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뉴스+] "길 가는 남성 '죽으라'는데 혐오 아니라니.."

김주영 입력 2018.07.09. 07:07 수정 2018.07.0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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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편파수사 3차 규탄 시위' 가 보니
붉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3차 규탄 시위’에 참가해 ‘여성유죄 남성무죄 성차별 수사를 중단하라!’ 등이 적힌 피켓들을 높이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야, 뭘 봐. 보지 마, 보지 말라고!” “보지 마, 보지 마!”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 앞 도로. 붉은 옷을 입고 선글라스와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여성 군중이 지나가는 남성들을 향해 이 같이 외쳤다. 이어 “재기해(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에 빗대 ‘자살하라’는 뜻의 여성 커뮤니티 은어), 재기해!”란 구호가 울려퍼졌다. 이날 혜화역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의 한 단면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카페 ‘불편한 용기’가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몰래카메라(몰카) 사건’의 여성 피의자가 구속된 것을 계기로 주최한 편파수사 규탄 시위는 지난 5월19일과 6월9일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1∼3차에서 주최측 추산 각각 1만 2000명, 2만2000명, 6만명(경찰 추산 1만8000명)이 모여 여성 단일 의제로는 역대 최대 규모 집회로 자리잡았다.

‘안전’ ‘스태프(STAFF)’ 등이 적힌 티를 입은 여성들이 도로 양 가변과 부스 등을 왔다갔다 하는 동안 집회 참가자들은 도로 한가운데 모여 앉아 연신 “남성무죄 여성유죄” “성차별 수사 중단하라”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등의 구호를 연호했다. 2차 시위에 이어 이번에도 집회 중간에 몇몇 여성이 무대 차량 위로 올라가 삭발을 하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3차 규탄 시위’가 열린 지난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여성들이 선글라스와 마스크,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지금 찍어? 마!! 그것도 불법촬영’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집회 취지 흐리는 ‘남혐’ 표현 끊이지 않아

집회는 한국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 수사당국을 향한 불신 등을 어느 정도 공론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일각에서 남성 혐오 표현이 꾸준히 등장하고, 곳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위나 발언 등이 이어지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주최 측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혐오 표현이 나올 때마다 설명을 덧붙이는 모습이었다.

대표적인 표현이 “재기해”다. 이날도 이따금 튀어나온 이 표현은 “문재인 대통령도 재기하기 바란다”는 말처럼 쓰이면서 도마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경찰의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 사건’ 수사가 “편파수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은 데 대한 반발 심리에서 비롯한 문장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시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청와대 세종실에서 2018년도 제29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경찰의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몰래카메라 사건’ 수사가 성 편파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시스
주최 측은 “재기해는 사전적 의미의 ‘제기해’로, 문제를 제기한다는 뜻”이라고 부연했으나 문 대통령을 빗댄 퍼포먼스가 주최 측 설명과 배치됐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잃고 있다. 한 여성이 ‘페미대통령’이라고 쓰인 띠지를 두른 채 ‘곰’(‘문’을 180도 뒤집은 것)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무릎을 꿇고 앉은 이 퍼포먼스는 ‘재기해’란 표현을 상징한다.

집회에서 나온 남녀 경찰 성비를 1대 9로 맞춰야 하고, 경찰청장과 검찰총장을 모두 여성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사고 있다. ‘자이스(남성 성기와 잘했다는 뜻의 ‘나이스’를 합친 말·주최 측은 ‘자매들 나이스’의 준말이라고 설명)’나 ‘자이루(〃‘하이루’〃)’, ‘한남충(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하는 단어)’이라는 단어 등도 이따금 등장했다.

◆언론·정부 관계자들은 “혐오로 매도 말라”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 등에는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다시 규탄한다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날 대학로에서 만난 고등학교 2학년 김모(17)군은 “친구들과 놀러왔다가 시위대로부터 ‘뭘 보냐’는 소리를 듣고 기분을 망쳤다”며 “저렇게 하는 게 여성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지 의문”이라고 털어놨다.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대학로를 찾았다는 직장인 최모(31·여)씨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대놓고 남자친구와 나를 빤히 쳐다보는 바람에 지나가기가 민망했다”며 “행인들이 시위대를 쳐다보면 버럭 화를 내면서 정작 자신들은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게 말 그대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것 같다”고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3차 규탄 시위’에 참가한 여성들이 도로에 줄지어 앉아 무대차량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주최측 추산 6만명(경찰 추산 1만8000명)이 모였다. 연합뉴스
언론 보도를 향한 비판도 속출했다. 대학생 선모(20)씨는 “혜화역 집회에서 분명히 재기하란 말이 나오는 걸 들었고, ‘유좆무죄 무좆유죄’처럼 조롱이나 비하하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똑똑히 봤는데 정작 기사를 보면 ‘여성들의 분노에 귀를 기울여라’든가 ‘혜화역 시위를 남성혐오로 매도하는 건 또 다른 여성혐오’라는 등의 편파적인 내용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이번 집회와 관련해 관련 부처 장관들도 연달아 입장을 표명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시위 현장에 조용히 다녀왔다”며 “참석자들은 뜨거운 땡볕도 아랑곳 않고 불법촬영 등을 근절하지 못하는 국가기관과 사회 전반의 성차별을 성토했는데, 여성인권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께 송구스럽고 마음이 무거웠다”고 밝혔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공화(共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우리 사회가 여성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면서 “남성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는데, 반박하고 비판부터 하려는 태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남성 혐오다 아니다, 정부를 비판했다 아니다, 이런 시시비비는 또 다른 편 가르기”라며 남녀 모두의 공감과 화합을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