 이런 상황이 되더라도 한국당에는 표를 못 찍어주겠다는 게 민심이다.

차라리 한국당을 해체하라는 주장이 나온다. 정의당이 제1야당이 되겠다고 한다. 민주당을 둘로 나눠 제1당과 제2당으로 하는 게 낫겠다고도 한다. 냉소적인 보수 유권자가 더 불만에 차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정치관계법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한국당이 개헌과 선거법 개정을 들고나왔다. 이대로는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다고 불안해진 것이다.

선거 결과를 보면 정말 민심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정당에 얼마나 가혹하게 징벌을 내리는지 보여줬다. 너무 심하지 않으냐 싶을 정도다. 그러나 투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온 국민이 한꺼번에 반대편으로 달려간 건 아니다. 현행 선거제도가 성난 민심을 더욱 증폭시켜 표출하고 있다. 한 표만 많아도 다 갖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선거법은 헌법보다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선거 때마다 선거구를 다시 그어야 한다. 유권자 수가 변하기 때문이다. 숫자로 표시되는 일인데도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시한을 넘기는 일이 허다하다. 현역 의원의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한다고 밝히면서 “만약 선거구제 개편 등이 같이 논의된다면 다른 정부 형태, 다른 권력구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선거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후보 시절에도 그는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가 초래하는 지역주의 정치 구도를 완화하고, 약화하는 지역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권역별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 말에는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압축적으로 표현돼 있다. 승자 독식, 지역주의, 지역 대표성…. 문 대통령은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도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구절을 넣어놨다.

# 바보 노무현의 숙원, 선거제도 개혁

일부 전문가는 헌법보다 선거제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정치에서 지역주의 문제는 뿌리가 깊지만 그것이 고질적으로 드러나고 강화된 것은 13대 총선에서 소선거구제를 도입하면서부터다. ‘1노 3김’(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나라를 봉건 영지처럼 나눴다.

‘싹쓸이’ ‘말뚝 선거’라는 표현이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았다. 민주화의 주역인 ‘3김’을 청산하는 일이 민주화 이후의 과제로 부각된 것도 그 탓이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당선자를 정당의 상징색으로 표시한 지도를 그리면 뚜렷한 할거(割據) 양상이 뚜렷하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는 거대정당에 유리하다. 얻은 표와 의석수를 비교하면 큰 정당일수록 얻은 표보다 의석수가 훨씬 많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승자 독식의 경쟁이다. 1등 이외에는 소용이 없다. 다른 후보를 찍은 표는 모두 ‘죽은 표’가 된다.

후보 네 명이 각각 30%, 25%, 25%, 20%를 얻었다고 치자. 그 가운데 30%를 얻은 후보 한 사람만 당선된다. 나머지 후보를 찍은 70%의 국민 의사는 반영되지 않는다. 더구나 당락은 겨우 한 표, 두 표로도 갈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동점자, 한두 표 차로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도 당선은 한 사람이다. 정치인들은 “저를 찍지 않은 유권자들의 뜻도 존중하겠다”고 말한다. 입에 발린 소리다.

지방선거가 현행 제도 총선일 경우 추정 지역구 의석수
20대 총선에 대입하면 확연히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당 비례투표에서 얻은 표로 환산하면 67석이지만 실제로는 110석을 얻었다. 실제로 105석을 얻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도 92석으로 줄어든다. 이에 반해 실제 25석에 불과한 국민의당이 정당투표에서 얻은 표를 의석으로 환산하면 73석에 해당한다. 2석을 얻은 정의당도 21석으로 늘어난다. 서울에서 민주당은 35석을 얻었지만 정당득표율로 보면 14석에 불과했다. 실제로 2석을 얻은 국민의당이 정당득표는 15석이었다.

그러니 거대 정당에는 현행 선거제도가 유리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5년 2월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독일식 선거제도다. 학자들도 대부분 이 방식으로 바꾸어 표의 등가성(等價性)을 높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거대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자기 의석을 줄이는 이런 제도를 선뜻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다만 민주당에는 지역성을 벗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 ‘호남’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게 최대의 선거 전략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했다. 그 바람에 ‘바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번번이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막혀 진전이 없었다. 이제야말로 기회가 왔다.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에 느긋하게 만들었다. 전국적으로 압도적 지지를 확보하면서 오히려 현행 제도가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한국당은 그동안 의석수에서 손해를 보고, 민주당을 지역적 굴레에서 풀어주는 데 호의적일 수 없었다.

