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도 문화다] "시발비용으로 탕진하면 개꿀잼"

이한듬 기자 2018. 7. 9.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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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소비’의 시대가 열렸다. 이성적인 계획 아래 합리적인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고 사치를 경계하던 과거와 달리 자기만족과 행복을 최우선에 둔 소비가 보편화됐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소비는 더 이상 흠이 아니다. <머니S>가 달라진 소비문화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사진=이미지투데이
# 서울의 한 광고회사에 다니는 6년차 직장인 유승남씨(34·남)는 ‘술자리 번개모임’이 잦다. 하루가 멀다 하고 광고주와 직장상사에게 시달리다 보니 퇴근 후 동기 혹은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푼다. 유씨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회사 욕도 하고 위로받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술값은 번갈아 내는데 워낙 자리가 잦다 보니 지난달에 내가 쓴 술값만 3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 공공기관 상담원으로 일하는 이슬기씨(28·여)는 악성민원인을 상대한 날이면 퇴근 후 화장품가게에 들러 매니큐어를 구입한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지우는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민원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어서다. 이씨가 여태까지 모은 매니큐어는 40개에 달한다. 이씨는 “중고로 팔거나 친구들에게 선물한 매니큐어를 합하면 더 많다”며 “주변에서는 그만 좀 사라고, 돈이 아깝지 않냐고 하는데 해외여행을 가거나 비싼 명품을 사는 것보단 낫지 않냐”고 말했다.

‘시발비용’이 젊은 세대의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았다.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이 신조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한다. 유씨와 이씨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지불한 술값과 매니큐어 구입비용 등이 모두 ‘시발비용’의 사례다.

두 사람의 사례 외에도 일상에서 홧김에 지불하는 ‘시발비용’은 많다. 벼룩시장 구인구직이 성인 남녀 10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3.8%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소비한 경험이 있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직장(32.3%)이 가장 많았고 ▲인간관계’(22.8%) ▲돈(15.2%) ▲가사·육아(12.6%) ▲취업(10.3%) ▲연애·결혼(5.1%) 등이 뒤를 이었다.

◆불투명한 미래가 낳은 충동소비

시발비용처럼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소비를 지칭하는 신조어는 또 있다. 부주의한 탓에 안 써도 되는 돈을 썼을 때를 일컫는 ‘멍청비용’, 흥청망청 다 써서 없앤다는 뜻의 ‘탕진잼’(탕진하는 재미)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새로운 소비문화가 현재 사회 분위기와 젊은 세대의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고착화된 취업난과 저성장 등으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현재에 투자하겠다는 심리가 보편화됐다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겪는 현실은 취업도 잘 안되고 어렵게 취업하더라도 평생직장이 가능하지 않은, 미래가 불확실한 사회”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아봤자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차라리 힘든 현재를 버티고 있는 나 자신에게 보상을 주려는 심리가 ‘시발비용’ 등의 소비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쇼핑하러 온 고객들로 붐비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 사진=뉴시스DB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도 “뭔가 열심히 노력하면 밝은 미래가 보여야 하는데 젊은 세대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회의감이 퍼지면서 일종의 문화로 정착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어 “요즘 젊은 세대는 부모로부터 많은 지원과 혜택을 받고 자라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성취를 쉽게 경험해 짧게 노력하고 큰 것을 얻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성인이 돼 혼자만의 힘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다 보니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상황을 마주한 것에 대한 절망, 회의감, 자괴감이 새로운 소비형태로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합리적 소비방향 설정 중요

이 같은 소비형태는 ‘욜로’(YOLO) 문화와 맞닿아 있다. 욜로란 ‘유 온리 리브 원스’(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한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요즘 젊은 세대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욜로 문화의 영향이 크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줄이는 삶을 추구했던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문화다.

그러나 시발비용, 탕진잼 등은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라는 점에서 욜로와 구분된다. 욜로는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반면 시발비용, 탕진잼 등은 지금 당장 화를 풀기 위한 일회성 행위에 그친다. 따라서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소비형태가 과소비 등의 부작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올바른 소비방향을 설정하고 합리적인 소비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동귀 교수는 “자신에게 보상하는 의도라면 괜찮지만 타인에게 자랑하기 위해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인 소비행위를 지속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허탈감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며 “같은 돈을 쓰더라도 독서모임 등 자기계발과 연계한 소비방향을 설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일회적인 소비로 그치기보다는 개인의 관심사, 취미생활, 자기계발과 연계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개인의 성장 등에도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현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그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상철 교수는 “노력 없이 쉽게 성취한 세대는 없다”며 “잠깐의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10~20년 후를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48호(2018년 7월11~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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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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