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자원·유전체 정보 제공 '바이오뱅크' 뜬다

신찬옥 2018. 7. 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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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이나 조직, 세포, 혈장, 단백질처럼 사람에게서 채취한 인체 유래물과 유전정보 등을 수집해 동결보존한 뒤 연구자 요구에 따라 제공해주는 바이오뱅크가 뜨고 있다. 인체에서 유래한 물질과 유전정보 등 인체자원을 보관하고 있어 '인체자원은행'으로 불리는 바이오뱅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서비스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밀의료는 환자마다 다른 유전체·임상·생활습관 정보를 분석해 정확한 치료 타깃을 설정한 뒤 최적의 표적치료 방법을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다. 정밀의료서비스를 위해서는 유전체 정보 등 빅데이터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유전체·임상정보, 개인 생활습관 등의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이를 분석해 특정 환자에게 가장 잘 듣는 약을 처방하는 등 맞춤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바이오뱅크 사업은 2008년 시작됐다. 현재 질병관리본부 산하에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오송)이 있고 전국 대학병원에 17개의 인체자원단위은행이 설치돼 있다. 작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집된 혈장과 혈청, 연막, 조직, DNA 등 인체자원은 82만명분에 달한다. 인체자원은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코호트(비슷한 특징을 가진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때 확보하거나 병원 등 임상 현장에서 환자가 검사를 위해 피를 뽑고 조직검사 등을 받은 후 남은 유래물을 환자 동의를 받아 수집하고 있다.

인체자원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민간 차원에서도 자체 바이오뱅크를 설립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식이보충제 프로바이오틱스를 만드는 바이오일레븐의 부설연구소인 김석진좋은균연구소는 지난해 6월 아시아 최초로 대변은행 '골드 바이옴'을 설립했다. 혈액은행이나 정자은행처럼 건강한 사람에게서 대변을 기증받아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을 추출하고 분석한다. 이 미생물은 대변이식술, 미생물 캡슐 등을 통해 장 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 치료에 활용할 예정이다. 한미약품그룹 관계사인 코리그룹은 이탈리아 로마가톨릭대·제멜리병원과 '엄마와 아이를 위한 바이오뱅크'를 설립할 계획이다. '마더 앤드 차일드 앤드 비욘드'라는 이름의 이 바이오뱅크는 산모와 신생아를 연구하는 세계 최초 기관이다. 코리그룹은 바이오뱅크 산업을 중국으로 확장하기 위해 베이징협화병원, 베이징아동병원, 베이징대학, 중국위생발전연구센터 등 중국 대표 의료기관과 협상 중이다.

바이오뱅크는 인체자원을 필요로 하는 국공립연구소, 대학, 의료기관, 바이오산업계 등에 제공한다. 알츠하이머 치료제나 진단키트, 바이오마커 연구자는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이 보유한 치매 환자 혈장과 혈청 샘플을 제공받아 연구에 활용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인체자원 분양데스크'를 운영해 연구자가 인체자원 현황을 검색하고 필요한 인체자원을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놨다. 사업 첫해인 2008년 58건에 그쳤던 인체자원 제공건수는 2016년 360건까지 늘었다.

질본에 따르면 인체자원을 활용한 연구과제는 2003년부터 지난해말까지 2294건 수행됐고 894편의 학술논문과 54건의 특허 획득 등의 성과를 창출했다.

다만 업계 전문가들은 여전히 바이오뱅크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A바이오기업 대표는 "지금은 회사나 연구자들이 자체적으로 샘플을 만드느라 연구비를 많이 쓰고 있고 심지어 바이오뱅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며 "유료로 전환하더라도 언제든 믿고 쓸 수 있는 샘플을 받을 수 있다면 사용자 입장에서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바이오뱅크 역할을 강화하려면 연구자들이 정말 원하는 샘플을 제때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와 함께 신약개발이나 진단을 위해서는 혈액이나 조직 같은 실물자원보다 더 중요한 게 환자 정보인데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기관 간 장벽으로 접근이 막혀 있다는 점도 문제라는 게 시장의 진단이다. 정보 수집 단계부터 개인정보를 익명화하되 연구에 필요한 정보는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규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바이오뱅크 시장은 2016년 1982억달러(약 222조원)에서 2021년 2402억달러(약 269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핀란드는 2013년 '바이오뱅크법'을 제정해 임상시험과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개발에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인체 유래 자원을 수집하는 일본 병원들은 "우리는 연구중심병원이라 잔여검체를 연구에 활용한다. 거부하는 분들은 알려달라"는 네거티브 방식을 쓴다. 환자가 굳이 거부하지 않는 한 남은 검체들을 모두 수집해 활용할 수 있다. 영국은 국가 차원에서 바이오뱅크가 보유한 50만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구축했고 미국과 중국도 각각 50만~100만명 규모의 유전체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바이오뱅크를 가지고 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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