# 총선이라면 219 대 34

6·13 지방선거는 이런 계산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오히려 다급해진 것은 한국당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로 총선을 치르면 폐업을 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결과를 총선 투표로 가정해 의석수를 계산해 봤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투표를 기준으로 삼아 현행 소선거구제일 경우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일 경우로 나누어 산정했다. 권역은 편의상 현재의 시·도를 기준으로 삼았다.

현행 소선거구제라면 더불어민주당이 독식한다. 민주당이 지역구 의석 253석 가운데 219석(86.6%), 자유한국당은 34석(13.4%)을 차지한다. 두 정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에는 지역구 의석이 한 석도 돌아가지 않는다. 비례대표 의석은 그나마 고르게 나누어진다. 민주당이 24석, 한국당이 13석,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각 4석, 민주평화당과 민중당이 각 1석이다.

지역별로는 편중 현상이 더욱 심하다. 대구·경북과 경남, 서울을 제외하면 민주당이 모든 지역에서 모든 의석을 다 가져간다. 서울도 구별 득표율로만 따지면 민주당이 싹쓸이 한다. 선거구별로 나누어 따져보니 강남갑·강남병·서초갑 세 곳에서 겨우 한국당이 이겼다. 민주당은 강남을·서초을을 포함해 서울에서만 46석을 가져간다.

한국당은 확실한 TK(대구·경북) 지역당으로 전락한다. 대구(12석)와 경북(13석)에서 구미을 한 곳을 제외한 24석을 한국당이 차지한다. 민주당은 대구·경북 지역에서 구미을 한 곳에서 당선된다.

부산(18석)·울산(6석)도 민주당 싹쓸이다. 경남(16석)도 민주당(9석)이 한국당(7석)보다 많다. 창원에서는 민주당이 의창·성산·마산합포·진해 4석을, 한국당이 마산회원 1석을 가져간다. 이 밖에 민주당은 김해갑·김해을·거제·양산갑·양산을을, 한국당은 진주갑·진주을·통영-고성·사천-하동-남해·밀양-의령-함안-창녕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 권역별 비례대표제라면 정의당 31석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꾸면 달라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지역별로 선출한 뒤 득표 비례로 계산해 비례대표로 의석수 비율을 맞춰주는 제도다. 이 경우 의석이 300석을 넘어설 수 있다. 잉여 의석이 생긴다. 따라서 편의상 시·도별 단순 비례대표로 의석수를 계산해 봤다. 비례대표 의석은 시·도별 의석 비율로 나누어 포함했다. 따라서 현행 시·도별 의석보다 다소 많은 의석으로 표시된다.

이렇게 제도를 바꾸면 더불어민주당이 300석 가운데 153석(51%)으로 겨우 과반을 차지한다. 자유한국당 80석(26.7%), 정의당 31석(10.3%), 바른미래당 27석, 민주평화당 5석, 민중당 3석, 녹색당 1석이 된다. 서울은 민주당이 58석 중 꼭 절반인 29석, 한국당이 15석, 바른미래당이 7석, 정의당이 6석, 민주평화당이 1석이다. 현행 소선거구제로 치를 때보다 훨씬 의석이 고루 나누어진다. ‘죽은 표’가 없이 실제로 유권자가 투표한 숫자에 따라 의석이 나뉘기 때문이다.

특히 정의당은 서울 6석에 이어 경기에서 8석, 전북과 경남에서 각각 2석을 차지하는 등 약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의석이 7석인 울산, 4석인 제주에서도 각각 1석을 얻는다. 선거법 개정에 정의당이 특히 적극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의석으로 바꾸면서도 확인했지만 정치 구도가 훨씬 안정적이다. 유권자 절반 이상의 권리가 묵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승자가 독식하는 무자비한 다수결을 피할 수 있다. 국회도 대화와 타협과 연대가 불가피해진다. 특히 망국적 병폐인 지역주의를 가라앉힐 수 있다.

민주당은 당장은 현행 제도가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 애를 써온 제도 개혁인가.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언제든 바뀐다. 한국당이 찬성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야말로 절묘한 기회다. 그것도 유권자들이 만들어준 것 아닌가.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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