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녀> 메인 포스터

영화 <마녀> 메인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한 시설에서 수많은 이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여기서 기적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주인공은 10년 동안 신분을 숨기고 산다. 그러다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면서 주인공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지난 6월 27일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 <마녀>의 이야기 전개다. 이런 이야기 전개는 익숙하다. 비슷한 영화 몇 편이 떠오른다. 그러나 <마녀>는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새롭다.

우선 '자윤' 역을 맡은 김다미의 연기는 놀랍다. 다미는 절친 명희(고민시)와 오디션을 보기 위해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다. 명희는 기차여행을 위해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챙겨 놓는다.

'삶은 계란'과 '사이다', 참으로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자윤·명희 또래의 자녀를 둔 세대에게 이 장면은 아련한 향수를 자아낼 만 하다. 또 자윤이 계란을 '흡입'하는 장면은 귀엽기만 하다. 이 장면은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토록 귀여웠던 자윤은 과거의 기억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냉혹한 살인자로 돌변한다.

김다미는 귀여움에서 냉혹함을 오가는 극단의 감정 연기를 소화해 낸다. 선악을 동시에 연기해 낸 배우는 흔치 않다. 할리우드에서 사례를 찾아도,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 오프>에서 미 연방수사국(FBI) 숀 아처 요원으로 분한 존 트라볼타 정도다. <마녀>가 두 번째 출연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김다미의 연기는 뛰어나다. 닥터 백 역으로 등장한 조민수의 연기도 이색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액션신 역시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시설에서 자윤과 귀공자(최우식)가 벌이는 액션은 흡사 <매트릭스>를 방불케 한다. 한편 영화는 첫 장면부터 유혈이 낭자한데, 이 대목은 박훈정 감독의 2013년작 <신세계>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액션에서 만큼은 원빈 주연의 2010년작 <아저씨>와 함께 한국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히트맨> <로건> 그리고 <마녀>

 <마녀>에서 구자윤 역을 맡은 김다미는 귀여움과 냉혹함 양 극단을 오간다.

<마녀>에서 구자윤 역을 맡은 김다미는 귀여움과 냉혹함 양 극단을 오간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실 영화의 전반적인 뼈대 자체가 그다지 새롭지 않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어린 아이를 뛰어난 지성과 함께 엄청난 살상 능력을 갖춘 인간병기로 키운다는 설정은 할리우드 영화 <히트맨: 에이전트47>이나 휴 잭맨이 마지막으로 울버린 역을 맡은 <로건>과 유사하다. <히트맨: 에이전트47>의 주인공 에이전트47이나 <로건>에 등장하는 X-23 모두 유전공학을 통해 탄생한 캐릭터다.

박훈정 감독은 이미 전작 <신세계>에서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와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디파티드>의 속 한 장면을 녹여낸 적이 있었다. 영화 초반 골드문 석동철 회장의 장례식 장면은 <대부>를, 이중구가 고층 건물에서 떨어져 최후를 맞는 장면은 <디파티드>를 차용했다.

<마녀> 역시 여러 할리우드 영화가 뒤범벅이 돼 있다. 그럼에도 전혀 식상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 정서가 잘 스며 있다는 느낌이다. 시골 사춘기 소녀들이 서울 가는 열차 안에서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맛나게 먹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다만, 욕설이 난무하는 점은 아쉽다. 자윤의 절친인 명희가 쉴새없이 내뱉는 욕은 차지다. 그러나 액션장면에서 나오는 미스터최나 귀공자의 욕설은 불필요해 보인다. 액션영화라고 해서 등장인물들이 반드시 욕설을 해야 한다는 공식은 없다. 할리우드에서도 'F'로 시작하는 욕설 한 마디 없이 품격 있는 대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액션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샘 멘데즈 감독이 연출하고 대배우 폴 뉴먼, 톰 행크스가 출연한 2002년작 <로드 투 퍼디션>은 훌륭한 참고사례라고 본다.

영화 <마녀>는 장면 곳곳에 속편을 암시하는 '떡밥'을 던져 놓는다. 마지막 장면 역시 속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할리우드 슈퍼 히어로들은 '강력한 힘'에 따르는 '막중한 책임' 사이에서 고뇌한다. 더없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윤 역시 비슷한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마녀>는 개봉 2주 차인 지난 주말(7월 7~8일) 관객수 35만2223명(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하며 마블의 <앤트맨과 와스프>에 이어 흥행 2위에 올랐다.

마녀 김다미 로건 히트맨 박훈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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