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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175억 '웃는 남자'…눈은 황홀한데 눈물은 언제(종합)

송고시간2018-07-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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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무대·의상 인상적…단선적 메시지는 '티'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국내 창작 초연으로 175억원의 제작비와 5년의 제작기간을 들인 뮤지컬 '웃는 남자'가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베일을 벗었다.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엄홍현 대표의 말은 허언이 아닌 듯했다. '마타하리'로 창작 역량을 쌓은 EMK뮤지컬컴퍼니의 두 번째 대형 창작 도전으로,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이다.

장면마다 빠르게 회전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무대, 독창적인 세트와 의상, 귀에 척척 감기는 아름다운 멜로디, 뮤지컬 스타들의 집결 등 대형 뮤지컬에서 기대할 수 있는 미덕은 거의 모두 챙겼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난 이보다 뛰어난 소설을 쓴 적이 없다"고 말한 동명 원작(1869)을 바탕으로 한다. 어린 시절 인신매매단으로부터 야만적인 수술을 당한 뒤 평생 웃을 수밖에 없는 얼굴을 갖게 된 남자 '그윈플렌'이 주인공이다. 꼽추 '콰지모도'와 함께 지속적으로 회자하는 기형 캐릭터이자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 '조커'의 모티브다.

입의 양쪽 가장자리가 찢어진 기괴한 외모의 그윈플렌과 앞을 보지 못하는 여주인공 '데아'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 17세기 영국 지배층의 탐욕과 그로부터 고통받는 하층민의 삶이 극의 두 축을 이룬다.

그윈플렌은 기이한 미소로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광대로 활약하다가 그의 공연을 본 앤 여왕의 이복동생 조시아나 공작부인의 유혹과 악명 높은 고문소 '눈물의 성'에서 밝혀진 출생의 비밀 등으로 귀족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극은 화려한 볼거리로 객석을 빠르게 사로잡는다. 막이 오르면 아이들을 기형으로 만들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어린 그윈플렌을 항구에 버리고 폭풍우 치는 바다 위를 표류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검은 파도가 일렁이던 무대는 눈 깜짝할 사이 눈보라가 쏟아지는 산기슭으로, 온갖 기이한 단원들이 총출동하는 유랑극단 무대로, 배우들이 실제 물방울을 튀기며 춤추는 낭만적인 강가로 변신한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귀족들의 사회도 화려하게 그려진다. 비현실적인 화사함과 비인간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귀족들의 가든 파티장부터 호화스러움의 끝판왕 격인 궁전 침실, 곡선으로 설계돼 독특함이 배가된 상원의원들의 회의장 등까지 무대는 끊임없이 변신한다.

이런 대조적인 무대를 통해 상처와 결핍을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는 하층민들의 삶과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귀족들의 삶도 확연하게 대비됐다. 극 후반부 진짜 '기형'으로 사는 괴물은 누구인지를 묻는 그윈플렌의 외침이 객석을 파고든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은 이번에도 대중적이면서 서정적인 선율로 극의 아름다움을 더했다. '캔 잇 비', '나무 위의 천사', '자장가' 등은 와일드혼 특유의 낭만성이 잘 드러나는 넘버(곡)들로 꼽힐 만하다.

국내 정상급 배우들의 화려한 앙상블을 감상하는 맛도 쏠쏠하다. 개막 무대에는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박효신이 그윈플렌으로 출연해 커튼콜 때 비명에 가까운 환호를 받았다. 이 밖에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따뜻함을 품은 우르수스 역의 양준모, 부유하고 매혹적인 조시아나 역의 신영숙 등이 시원한 가창력을 선보였다. 순백의 이미지를 지닌 데아 역의 이수빈도 청아하고 여린 음색이 매력적이었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다만 극의 메시지가 선악, 빈부, 지배·피지배 등 단선적이다 보니 다소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린 상위 1%", "행복할 권리" 등을 외치는 가사 내용도 너무 직설적이라 위고 원작의 풍부한 사유를 반감시켰다.

그윈플렌도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하는' 이 시대의 숱한 그윈플렌으로 확장되지 못한 듯하다.

이 때문에 "관객들이 펑펑 울게 될 것"이란 연출자의 호언장담과 달리 객석은 그리 눈물바다 모습은 아녔다.

공연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한국 창작뮤지컬이 이 정도 수준의 무대를 구현해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무대만큼은 월드 클래스"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초연인 만큼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다듬고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보니 오히려 주인공과 주제가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부자와 빈자의 대립을 핵심 주제로 삼는 이 작품에 사상 초유의 제작비 175억원이 들었다는 것도 뒷맛이 깔깔한 아이러니다.

한편, 엄 대표는 이날 공연이 끝난 뒤 무대에 올라 "브로드웨이든 웨스트엔드든 세계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며 "외국에 나가서 한국 깃발을 꼭 꽂고 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요한슨 연출은 "엄 대표가 바로 그윈플렌"이라며 "고아였던 그는 8천원을 들고 성공적인 뮤지컬 회사를 차리겠다는 꿈 하나만을 안고 상경했고, 그 꿈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무대를 만들 수 있었다"며 벅찬 감동을 표현했다.

엄 대표는 끝내 무대 위에서 눈물을 보였다.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뮤지컬 '웃는 남자' 공연 모습 [EMK 제공]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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