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커지는 '여성들의 분노'.. 뜨거워지는 '혐오 논란'

최예슬 박상은 기자 입력 2018.07.0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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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혜화역 시위
경찰의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여성들이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최 측 추산 6만명이 모인 ‘제3차 몰카범죄 편파수사 규탄 집회’에선 일부 과격한 구호가 등장해 성대결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예슬 기자

젊은 여성들 6만명 운집, 2차 2만여명서 크게 늘어
“고립됐던 여성들 연대 신호”, 남성 비하·혐오 발언 난무
구호 지나치면 되레 반감 “공감 얻으려면 전략 바꿔야”

7일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여성 집회가 서울 혜화역 일대에서 다시 열렸다. 3회째인 이번 집회는 주최 측 추산 6만명(경찰 추산 1만9000여명)이 운집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단일성별이 특정 이슈에 목소리를 내며 대규모로 거리에 나선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주최 측은 자발적 참여 움직임에 주목했다. 사회 곳곳에 녹아 있는 남성 중심주의 가치관에 억압받아 왔던 여성들의 분노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투(#MeToo) 운동 이후 주목 받은 이른바 ‘실천주의 페미니즘’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고 분석했다. 집회 취지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며 울림은 커졌지만 집회 방식이나 일부 과격한 구호로 인해 성대결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를 이끈 단체는 ‘불편한 용기’다.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와 SNS상에서 모인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했다. 7일 오후 30도에 가까운 무더운 날씨에도 서울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까지 약 700m구간 4개 차로가 인파로 가득 찼다. 참가 여성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모자와 마스크, 손수건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참가자들은 “여성유죄 남성무죄, 성차별 수사를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 중 800여명은 광주·대구·부산 등에서 대절 버스를 타고 집회현장을 찾았다.

젊은 여성들이 대거 거리로 나온 모습을 본 중·장년층들은 놀라워했다. 안경을 벗고 피켓 문구를 찬찬히 읽는 여성들의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근처 대학병원에 들렀다 귀가하던 박모(70)씨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한다”고 했다. 퇴근하던 이모(53·여)씨도 “마음 같아선 참여하고 싶지만 직장도 다니고 가정도 있으니 여유가 없다”며 “이렇게 거리에 나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젊음이 부럽다”고 했다.

공감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집회 참가자 수는 갈수록 느는 추세다. 이날 참가자 규모는 지난 5월 19일 첫 집회(주최 측 추산 1만2000명)와 지난달 9일 열린 두 번째 집회(2만2000명)보다 훨씬 커졌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8일 “시위 참가자가 점점 늘어나는 건 불법촬영에 대한 정부 대책이 근본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방증”이라며 “혜화역 시위는 성폭력 등 피해를 입었을 때 고립됐던 여성들이 분노하고 연대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용기를 확인한 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성대결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모(42·여)씨는 “딸이 있는 엄마라 성차별이나 여성대상 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너무 과격하게 하면 오히려 남성들이 반감을 가질까봐 걱정스럽다”고 했다. 남성이라는 이유로 집회 입장을 거부당한 윤모(26)씨는 “여성들이 집회에 나와 어떤 말을 하는지 남성도 듣고 소통해 보고 싶은데 참가 자격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두고 아예 배제해버려 아쉽다”고 했다.

집회에서 쓰인 일부 과격한 구호 역시 성대결 구도에 불을 지폈다. 참가자들이 외친 ‘제기해(재기해)’나 ‘자이루’ 등은 온라인상에서 남성을 혐오하거나 모욕하는 용어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제기해(재기해)’는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뜻으로 고(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2013년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돼 사자(死者)에 대한 모욕적 측면이 있다. 집회를 지켜보던 안모(28)씨는 “남성을 깎아내리면서 여성 권리를 주장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몇몇 참가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제기해(재기해)’ 구호를 외치면서 대통령 비하 논란도 빚어졌다. 집회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당일 집회현장을 방문했던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을 언급하며 “남녀갈등을 조장하고 대통령을 모욕하는 시위에 (장관이) 참여했다”며 “경질·파면을 요청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이번 집회가 분노 표출을 넘어 제도 개선까지 끌어내려면 여성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운동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면 극단적이고 반사회적, 모욕적인 전략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지지와 공감을 얻기 위한 전략을 짜야 한다”며 “남성은 가해자라는 식의 이분법은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도 “감정을 배출하거나 혐오 발언이 더 많아지게 되면 일반 국민의 지지를 받기 힘들어진다”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여성운동에 뒤따르는 갈등은 변화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윤김지영 교수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그동안에도 평화롭지 않았다. 지금껏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뿐”이라며 “여성이 목소리를 내고 사회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갈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예슬 박상은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