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업 종사자들 "반인권 트럼프 정부에 기술 주지 말자"

최희진 기자 2018. 7. 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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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이윤보다 ‘윤리 강조’ 바람
ㆍ아마존·MS 직원들, 이민관세수사청 업무 협약 비판
ㆍ애플·구글 등은 CEO도 앞장서 ‘무관용 정책’ 유감 표명
ㆍ트럼프 애용 ‘트위터’ 행보, 업계 윤리 의식 가늠자 주목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은 양날의 칼과 같다. 누가 어떤 의도로 기술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류와 사회에 이로울 수도 해로울 수도 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기술 개발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자사와 정부 간 업무 계약에 반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술이 악용되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윤리의식이 이들을 집단행동으로 이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IT 종사자들이 모든 사안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며 비판적 목소리를 낼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애용하는 소셜미디어 트위터의 경우 대통령이 선사한 마케팅 효과에 취해 건전한 공론 형성장으로서의 역할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미국 사회의 분열이 깊어지면서 IT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을 더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분열에 편승해 이윤을 추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 “윤리적 태도를 취하라”

IT 기업 직원들이 들고일어난 최근 사례는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다. 아마존 직원들은 자사의 얼굴 인식 기술인 ‘레코그니션’이 인권침해 여지가 있다며 정부 기관에 레코그니션을 판매하지 말 것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아마존이 2016년 공개한 레코그니션은 범죄 용의자의 사진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사진과 비교해 동일 인물 여부를 파악하는 기술이다. 플로리다주 올랜도 경찰과 오리건주 워싱턴카운티 보안관이 아마존과 계약하고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직원들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우리는 인권을 침해하는 도구에 이바지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아마존인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개발할지에 대한 선택권과 그것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발언권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아마존이 데이터 업체 팔란티어에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판매한 것도 비판했다. 팔란티어는 국토안보부 산하 이민관세수사청(ICE)과 협업하는 기업이다. ICE는 트럼프 정부의 무관용 이민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미국에 불법 입국한 부모와 미성년 자녀 2000여명을 격리 수용하며 비난을 샀다.

소프트웨어 업체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도 자사와 ICE 간 업무 협약을 겨냥해 ‘반란’ 대열에 동참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CE와 데이터 처리 및 인공지능(AI) 기술 제공에 관한 1940만달러(약 216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직원 100여명은 지난달 19일 CEO 사티아 나델라에게 보낸 공개 서한에서 가족 격리 정책을 “비인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윤리적 태도를 취해야 하며 어린이와 가족을 이윤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 사회적 책임에 민감한 IT업계

미국 IT업계가 사회적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게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특히 명망 있는 CEO들은 특정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는 압력을 조직 안팎에서 받거나, 앞장서서 스스로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트럼프 정부의 불법 이주자 가족 격리가 논란이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플 CEO 팀 쿡은 지난달 19일 아이리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정부의 무관용 이민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밝혔다.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트위터에 “국경 앞에서 헤어지는 가족의 사연과 사진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며 “정부가 미국의 가치를 반영하는 더 인간적인 방법을 찾아내기를 촉구한다”고 썼다. 시스코 CEO 척 로빈스도 트위터에서 “자녀를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잔인한 정책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애플·페이스북 직원들은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려 ‘CEO가 이민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자발적 모금 운동을 벌여 불법 이주자를 돕는 시민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직원들이 벌인 모금 운동에 기꺼이 기부금을 쾌척했다.

사회적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라는 직원들의 항의를 수용해 정부와의 계약 갱신을 포기한 기업도 있다. 지난 5월 말 구글은 국방부와 공동 진행 중인 ‘프로젝트 메이븐’의 계약기간이 내년에 종료돼도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직원들에게 밝혔다. 지난 4월 직원 4000여명이 “우리는 구글이 전쟁 비즈니스에 뛰어들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며 집단행동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메이븐은 맞춤형 AI 감시 엔진으로, 드론이 포착한 동작 형상화 데이터를 분석해 물체를 식별하는 기술이다. 직원들은 이 기술이 군의 정밀 타격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의심한다. 군이 메이븐을 활용해 테러 용의자나 테러 관련 시설을 식별한 뒤 미사일 버튼을 누를 것이라는 얘기다. 몇몇 직원들이 계약 파기를 촉구하며 사표를 냈을 정도로 반발이 거셌다. 프로젝트 메이븐을 담당했던 다이앤 그린 구글 클라우드 대표는 “메이븐은 구글엔 끔찍한 사업이었다”며 직원들이 반대한다면 메이븐을 재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 일관성 기대하긴 일러

IT업계가 입바른 소리를 잘해왔지만 자사의 이익과 무관할 때나, 핵심 이익이 침해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때도 행동에 나설지는 알 수 없다. IT업계가 이민 정책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종사자 상당수가 이민 1세대거나 이민자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구글이 프로젝트 메이븐을 ‘통 크게’ 포기하기로 한 것도 계약 규모가 작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구글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18개월간 900만달러(약 100억원) 또는 1500만달러(약 167억원)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구글 매출은 1100억달러(약 122조4000억원)였다.

특히 트위터의 행보는 IT업계의 윤리의식 수준을 가늠할 잣대로 여겨진다. 트위터는 시민들의 소통 플랫폼으로 기능하면서 세계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아랍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 흑인 인권 운동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성범죄 고발 운동 ‘미투’ 등이 트위터 안에서 해시태그를 달고 확산됐다. 트위터 CEO 잭 도시도 진보적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야당과 언론 등을 부당하게 공격하고 지지자들이 이에 호응하면서 트위터는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와 인종차별, 허위정보를 확대재생산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트위터가 현실 세계에 피해를 일으키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일례로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을 내쫓았던 식당 ‘레드 헨’은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 트윗 이후 공화당 지지자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지역의 레드 헨 식당도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트위터는 혐오 발언 트윗을 삭제하거나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등의 자정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페이스북으로 떠났던 사용자들이 트위터로 돌아오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트위터가 주로 백인을 채용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2015년 사표를 쓴 엔지니어 레슬리 마일리는 뉴욕타임스에 “트위터는 정기적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플랫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언젠가 트위터는 자신들이 유익한 일보다 해로운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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