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위원장 대통령' 불참한 저출산위원회

정종훈 2018. 7. 9.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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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 복지팀 기자
지난 5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본회의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의 첫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려고 관련 부처 장관이 모두 참석했다. 하지만 회의장 가운데서 위원회를 주재한 건 김상희 부위원장이었다. 언론 브리핑도 마찬가지였다. 위원장인 문 대통령은 보이지 않았다.

9시간 후, 위원장은 서울 구로구의 한 행복주택에 나타났다. 젊은 신혼부부 집에 가서 “결혼하고 여기로 이사 오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등의 질문을 던졌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열린 청년 주거 대책 발표에 참석했다. 대통령이 현장을 찾는 건 좋은 일이다. 목표한 바대로 청년 주택 공급을 늘리고 낮은 금리로 지원한다고 충분히 알려야 한다. 전 정부의 3배로 지원을 늘리겠다는 약속은 박수 받을 만 했다.

일부 기자들은 이날 오전 기사를 작성하면서 대통령이 위원회에 참석하는 거로 했다가 나중에 고쳤다. 현 정부의 첫 종합대책이니 당연히 대통령이 주재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대통령이 주재하면서 민간위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한 뒤 행복주택을 방문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일 서울 구로구 행복주택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신혼부부 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제6기 위원회 구성 직후 첫 간담회를 열었는데, 그때는 대책이 심도 있게 논의되지 않았다. 재임 기간 단 두 번 회의를 주재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관심이 세계 최악의 출산율의 한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더구나 문 대통령이 방문한 행복주택에 사는 신혼부부는 교사 부부였다. 좀 더 여건이 어려운 비정규직 부부를 만나 격려했으면 어땠을까. 인구 절벽이 코앞에 다가왔다. 정부는 ‘올해 출생아 수 32만명, 출산율 1명 아래’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이대로라면 세계에서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된다. 대통령이 더 강한 액션을 보여줘야 국민도, 정부도 믿음을 보낸다. 최진호 아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대통령이 위원회에 무조건 참석하고 메시지도 세게 내야 각 부처가 저출산 해소에 열심히 나선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 정부가 만든 3차 기본계획을 새로 뜯어고쳐 10월에 중장기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밤을 새워가며 끝장토론이라도 해야 한다. 저출산 기사에는 ‘헬조선을 물려주기 싫어 저출산을 택한다’ ‘인구는 더 줄어야 한다’ 등의 댓글이 항상 따라붙는다. 문 대통령이 10월 회의에서 신혼주택은커녕 결혼조차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의 무력감과 분노에 응답하길 기대해본다. 

정종훈 복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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