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동굴 속 영어 통역 소년과 아이들 돌본 코치는 난민이었다

심진용 기자 2018. 7. 1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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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잠수사들과 영어로 소통
ㆍ구조 결정적 역할한 아둘
ㆍ미얀마서 온 ‘무국적자’
ㆍ태국 내 같은 난민 44만명

“너희들 모두 몇 명이니?” “13명이에요.” “훌륭하구나.”

태국 ‘야생 멧돼지’ 유소년 축구팀 13명의 기적 같은 생환 스토리는 이 짧은 대화에서 시작됐다. 조난 열흘 만인 지난 2일 영국인 구조대원 릭 스탠턴과 존 볼랜던이 처음으로 실종된 아이들과 코치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태국어를 할 줄 몰랐다.

축구팀의 14세 아둘 삼온(오른쪽 사진)이 나섰다. 그는 스탠턴과 볼랜던에게 무엇보다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얼마나 오래 갇혔는지도 설명했다. 아둘은 동굴에 갇힌 13명 중 유일하게 영어 회화가 가능한 사람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아둘이 구조작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아둘은 태국 국적이 없다. 미얀마 북동부 ‘와’ 자치주에서 넘어온 난민이기 때문이다. 8년 전 아둘의 부모는 6세 아이를 데리고 태국으로 왔다. 제대로 교육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와 자치주는 미얀마 소수민족 와족이 집단 거주하는 지역이다. 아둘 가족도 와족이다. 이곳은 아편과 헤로인 밀매로 악명이 높다. 제대로 된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다. 소년들은 게릴라 군대에 끌려갈 위험도 작지 않다.

아둘의 부모는 태국 북부 국경지대 치앙라이주 매사이에 자리 잡았다. 지역 침례교회에 아둘을 맡겼다. 목사 부부가 부모 대신 아둘을 교육시켰다. 매사이에서 아둘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아둘이 다니는 매사이 반위앙판학교 교장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학생들 중 20%가 아둘 같은 무국적자”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동굴에 갇힌 13명 중에서도 아둘을 포함해 무국적자가 4명이나 된다.

코치 에카폰 찬타웡(25· 왼쪽)도 미얀마에서 넘어온 무국적자다. 에카폰은 고향마을을 덮친 감염병으로 10세 때 고아가 됐다. 12세 때 불교 사원에 들어가 수도승으로 살다가 3년 전 매사이로 넘어왔다. 병든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그는 축구팀 아이들을 만났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아둘이나 에카폰 같은 태국 내 무국적자가 44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무국적자가 300만명 이상이라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소수민족 탄압을 피해 미얀마에서 넘어온 사람이 많다. 무국적자는 신분증이나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다. 법적으로 결혼을 인정받지 못한다. 은행 계좌도 개설할 수 없다. 투표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아둘이 축구선수로 자란다 해도 태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을 수 없다. 태국 당국은 2024년까지 무국적자들에게 국적을 부여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태국 무국적자 문제에 천착해 온 호주 언론인 짐 폴라드는 현지 일간지 퍼스나우에 이렇게 적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축구팀을 월드컵 결승전에 초대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아둘 같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월드컵 티켓이 아니라 여권과 신분증이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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