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 없는데 2:8?..억울한 차사고 쌍방과실 판정 줄인다

정용환 입력 2018. 7. 11. 12:00 수정 2018. 7. 1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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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뒤에서 들이받지 않는 이상 도로 위에서 일방과실은 없다.”

교통사고와 관련된 오래된 통념이다. 가해자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도 20:80 등 쌍방과실 판정이 나와 억울해했던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 통념이 서서히 바뀔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현행 자동차사고 과실 비율 산정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키로 했다. 통념상 한쪽에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 대해 일방과실을 인정하는 범위가 더 넓어진다.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ㆍ손해보험협회는 11일 자동차사고 시 피해자가 예측하거나 회피하기 어려운 경우에 대해 가해자 일방과실(100:0)을 적용하는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과실비율은 자동차사고 원인 및 손해에 대한 사고 운전자들의 책임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험사가 손해보험협회의 ‘과실비율 인정기준’에 따라 책정한다.

교통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도로 상황 [중앙포토]
그동안 과실비율 인정기준은 상식과 거리가 멀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리적인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바람에 사실상 한 쪽 과실이 명백한 경우에 대해서도 쌍방과실로 결론 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소비자 사이에선 “보험사가 보험료 할증을 통해 수입을 늘리기 위해 일방과실 사고도 쌍방과실로 처리하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인식이 퍼졌다.

교차로에서 직진차로에 있던 차량이 갑자기 좌회전하는 바람에 좌측 직진차로 차량과 추돌하는 사고나 뒤따라오던 차량이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다가 앞 차량과 추돌하는 사고 등이 대표적인 예다. 피해차량 운전자가 사고를 인지하거나 피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인데도 보험사는 피해자에게 20%~30%의 과실 책임이 있다고 통보해왔다.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ㆍ손해보험협회는 11일 자동차 사고 시 피해자가 예측하거나 회피하기 어려운 경우에 대해 가해자 일방과실(100:0) 적용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사진 금융감독원]
금융당국은 앞으로 이와 같은 사고에 대해 가해 차량 일방과실을 적용하기로 했다. 운전자들이 통상적으로 직진차로에서 좌회전할 것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 뒤따라오는 차량의 움직임을 미리 알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과실비율 인정에 반영하기로 했다. 다만 피해자 차량이 진로양보 의무를 위반해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엔 일부 피해자 과실도 인정한다.

금융당국은 또 최근의 달라진 교통 환경과 법원 판례를 참고해 새로운 과실비율 도표를 추가하기로 했다. 자전거 전용도로나 회전교차로에서의 자동차사고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은 자동차가 진로변경 중 자전거 전용도로 위에서 자전거와 추돌사고를 낼 경우 자전거에도 10%의 과실비율을 부여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자동차 일방과실로 처리된다. 회전교차로 진입 과정에서의 사고 시 과실비율도 ‘진입 차량 60%, 회전 차량 40%’에서 ‘진입 차량 80%, 회전 차량 20%’로 바뀐다.

금융당국은 소비자들이 이런 과실비율 인정기준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자문위원회를 신설하고 과실비율 인정기준을 심의케 한다는 방침이다. 자문위원회에는 법조계, 학계, 언론계,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한다.

금융당국은 또 손해보험협회 내 과실비율 분쟁 조정기구를 새로 마련해 과실비율에 불복하는 모든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분쟁에 나설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현재 손해보험협회에 설치된 ‘구상금분쟁심의위원회’는 같은 보험사 가입 차량 사이에서 발생한 사고나 50만원 미만의 소액 사고 등을 조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래서 이 경우 소비자들이 과실비율에 문제를 제기하려면 소송 말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지난해 발생한 같은 보험사 가입 차량 간 사고는 약 5만6000건이었다.

조한선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 팀장은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과실비율 인정기준 개정해 사고 원인자에 대한 책임성을 보다 강화하고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을 줄여나갈 것"이라며 "앞으론 모든 자동차 간 교통사고에 대해 과실비율 분쟁조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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