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팬들은 고척돔 외야를 쉴 새 없이 넘기는 홈런 쇼를 넥센 히어로즈에 기대했다. 비록 기대했던 만큼 홈런포가 터지진 않고 있지만, 그래도 넥센은 리그 상위권의 공격력을 발휘하며 5위로 포스트시즌 도전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 비결 가운데 하나는, 바로 ‘발야구’에 있다.

올 시즌 넥센표 발야구를 이끄는 김혜성(사진=엠스플뉴스)
올 시즌 넥센표 발야구를 이끄는 김혜성(사진=엠스플뉴스)

[엠스플뉴스]

박병호는 넥센 히어로즈 야구를 상징하는 가장 완벽한 캐릭터다. 떡 벌어진 어깨와 터질 듯한 이두, 허벅지 근육은 당장 번호표를 달고 머슬마니아 대회에 나가도 될 만큼 완벽하다. 여기에 항상 차분하고 친절하며 겸손한 성품, 무엇보다 이쑤시개를 휘두르듯 가볍게 스윙해도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 파워까지 한 몸에 지녔다.

마이클 초이스는 또 어떤가. 손으로 누르면 트램펄린처럼 튕겨 나올 듯한 근육에 마치 CG로 구현한 것처럼 보이는 말도 안 되는 타구를 날리는 게 초이스다. 초이스도 이를 잘 안다. 스프링캠프 기간 영화 ‘어벤져스’ 얘길 꺼냈을 때 초이스는 “박병호는 캡틴 아메리카, 나는 헐크”라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는 호크아이는 누굴지 궁금하다.

무시무시한 벌크업 근육질 파워 영웅들이 펼치는 홈런 쇼는 창단 이후 꽤 오랜 기간 ‘넥센 야구’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그랬다. 박병호의 한국 복귀와 초이스의 2년 차 시즌, 김하성과 장영석 등 기존 홈런 타자들이 함께 펼칠 ‘넥벤져스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지난해 팀 홈런 1위 SK 와이번스와 치열한 홈런 대결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올스타 브레이크를 앞둔 현재(7월 9일)까지만 놓고 보면, 넥벤져스 히어로들의 활약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넥센의 팀 홈런은 93개로 SK(143개)는커녕 두산(105개, 4위)과 KIA(98개, 5위)에도 미치지 못하는 6위다. 예고편 보고 극장을 찾았다가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보고 나온 듯한 기분이다.

부상과 부진이 문제다. 박병호는 예기치 않은 종아리 부상으로 장기 결장했다. 스스로 ‘슬로스타터’라 주장하는 초이스는 지난해 한국 무대에 합류했던(7월 29일 데뷔전) 시기에 맞춰 활약을 시작할 기세다. 김하성도 ‘화분 부상’으로 한동안 결장했고 아직 홈런 11개에 그치는 중이다. 장영석의 홈런 생산(6개)도 아직은 아쉽다. 어머니...

놀라운 건 이런 가운데서도 넥센이 5할대 승률(0.506)을 유지하며 리그 5위로 선전하고 있단 점이다. 팀 득점도 473점으로 리그 4위다. 마치 호크아이와 콜슨 요원이 지구를 지키는 듯한 이런 결과의 비결은 ‘발야구’다. 지난 시즌 리그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던 넥센의 발야구가 올 시즌 다시 활기를 띠면서 나온 결과다.

'도루 성공은 많고, 실패는 적고’ 효율적인 넥센 발야구

김규민 등 발빠른 선수들의 1군 합류는 넥센 발야구가 다시 탄력을 받는 원동력이다(사진=엠스플뉴스)
김규민 등 발빠른 선수들의 1군 합류는 넥센 발야구가 다시 탄력을 받는 원동력이다(사진=엠스플뉴스)

총 61개. 올 시즌 현재까지 넥센이 기록 중인 팀 도루 숫자다. 한화(76개)에 이은 리그 2위에다 성공률도 75.3%로 두산(79.4%)에 이은 2위다. 시즌 내내 70도루(7위)에 성공률 67.3%(6위)에 그친 지난해와 비교하면 월등히 뛰어난 기록이다.

지난 시즌 넥센은 도루시도율 4.8%(8위)로 기회가 와도 거의 도루를 시도하지 않았다. 반면 올해는 도루 시도 자체가 많이 늘어난 데다(6.1%) 성공률도 높다. 상대 입장에선 언제든 홈런이 나올 수 있다는 긴장감에 언제든 뛸 수 있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진 셈이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벤치에선 내는 사인은 주로 뛰면 안 되는 상황에 나옵니다.” 넥센 장정석 감독의 말이다. “그 외엔 선수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뛸 때도 있고, 조재영 주루코치와 호흡을 맞춰서 뛰기도 합니다.”

넥센은 2년 전인 2016시즌에도 팀 154개(1위)를 기록하며 적극적인 뛰는 야구를 시도한 바 있다. 당시 넥센의 도루시도율은 10.6%에 달했다. 하지만 많이 뛰는 만큼 실패도 많았다. 도루실패 총 83회. 도루성공률은 65%로 리그 7위에 불과했다.

벤치 사인에 의한 도루 시도가 많았기 때문이다. 도루는 0.01초의 순간이 성패를 가른다. 마치 육상선수가 신호와 동시에 출발하듯, 순간적으로 투수의 투구폼을 뺏어서 반사적으로 스타트를 끊어야 살 확률이 높다.

