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뉴스]'성체 훼손' 논란으로 본 페미니즘과 천주교의 대립

김형규 기자 2018. 7. 1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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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파리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불법촬영(몰카) 범죄 처벌의 성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 여성주의 단체 페멘(FEMEN) 회원들. 페멘 홈페이지

지난 10일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천주교 미사에 쓰이는 성체를 훼손하고 조롱한 게시물이 올라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신성 모독’ ‘종교 모독’ ‘나라 망신’이라는 비판과 함께 경찰 수사와 처벌, 워마드 게시판 폐쇄를 촉구하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줄을 잇고 있습니다.

문제가 된 해당 게시물에서 글쓴이는 “여성 억압하는 종교는 다 꺼지라”면서 “천주교는 지금도 여자는 사제도 못 하게 하고 낙태죄 폐지 절대 안 된다고 여성인권 정책마다 XXX 떠는데 천주교를 존중해줘야 할 이유가 어딨냐”고 주장했습니다.

워마드 게시판에 올라온 훼손된 성체 사진

논란이 불거진 11일에도 워마드 게시판에는 “빵쪼가리 좀 구워먹은 게 뭘 그리 큰일이냐” “과자 태운 게 국가적 망신이면 신부가 성폭력 저지른 건 뭐라고 해야 되냐” “(혜화역) 4차 시위는 빵 하나씩 들고 가는 거 어떠냐” 등 비슷한 내용의 글이 여럿 올라왔습니다. “천주교는 아직도 낙태 반대하면서 여자는 애 낳는 가축 취급 공공연히 해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해받는 여혐(여성혐오) 집단 아니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천주교랑 전면전이다”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천주교 VS 페미니즘

국내에서 천주교와 여성계의 대립이 가시화된 적은 많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에서 보듯 각종 사회 이슈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할 때가 많았고, 개신교에 비해 성폭력 추문 같은 부정적 이미지도 덜한 편입니다.

하지만 외국은 사정이 다릅니다. 특히 천주교의 보수 성향이 두드러지는 서구 유럽에서 여성주의 단체들은 오랜 세월 종교 교리에 기반한 여성 차별과 싸워왔습니다. 성공회나 루터교 등 일부 개신교 종파가 여성을 성직자로 임명하는 것과 달리 천주교는 아직도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고, 핵심적인 여성인권 이슈인 낙태에 대해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완고한 반대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현 프란치스코 교황(82)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여성 사제 탄생이 영원히 불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낙태 합법화에 대해서도 전임 교황들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지난달에는 바티칸에서 열린 이탈리아 가정협의회 모임에 참석해 “낙태는 ‘나치 시대의 우생학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성 극단주의’ 페멘의 종교 비판

페멘의 리더 인나 셰브첸코(왼쪽)와 여성의 가슴을 뜻하는 페멘의 심볼이 그려진 티셔츠(오른쪽).

이처럼 여성 이슈에 보수적인 천주교를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단체 중 하나가 바로 페멘(FEMEN)입니다. 2008년 우크라이나에서 결성된 급진적 여성주의 단체 페멘은 토플리스(Topless) 차림의 반라시위로 유명합니다. 이들은 벗은 몸에 구호를 적고 공개된 장소에서 시위를 벌입니다. “우리가 옷을 벗는 것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여성 자유의 상징”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페멘은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가 성적 착취(섹스 산업)와 정치적 독재, 그리고 종교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특히 종교는 모든 개인의 내밀한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여성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의 성기에 신은 없다” “우리의 신은 여성이다” 같은, 일견 과격해보이는 구호도 그래서 나왔습니다.

예수가 매달린 나무십자가를 전기톱으로 잘라버린 페멘의 리더 인나 셰브첸코. 이 일로 그는 나고 자란 우크라이나를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다. 페멘 홈페이지

페멘의 리더인 인나 셰브첸코(Inna Shevchenko·28)는 2012년 8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한 광장에 서 있는 8m 높이의 우크라이나정교회 나무십자가 예수상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이는 그해 2월 모스크바의 러시아정교회 성당에 난입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공연을 했다가 징역형을 받은 여성주의 펑크록 그룹 ‘푸시 라이엇’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체포령이 떨어진 셰브첸코는 프랑스로 피신했고 이듬해 정식으로 난민 지위를 얻어 정착했습니다.

■“신은 여성이다” “낙태야말로 신성한 것”

페멘 활동가들이 동성애 혐오발언을 한 벨기에 대주교에게 물을 뿌리며 항의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근거지를 프랑스로 옮긴 페멘은 유럽 전역에서 여성과 성소수자에 억압적인 교리를 유지하는 천주교와 충동했습니다.

2013년 4월 벨기에 브뤼셀에선 페멘 활동가 4명이 한 대학 토론회에 참석한 앙드레 조제프 레오나르 대주교에게 물을 끼얹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벨기에 천주교의 수장인 그가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시위에 참가한 한 활동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주교의 동성애 혐오 발언 외에도 그의 낙태에 대한 입장 역시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쾰른 대성당에서 열린 성탄미사에 난입한 페멘 활동가를 교회 관계자들이 제지하고 있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엔 독일 쾰른 대성당의 성탄 미사가 페멘의 시위로 중단됐습니다. 맨 앞줄에 앉아있던 페멘 회원은 갑자기 제단에 올라가 입고 있던 가죽 재킷을 벗었고, 그의 가슴엔 “내가 신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회원은 “쾰른 대성당이 독일 천주교의 본산으로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곳이라 그랬다”고 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미사에 참석하는 추기경 앞을 막고 “낙태는 신성하다”고 외치는 페멘 회원들. 유튜브 화면 캡처

2014년 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선 페멘 활동가 5명이 미사에 참석하는 추기경을 기습했습니다. 스페인 정부가 추진한 낙태 제한법에 찬성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토플리스 차림으로 차에서 내리는 추기경 앞에 나타난 활동가들은 피묻은 팬티를 주교에게 던지며 “낙태는 신성하다”고 외쳤습니다.

그해 크리스마스엔 페멘이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 나타났습니다. 교황의 성탄 메시지를 듣기 위해 모인 구름 같은 인파 앞에서 페멘 활동가는 벗은 가슴을 드러낸 채 “신은 여성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손엔 아기 예수 모형이 들려있었습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에서 상반신을 노출한 채 “신은 여성이다”라고 가슴에 쓴 구호를 외치는 페멘 활동가를 바티칸 경찰이 체포하고 있다. 이 활동가는 이틀간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AP연합뉴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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