사인에 의한 도루는 이 과정에 부자연스러운 제약을 가한다. 팀에 꼭 필요한 상황에 뛴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만큼 죽을 확률도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젠 선수들이 뛰어야 할 순간에 주저없이 뛸 수 있게 됐다. 임병욱은 15차례 도루를 시도해 14번 성공했다. 성공률은 93.3%에 달한다. 김혜성도 17번 도루 시도 가운데 15번 성공해 88.2%의 성공률을 자랑한다.

“제 도루 성공률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넥센 팀 내 도루 1위 임병욱의 말이다. “1루에 나가면 조재영 코치님과 서로 눈짓으로 신호를 교환합니다. 제가 판단해 뛸 때도 있지만, 코치님과 손발을 맞춰 뛰기도 해요.”

도루는 양과 질이 모두 중요한 영역이다. 아무리 도루가 많아도 성공률이 낮으면 팀 승리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모한 도루 시도는 오히려 팀이 이기는 데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도루 성공은 많고 실패는 적은 넥센의 발야구가 성공적인 이유다.

김규민, 김혜성, 임병욱 등 젊은 선수들이 대거 1군에 올라오면서 뛸 수 있는 선수가 많아졌습니다. 하나같이 젊고 기동력이 좋잖아요. 전 복 받은 주루코치입니다. 조재영 코치의 말이다.

‘팀 주루지표 1위’ 넥센, 겨우내 준비한 발야구 성과

스프링캠프 기간 주루 훈련을 진행하는 넥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스프링캠프 기간 주루 훈련을 진행하는 넥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표 발야구의 무기는 도루 하나만이 아니다. 한 베이스 더 가는 공격적 주루플레이도 넥센이 자랑하는 무기다. 올 시즌 넥센은 주루를 통한 평균 대비 득점 생산(RAA 주루) 지표 6.12로 10개 팀 가운데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4.06으로 7위에서 한 시즌 만에 1위로 올라섰다.

지난해만 해도 넥센 경기에선 거침없이 뛰던 주자가 홈에서 아웃당한 뒤 땅을 치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올해는 홈에서 죽는 장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1루까지 갈 타구에 2루를 가고, 땅볼 타구에 다음 베이스로 내달리고, 플라이 타구에 3루까지 뛰는 장면이 많아졌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아쉬움이 정말 컸습니다.” 조재영 코치의 말이다. “제가 많이 부족했죠. 2017시즌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동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보면서 문제점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선수들에게도 제가 느낀 아쉬움을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올 시즌을 준비하려고 했어요.”

지도자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 코치는 지난해 처음 프로 1군 코치로 활동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지만 ‘경험’이란 빈 공간을 채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첫 시즌 몇 차례 시행착오도 있었고, 팬들의 쏟아지는 질타에 스트레스도 컸다.

중요한 건 조 코치가 지난 시즌 실패를 바탕으로 올 시즌을 더욱 치열하게 준비했다는 점이다. 미국 애리조나 캠프 기간 매일 많은 시간을 할애해 선수들과 이야길 나누고, 열심히 준비하는 조 코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시즌을 치르고 나니 이제 조금은 선수들이 보이더라구요.” 조 코치가 올 시즌 초에 들려준 얘기다. 조 코치는 선수들과 터놓고 얘기하면서 선수 개개인의 특징과 성향을 머리 속에 담았다.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준비한 게 많습니다. 올 시즌 보여드릴 기회가 있을 거에요. 기대해도 좋습니다.”

겨우내 준비한 결과는 시즌 들어 눈에 띄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넥센은 리그에서 가장 주루사가 적은 팀 가운데 하나이면서(총 주루사 26회, 최소 3위) 동시에 가장 공격적인 주루를 펼치는 팀이다.

넥센의 추가진루 확률은 43%로 NC(43.8%)에 이은 2위. 총 추가진루 횟수로 326회로 전체 3위다. 땅볼아웃 때는 30.2%의 비율로 1루 주자가 2루까지 내달렸고, 뜬공아웃 때도 36.5%의 확률로 2루주자가 3루까지 향했다. 단타에 2루주자가 홈에 들어온 확률(65.8%)과 2루타에 1루주자가 홈까지 들어온 확률(41.7%)도 아주 높았다.

“선수들은 초원에 나온 야생마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조 코치의 말이다. “가두려 하고 억제하려고 하면 안 되더라구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코치가 지고, 선수들이 과감하고 자신 있게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죠.”

조 코치는 “시즌이 시작된 뒤 잠을 제대로 잔 날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매일 비디오 분석을 하느라 새벽이 돼서야 잠이 듭니다. 그래도 이제는 선수들과 마음이 하나가 된 것 같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서고 있습니다.”

넥센 조재영 주루코치는 지난 시즌 시행착오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 조재영 주루코치는 지난 시즌 시행착오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넥센은 고척스카이돔 이전 첫 시즌인 2016년에도 주루지표 1위를 기록했다(RAA주루 20.88). 박병호, 유한준 등이 한꺼번에 팀을 떠나면서 생긴 홈런 공백을 주루플레이로 채웠다. 목동보다 넓은 고척스카이돔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야구를 펼쳐, 모두의 예상을 깨고 포스트시즌 진출의 쾌거를 이뤘던 넥센이다.

올 시즌에도 기대했던 ‘넥벤져스’는 아직 터지지 않고 있지만, 넥센은 활발한 발야구를 앞세워 홈런의 빈 자리를 효과적으로 채우는 중이다. 박병호도 없고 유한준도 없던 2016년과는 달리 이번엔 언제든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들도 건재하다. 만약 리그 1위 기동력에 더해, 홈런까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한다면? 후반기 넥센의 공격력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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